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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Aug 26. 2023

원하는 삶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어

느려도 조금씩 천천히 확실하게


8월이 거진 다 지나갔다. 심장이 콩콩콩 뛰는 반짝반짝한 일상을 기록하고 싶었는데, 내 욕심이었나 보다. 안타깝게도 일상을 완전히 사랑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일상을 기록한다는 것이 무리였다. 아가와 남편과 우리가 만든 이 작고 다정한 세계에서 안전함을 느끼며 아가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삶을 사는 지금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뭔가를 하고 싶고 만들어내고 싶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가가 폭주기관처럼 (ㅋㅋㅋ) 온 집안을 기어 다니기 시작하고 고형식을 먹기 시작하는 걸 보면서 조금 더 성장한 아이와 나누는 교감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한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아가를 꼭 품에 안고 그 어떤 걱정도 불안도 없이, 온전히 이 순간만을 즐겨보자고 되뇐다.




그리고 아가와 함께 보내는 일상, 남편과 함께 만든 이 세계에 충실하는 것이 지금 나의 이라고 생각하려고 애썼다. 단순히 케어기버로서 육체노동 아니고 이것이 지금 내게는 세상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려고 애썼다. 아가는 언젠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손길, 안아주던 느낌, 따듯하고 정감 있는 말투를 기억하고 그걸로 인해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을 거니깐. 매일 수유를 하고 유아식을 만들고 목욕시간을 갖고 놀이시간을 가지면서 그 사실을 생각하려고 애썼다. 나는 지금 한 인간의 자아와 감정을 빚는 일을 하고 있다.


가족 안에서 지내는 이 시간 또한 단순히 일과 일 사이의 쉬는 시간, 붕 뜬 백수로서의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자꾸만 밖에 나가서 경제활동을 해아 할 것 같고, 밖이 아니라 집에서도 투자를 하고 자기 계발을 하며 앞으로 경제에 도움이 될 일들을 하고 싶었다. 자청의 <역행자>나 <세이노의 가르침> 같은 책들을 읽으며 일상을 허투루 쓰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자마자, 내가 집에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이 아까웠고 기시감이 들었다. 당장의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꺼려졌고, 남편과 아이에게 들이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얼른 '내 것'을 하기 위해 육퇴를 선언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나의 깨달음은, 그런 방식으로 딱 일주일만 살아도 하루가 버거워진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얼른 지나가길 바라게 되고, 남편과 일과를 마치고 앉아서 맥주 한잔 혹은 차 한잔 하는 시간에 온전히 스며들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To-do-list를 되뇌고 있었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그른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 한 살도 안된 아가를 육아하며 남편의 싱글 인컴으로 외국에 나와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의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 이 시간을 긍정하지 못하고 자꾸만 관심을 외부로 돌리는 방식으로는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기 어려운 것 같다. 적어도 서울에서 살던 것처럼 머릿속으로 무엇이 효율적 일지 생각하며 많은 계획을 세우고 쳐내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지금의 내겐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때 만나게 된 것이 캐나다 사는 미셸님의 영상이었는데, 친구가 미셀님의 영상을 보고 큰 힘을 얻었다고 했다. 캐나다에 사시면서 가족과의 일상을 따듯하고 온전히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하시며 그걸 영상으로 남겨서 많은 이들에게 공유해 주시는 미셸님의 삶을 보며 나도 큰 용기를 얻었다. 예전 같으면 갓생 사는 직장인 브이로그, 전업 워킹맘 일상 같은 걸 보면서 계속해서 나를 성장시키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동기부여를 얻으려고 했을 거고 (물론 지금도 이런 영상들 자주 찾아본다) 미셸님 콘텐츠에 공감하긴 어려웠을 것 같다. 항상 나가서 일을 만들고 돌아다녔던 내게 지금 육아를 하며 주부로만 사는 삶의 방식은 너무나 생소했기에 그 안에 어떤 고민과 어려움이 있을지도 엄마의 삶을 바라보며 간접적으로 느꼈을 뿐이었다. (미셸님 유튜브 링크)

