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의 과정

by 홍사유

봐줄만 한 이력같은 건 없다.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한다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나를 두 아이의 엄마로만 기억하며 매우 안타까워하고 아직 어린 두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하지 못할까 우려의 목소리를 보낼 것이다. 내가 두 아이의 엄마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우린 서로에게 전부다. 아이들이 사라진다면 내 영혼은 불길 속으로 내던져지거나 깊은 수면 아래로 쳐박혀버릴 것이란 것도 뻔히 예상해볼 수 있는 결과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더 원한다. 그냥 두 아이의 엄마가 아닌, 어쩌고 저쩌고 하는 두 아이의 엄마. 혹은 어쩌고 저쩌고 여자.


언제부턴가 나 스스로를 속여왔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물론 아이들을 위해서 나는 살아있어야 한다),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 하는지 들을 전혀 모르겠다. 생의 태초에 심장이 생겨났고 여지껏 심장이 멈추지 않아 그저 살아있는가? 맞는 말이지만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면 내 밤잠을 설치게 하는 '스스로를 속여왔다는 느낌'에 대한 답을 얻을 수는 없을뿐만 아니라 답을 찾기를 끝내 외면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난 몇 년간(정확히는 내가 고독해진 후로 지금까지) 나는 나를 확정 짓기 위해 이런 저런 일에 손을 뻗었다. 당시에는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약간의 허세를 가미하여 시작한 것이었는데 돌아보니 전부 내 안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아직 답을 얻지 못했고 언제까지 이런 저런 상념들에 사로잡혀 밤잠을 설쳐야할 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으며 사실 이따금 고통스럽다. 안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참으로 잔혹하고도 가혹하고 심지어 어느 시점에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통증을 유발한다. 아마 그 시점은 지나오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쓰고보니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삶과 죽음 자체에는 큰 의미가 없듯 안을 들여다보는 일도 그와 같다는 생각. 순리대로 마땅히 심장이 생겨나듯 자연히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더니 그 속이 잔혹하고 가혹하고 오싹하고 불미스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던 것은 아닐까? 거칠게 파헤쳐 모조리 긁어내야 할 수밖에 없는 그 과정 중에 피를 흘리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지나친 자기혐오에 빠져버린 것인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확정 지어야만 하는 것인가? 삶이 유한하다지만 직감적으로 내게 많은 삶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삶이 지속되는 동안 내 안으로 향하는 일과 파헤치고 긁어내고 피흘리는 과정들이 아무리 오래 걸리고 힘이 들어도 반드시 나를 어떤 형태로든 확정을 지어 영혼에 이름을 붙여줘야만 한다. 어쩌고 저쩌고 하는 두 아이의 엄마. 혹은 어쩌고 저쩌고 여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