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떻게 그런 말을 쓰셨어요?
첫 아이를 낳은 후로 3년간은 일을 하지 않았다. 원래 하던 제빵일이 원체 고된 일이라 다신 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고, 군인인 남편을 따라 읍 단위 마을의 관사에 살던 터라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제빵일을 하면 새벽에 출근해야 하고 퇴근시간은 정해진 시간이 없다.)
서울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연고가 전무한 읍내에 살게 된 나는 점차 우울해져만 갔다. 심지어 훈련이 잦던 남편은 길면 6개월씩 못 들어오기도 했고 타국으로 떠나기까지 했었다. 물론 그럴 때면 첫 애를 데리고 KTX를 타고 친정집에 가 있었다. 실질적으로 첫 아이는 나랑 우리 엄마가 키웠다. 당시 내 나이가 20대 후반이었으니 지금 돌아봐도 한창 즐길 나이에 그렇게 살게 된 것이 참 기가 막힐 때가 있다. 힘들었지만 남편을 원망한다거나 그러진 않는다. 우린 둘 다 최선을 다했다. 다만 남편은 다신 없을 첫 아이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질 못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는 일을 해야겠어. 무조건 일할 거야. 그게 뭐든 간에."
남편의 전역이 결정되고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서울로 갈 것을 제안했다. 친정집 근처로 가서 육아에 대한 도움을 받고 나는 일을 하겠다고. 전역 후 우리는 친정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작은 빌라에 전세를 얻어 살게 되었다. 남편은 곧장 소방공무원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아침 8시에 나가서 밤 10시까지 공부하고 돌아온다. 나는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대형 서점에 알바 공고가 뜬 것을 보고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서점이라...
그때까지 나는 책은 거의 읽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독서와는 거리가 멀었고 도서관도 정말이지,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서점 또한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고 쓰는 자들의 공간은 완전히 다른 세계의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래봤자 업무가 '책 읽고 독후감 작성'도 아니고 카운터 업무인데 이질감 느낄 필요가 있나 싶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본 나로서 카운터 업무는 솔직히 몇 시간이면 다 익힐 수 있는 일이다. 심지어 서점이라니까 진상 손님을 마주칠 일도 매우 드물 것으로 예상됐다. 바로 이력서를 다운로드하여 작성하기 시작했다.
뭘 적어야 하나? 막상 이력을 쓰려니 쓸 게 없다. 제빵사로 일했던 경력을 쓰자니 카운터 업무랑 무슨 상관인가 싶다. 게다가 3년을 살림과 육아만 했다. 그래도 빈칸 보단 낫겠지. 맨 처음 마케팅 회사에서 근무하던 이력까지 끄집어내어 첫 칸에 적었다.
이제 지원동기와 자기소개를 작성하라는데 이건 더 막막했다. 세상과 단절된 듯 살았던 지난 3년의 시간이 그 순간만큼 날 압도한 적은 없었다. 한창 사회 활동 중이고 훨씬 더 젊은 사람들도 많이 지원할 텐데 내 이력서를 읽어나 볼까? 내가 인사담당자라면, 내가 사장이라면 나 같은 사람을 뽑을까? 굳이? 그야말로 자신감이 수직낙하했다. 그러나 낙담이 지속되진 않았다. 난 그때 서울로 돌아왔고 곧 일을 하게 되어 사회로 돌아갈 거란 기대에 부풀어 흥분으로 가득 찬 상태였기 때문에 '어차피 안 볼 텐데, 그냥 간결하게 하고 싶은 말 하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치 잃어버렸던 20대 초반의 기세를 되찾은 듯했다. 나의 20대 초반이 어떠했는가. 빠르고 활력이 넘쳤다. 그러나 신중하지 못했고 어설펐다.(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그런 태도로 아주 짤막한 동기를 작성했다.
[결혼과 출산 후 오랫동안 일을 쉬면서 일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에 갇혀 세상에 뒤쳐지고 싶지 않아 지원합니다.]
얼마 후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서점으로 향했다.
"지원자가 40명 정도 됐는데, 제가 00 씨 이력서를 보곤 다른 사람은 부르지도 않았어요. 저는 지원동기만 보거든요. 어떻게 그런 말을 쓰셨어요?"
나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담당자님의 말을 그대로 믿진 않았지만 기분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렇게 나는 서점이라는 아주 낯선 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