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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과는 기분 좋게 헤어졌다!

by 레드산


5년 만이다. 2020년 한여름에 갔으니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흘렀다. 2024년을 겨우 이틀 남겨두고 원주 뮤지엄 산을 다시 찾았다. 시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 생각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흘러갔다.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아 이젠 그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게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시간은 벌써 2024년 끄트머리에 와있다. 언제 이렇게 훌쩍 일 년이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한 해를 불과 이틀을 남겨놓아서 그런지 이번 여행은 생각지도 않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여행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그동안 시간에 쫓기고 일에 치여 가지 못했던 여행인 데다, 무척이나 오랜만에 혼자 가는 여행이라 기분이 한껏 들떴다.


2024년의 마지막 주말은 겨울이라고 하기에 무색할 정도로 날씨가 포근했다. 그 때문인지 뮤지엄 산 주차장은 관람객 차들로 가득했다. ‘그동안 뮤지엄 산이 변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웰컴센터에 들어섰다. 예전에 보았던 것들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지나간 시간만큼 또 다른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교차했다.


친절한 직원의 안내를 받아 뮤지엄 본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본관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조각 정원과 꽃의 정원 나무들은 다가올 찬란한 봄을 위해 다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자연은 계절마다 계절에 어울리는 경치를 내어준다. 겨울 경치는 여느 계절처럼 밝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의 순리에 따라 펼쳐지는 이 계절의 경치도 꼭꼭 눈에 담아두어야 한다.


본관 앞 워터가든의 거대한 Archway는 여전히 보는 이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Archway는 한층 더 도드라지게 보였다. 거대한 원통 관을 이어서 만든 아치 모양으로 독특한 디자인과 함께 강렬한 색상이어서 누구나 좋아할 만한 멋스러움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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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예술가 알렉산더 리버만의 작품인 Archway는 아이들 만화영화에 나오는 로봇 같기도 하고, 늘었다 줄었다 하는 포크레인의 작업 팔 같이도 보여서 무척 흥미롭다. 물로 꾸며진 워터가든에 세워져 있어 물에 비치는 모습에도 눈길이 간다. 뮤지엄 산을 찾은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즐거움과 기대감을 안겨주는 작품이자 이곳의 상징물이다.


뮤지엄 산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해 2013년 5월에 개관했다. 뮤지엄 산의 관문인 웰컴센터에서부터 가장 뒤쪽에 있는 제임스 터렐관까지의 길이가 무려 700m에 이른다. 이 넓은 공간에 박물관과 미술관 등이 있고, 그 안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미술품에 대한 안목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 안에 있는 작품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과 마음이 살찐다.


뮤지엄 산 홈페이지에 나오는 뮤지엄 스토리를 보면 뮤지엄 산이 추구하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소통을 위한 단절(Disconnect to Connect)”이라는 슬로건이 정말 마음에 든다. 언뜻 들으면 쉽게 이해되는 듯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문구다. “종이와 아날로그를 통해 그동안 잊고 지낸 삶의 여유와 자연과 예술 속에서 휴식을 선물하고자 한다”라고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동안 내 곁을 스쳐 간 세월의 크기가 작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아날로그 세대이다. 그래서인지 종이와 아날로그를 통한다는 말이 조금은 더 편하고 가슴에 와닿는다. 그 때문에 뮤지엄 산이 한층 더 가깝고 친근하게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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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산은 이번이 두 번째지만, 처음에 봤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건축물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뮤지엄 본관 건물은 사각 형태이고, 내외장재로 파주석을 사용했다. 건물 외관은 의도적인 기교를 부리지 않았고, 사각의 안정감과 함께 웅장하고 묵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벽체에 파주석을 사용하고 있어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처음에는 그런 느낌이었지만, 건물이 눈에 익을 때쯤이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지만, 내외장재로 파주석을 사용한 게 신의 한 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파주석이 좋아 보였고, 그런 만큼 파주석이 어떤 석재인지 궁금해졌다.


파주석은 경기도 파주지역에서 채취하는 천연 석재인데, 현재는 대부분 수입한 것이라고 한다. 불그스름하면서 우윳빛이 어우러진 자연 그대로의 색감과 특이한 무늬가 자연미와 함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뮤지엄 산은 해발 275m가 되는 산에 자리 잡고 있어 파주석을 사용한 건물은 눈에 거슬리지 않고 자연 친화적으로 보였다.


건물의 외관도 외관이지만, 파주석을 사용한 내부는 정말 탄성이 나올 만큼 멋지고 아름답다. 견고한 성벽처럼 보이는 파주석의 벽과 높은 천장 그리고 갤러리를 연결하는 복도의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의 햇살이 어우러진 내부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은은한 멋과 기품을 보여주는 아름다움과 분위기가 있어 많은 이들이 뮤지엄 산을 찾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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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본관 뒤편으로는 신라 고분을 모티브로 한 스톤가든이 이어진다. 본관과 스톤가든 사이에는 조지 시걸의 “두 벤치의 연인”이라는 조각작품이 있다. 연인을 하얀색으로 처리한 작품은 주변의 다양한 색들과 대비되어 쉽게 눈길을 끌었다. 남녀가 등받이를 맞댄 벤치에 따로 앉아 얼굴을 돌려 마주 보고 있다. 여자 쪽에서 보면 팔은 벤치에 걸친 것으로만 보이지만, 반대편인 남자 쪽에서 보면 연인이 팔을 잡고 있다.


이 작품은 보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연인이면 한 벤치에 나란히 앉을 텐데 왜 따로 벤치에 앉았을까? 두 사람이 팔을 잡은 것도 숨기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보니까 연인은 연인인데 혹시 불륜? 피식 웃음이 나온다.


또 한편으로는 한바탕 싸웠던 연인이 화해하려고 하는데, 아직은 싸움의 앙금이 남아서 조금은 어색하게 따로 앉아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렇듯 이 작품은 보는 이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재밌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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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명상관과 제임스터렐관까지 볼 수 있는 통합권을 구매했다. 그동안 명상에 관심이 있어 기회가 되면 한번 배워보고 싶었다. 혼자 해보려고 유튜브에 있는 콘텐츠를 따라 해봤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으니까 금방 시들해졌다. 이참에 명상관에서 제대로 명상 체험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명상관 내부는 명상하기에 좋아 보였다.


돔 형태로 되어 있는 명상관은 돔 천정의 가운데 부분을 갈라놓아 그 사이로 자연의 햇살이 스며들었다. 어스름한 분위기 속에 은은한 햇살이 있어 실내는 아늑했다. 30여 명의 사람이 체험에 참여했고, 그중에는 외국인도 보였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강사의 지시에 따라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명상을 시작했고, 나중에는 반듯하게 누워서도 했다.

아늑하고 포근한 실내 분위기와 함께 고요함이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편안해졌다. 얼마나 마음이 풀어졌던지 누워서 명상할 때는 그대로 깜박 잠들 뻔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번 해보고 나니까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생각처럼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명상관을 나왔을 때,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유난히 더 밝고 따사롭게 느껴졌다. 명상 체험을 기껏 한번 해보고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닌가 싶지만, 힐링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덕분에 평온하게 한 해를 잘 마무리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기분을 한층 더 즐겁게 했다. 이래저래 기분 좋게 한 해를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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