이제 가족이 된 지 이 년 차, 우리는 이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따듯함을 느끼며, 특히 남편과 서로의 빛나고 도드라진면만 보는 게 아니라 서로의 민낯과 피곤해서 축 늘어진 모습까지도 품어주고 보듬어주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전에 페미니스트이자 커리어우먼을 표방하며 살아가던 내가 추구하던 삶과는 확연히 다른 삶이다. 느리지만 따듯하고 조금 답답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무엇이 행복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더 이상 의문이 없게 만드는 삶이기도 하다. 이제 아가가 걷고 말을하기 시작하면 나는 분명 아가와 지금처럼 24시간 보내진 못할거다. 그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이렇게 아쉽고 아가의 곁을 다른이에게 내주는 것 같아 서운한데, 또 지금은 현재를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다짐했다. 우리 가족의 일상을 잘 살아나가는 것이 내게도 너무나 중요한 미션이라고 마음먹으니 그렇게도 되었다. 매일 단순히 한 끼 때우는 게 아니라 우리 가족만의 식단을 만들고 종류를 늘려가면서 코어를 운동하듯 가족의 코어를 단단하게 채워주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특히 아가 유아식을 만들며 이삼일꼴에 한 번씩 장을 봐와서 최대한 신선하게 만들어주려고 애썼다. 그 이외에도 단순히 빨래 해치우는 것 아니고 청소기 돌리는 거 아니고 우리 가족의 생활의 중심을 잃지 않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쓰면서 지난한 가정주부로서의 시간을을 이겨나갔다.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기 시작했을땐 의미없어보이던 일상에 생기가 돌고 집이 윤택해졌다. 아가에게 더 눈 마주치고 뽀뽀해주며 사랑을 주고도 남편에게 더 애정있게 대해줄 에너지가 남았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생활의 중심을 잡는 일


처음에는 엄마이자 주부로서의 삶이 내게 힘든 이유를 몰랐다. 적어도 사람들은 대부분 일하기 싫어하는것 같은데 왜 나는 일 안하면 살아있는것 같지가 않지? ..... 누구를 만나도 자신의 직업이 없는 사람이나 자신의 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랑 대화하면 재미가 없었다. 배우고 즐기고 발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안전 지향형 사람이랑 나는 안맞아, 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태생적으로 밖에 나가서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야 하는 사람이라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점점 깨달은 것은 내가 스스로 나를 엄격하게 통제하며 살기 어려운 사람이고, 누군가의 피드백이나 사회적으로 받는 인정에서 큰 보람을 얻고 에너지를 받으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즉 학교에서는 커리큘럼이, 직장에서는 따라야 하는 공동의 스케줄이 있었기에 그것을 따라가며 기대에 부응하고 성취를 해온 사람이라서 혼자서 생활을 영위하는 능력이 제로에 가까웠다. 단적인 예로 혼자서 몇 년간 'Studio Myomi' 브랜드를 만들고 키워온 내 동생은 완전한 1인 사업자로 작업을 하며 세일즈와 마케팅, 판매를 하고 공방을 운영하며 외부 클래스에도 나간다. 지금껏 삶에서 단 한 번도 혼자서 무언갈 만들고 꾸려본 적 없었던 나는 동생의 삶을 완전히 동경해 왔는데 그건 동생이 내게 없는 능력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서 너무나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주부의 삶 또한 당장의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자발성과 끈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경제적 가치를 생각하면 내가 나가서 돈 버는 것이 집에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아가를 케어하고, 식사를 만들며 집안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보다 지금 잡 헌팅에 더 총력을 기울이는 게 맞았다.


사실 8월이 되면서 이제 아가가 10개월에 집어 들었다. 아가가 무언갈 잡고 일어설 수 있게되면서 나는 슬슬 잡헌팅을 시작해 보자- 하는 마인드로 몇 가지 기업들에 지원을 하였고 지원하자마자 이름만 대면 알만한 IT Saas 회사와 면접이 잡혔다. 이제껏 아가 재우고 틈틈이 커버레터와 CV는 다 만들어두었지만 면접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여서 한 이 주간은 내 리소스와 인맥을 총 동원해서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보냈다. 결과적으로 오퍼는 받지 못했지만 하루를 200% 활용하려고 애썼던 시간을 지나며 많은 걸 느꼈다.


영어로 면접 보면 항상 내가 말하는 게 다 전달된 거 맞나, 한국어로 봤다면 더 나았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음. 그런데 이번에 여러 번 모의면접을 진행하며 Ringle 플랫폼과 전 직장 내 보스였던 P언니, APAC 지역 GM으로 일하고 있는 우리 아주버님께 피드백을 들었을 때 영어는 문제가 아니었음! ㅎㅎ 내 의사는 충분히 전달이 되고 오히려 한국말로 말할 때마다 더 설명이 잘 될 때도 있었음. 이게 몇 년간 공부하고 실전에서 부딪히며 이룬 큰 성과라고 생각함.

