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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샴페인 May 18. 2020

나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도전기

'홍기자'라는 어색한 남편의 농담이 싫지 않은 이유

'기자'라는 단어는 나와는 다른 세상의 단어였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쟁터에서 인터뷰를 하는, 재난현장에서 생생한 보도를 위하여 자신의 몸과 시간을 다 바치는 기자들을 보면서, 나와 그들의 세상은 경계가 뚜렷한  정말로  '저 너머의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학창 시절 스포츠 관람을 좋아했던 나는 그 시절 잠시 스포츠 기자를 꿈꾸어본 적은 있으나, 학교생활부에 적혀있는  '여성적이고 얌전한 학생임' 그 자체였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성격에 맞는 직장에 취직하고, 적정한 나이에 튀지 않는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다 성장시킨 후에 그런 '얌전한'이라는 것을 내 인생에서 소거해버리고 싶은 작은 욕망이 생겼다.



그렇다 해도 '기자'는 결코 생각해본 카테고리는 아니다. 글을 잘 써서 학창 시절 글짓기 상을 휩쓸어 본 적도 없고, 남들이 다 한다는 블로그조차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시민기자'라는 것을 도전하고, 여러 편에 기사를 작성해서 송고하는 모습은 나 스스로도 아직 적응이 안 되는 모습이다.



처음 기사를 30분 만에 작성하고 편집주에 보내고는 '결과에 상관없이 질러보자'는 좀 무식하고 어리석은 도전을  '기자님의 글이 채택되었습니다'라는 카톡으로 돌아온 사실에 그 모든 과정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아직도 나는 무어라 딱 집어낼 수 없다. 대단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저 '해프닝으로 하는 도전 정도' 그 이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작은 해프닝으로  나는 매일 노트북과 씨름 중이다.



내가 계속 노트북 앞에 앉게 한 것에는 여러 선배 시민기자분들의 도움이 많았다. 처음 기사가 '잉걸'로 채택되고, 두 번째 기사가 운 좋게 '오름'으로 채택되면서, 내 안에는 점점 '욕심'이라는 것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고, 매일매일 글을 써 본 경험도 없었기에 내가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선배 시민기자분들의 글을 보고, 그들의 필체와 표현력을 배우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특히 강대호 기자님의 "모든 시민은 기자인데... 나는 왜 채택  안 됐을까"라는 기사와 최은경 편집기자님의 여러 시민기자분들의 스토리, 이주영 편집기자님의 기사 쓰는 방법 등, 또 5년 이상 꾸준하게 기사를 쓰시고 책까지 출판하신 여러 기자님들의 글은 내게 기사를 쓰는데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 그리고 나도 한번 그런 분들처럼 긴 호흡으로의 기자 생활을 다짐도 해봤다. 



한 달 간의 기사를 올리면서, 그 결과를 기다리는 것은 처음 나의 기사가 채택될 때의 마음과 매번 같다. '기사가 채택되었다'는 카톡을 받을 때면 처음 느낌처럼 설레고, 나의 기사를 여러 번 보게 되고, 그러면서 나보다 더 노련하게 이야기를 써 나가는 다른 베테랑 기자님들의 글을 더욱더 유심히 여러 번 보게 된다. 또 나의 글이 '생나무'로 남겨질 때는 잠깐의 허탈감과 자신감의 팍 떨어지지만 , 오히려 왜 채택이 안되는지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나의 일상은 이제 '비포 앤 애프터'가 되었다. 가족을 챙기고, 모든 것을 가족들의 생활에 맞춰져 있는 나의 일상과 생각들의 간격이 생기면서, 나의 이웃과 나의 친구들의 일상이 남의 일이 아닌 것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저 수다로 마무리하는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일상에서 불편함은 없는지 있으면 무슨 문제인지 더 깊게 물어보게 되고, 평소 연락을 자주 안 하는 지인들에게 안부의 전화를 자주 하게 되었다. 단골 가게 사장님들과 수다가 늘어나고, 나의 눈은 수시로 옆을 보게 되는 싫지 않은 피로가 생긴 것이다.


사실 기사를 쓰면서, 처음과는 다르게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느낀다. 처음에는 그저 신선한 마음에 멋모르고 썼던 문장들이 이제는 좀 더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과 욕심이 오히려 키보드의 진행을 막고 있었다.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라는 마음으로 다시 좋은 기사들을 보고 또 보았다. 


그 후에 몇 가지 나의 기사와 차이점을 두 가지 발견하게 되었다. 첫째는 무조건 진실해야 한다는 것, 진심 어린 마음으로 기사를 써 내려가야 보고 읽는 사람들에게도 그 울림이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막고 있는 막을 걷어내야 한다. 감정이라는 것은 '방어'라는 몹쓸 놈이 버티고 있어 웬만해서는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 임희정 시민기자님과 최성연 시민기자님의 글을 보면서 그 몹쓸 놈과 당당히 싸워 이겨내신 후의 감정의 힘과 그 힘에서 나오는 울림이 있다. 그 힘과 울림이 우리를 감동시키고, 그들의 기사와 글을 찾아보게 되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정말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한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먹는 기사는 그 맛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입속에 침이 고이게 했고, 운동에 대한  기사는 정말 나의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단순히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내가 체혐하지 못한 삶의 현장들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듯한 표현은 읽는 이로 하여금 또 다른 삶의 영역을 넓혀주는 기능을 해주고 있었다. 


강준만 저자의 <평온의 기술>에는 미국 심리학자인 대릴 벰의 '자기 지각 이론'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자기 지각 이론은' 인간은 타인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을 규정짓는 것처럼 자신의 행동을 보고 자신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어떤 목표와 목적이 없이 무언가를 이루고자 할 때는 먼저 행동을 함으로써 스스로 그런 사람임으로 지각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 나의 시민기자의 도전도 이와 비슷했다. 하지만 매일 키보드를 두드리며 써 내려가는 나의 행동과 '홍지은 시민기자님"이라는 문자와 카톡을 자주 받게 되면서, 나의 대한 새로운 지각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남편은  요즘 나의 호칭을 '홍기자'라고 부르면서 너스레를 떤다. 나 또한 어색해하면서 싫지만은 않다. 몇 년을 시민기자로 활동하신 분들이 봤을 때는 시작부터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하시겠지만, 그 '오버'하는 시작을 매일 해보려 한다.


그리고 조금 모자라지만, 거북이 같은  긴 호흡으로 천천히 나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글을 씀에 있어 정직하고 무엇보다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한 기사를 앞으로도 계속 써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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