호주에 나온 지 4년 차,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활 속에서도 일부러 나를 영어권 영향 내에 두면서 자괴감과 성취감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일상을 살며 스스로를 굴렸음. 최소한 외국에 살면서 주류사회에 를 이끌진 못하더라도 거기 어떻게 끼어서는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늘 그런 곳을 찾아다니긴 한 것 같음.  

무튼 문제는 영어보단 콘텐츠였음. 내 경험과 스킬에 대한 명확한 정리, 그리고 지금 인터뷰하는 롤에서 요구하는 것, 회사의 비전과 내 비전이 어떻게 얼라인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음.

리크루터 면접부터 시작해서 면접을 여러 차례 진행했기 때문에 내 경력을 쭉 돌아보며 어떤 경험들을 했었고 그게 어떤 상황이었고 어떤 성과로 이어졌었는지 상세히 스터디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음.

면접 보는 과정에서 물어볼 것들은 다 물어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꾸미지 않고 진정성 있게 드러냈던 경험은 처음이었음. 나를 꾸며내서 얻는 잡 오퍼는 얻어봤자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번에 면접들을 진행하며 그 누구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음. 내가 묻는 것, 내게 중요한 가치 등등을 묻고 나누며 서로의 FIT을 확인한 과정이었던 것 같음.

그래서 더욱더 글로벌 회사나 기관에서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졌음. 결과적으로 호주 내에서만 일하는 기관, 호주 내에서만 일하는 회사는 지원할 생각이 1도 없어짐. 인더스트리가 조금 달라도 기존의 역할을 조금 더 확장할 수 있는 곳에 들어가서 PM 경험을 좀 더 업그레이드하고, Not-for-profit 쪽으로 넘어오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것 같음. 아니면 아예 PM 경력을 여기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Entry 레벨 잡도 지원할 예정임.

앞으로 내 비전이 무엇인지 내 비전과 회사에 기여할 수 있을 점들을 심도 있게 민한 뒤 지원해야겠음. 그리고 이런 걸 말했을 때 안 통하는 회사면 붙어도 안 갈 것임. 이번 면접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회사 문화 자체는 듣던 것처럼 참 좋아 보였음. 면접 진행하는 내내 케미도 너무 좋았었는데 그것과 별개로 역할이 너무나 퍼포먼스 드리븐한 롤이라 스스로도 이건 좀 아니다 싶긴 했었음.

이 모든 걸 얻게 해 줬던 8월 한 달의 경험이 참 소중하고, 그 경험을 하는 동안 아가를 봐주고 면접을 응원해 주고 함께 기도하며 이 과정을 견뎌내 준 남편과 시부모님 그리고 발 벗고 도와준 P언니 등에게도 너무나 감사하다.


다만 일을 할 생각을 하면 내 마음에 두둔하고 떠오르는 저항감에 대해서는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다. 내게 일이란 항상 나를 불태우며, 없는 에너지까지 끌어다 쓰며 하는 것이었어서 이걸 적당히 7~80%의 에너지만 쓰면서 지족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이곳 호주 직장문화는 절대 이전의 방식처럼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국에서 일하다 온 사람들에게 여러 번 들었었는데, 나는 그것도 다 직장 바이 직장, 팀 바이 팀, 사람 바이 사람이 아닐까 아직도 의심을 못 버렸다. 이곳에서 찐 글로벌기업 호주본사를 경험한 적이 없기에 아직 그 의심이 가시질 않았고 그래서 이번에 잡 헌팅에 성공하면 직접 경험해 볼 계획이다. 다만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 내 마음속에 강하게 자리 잡은 이 저항감의 실체를 바라보고 다스릴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일 시작하면 나 또 번아웃 오지 않을까, 늘 머리 아프고 스트레스받지 않을까, 가족과 시간 잘 못 보내서 문제가 생길 거야, 건강에 문제생기고 운동 안 하게 되고 정크푸드 먹을 거야.... 같은 말도 안 되는 저항을 흘려보내야만 잡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무언가 에너지의 흐름이 좋아지려다가도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모두 이 저항감 때문인 듯.



그래놓고 지금도 운동 안 하고 게으름에 빠져있으며 맨날 K 과자 먹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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