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기시감-원하지 않던 엄마의 모습이 내게서 보일 때
육아에 지쳐갈수록 남편과 나의 사이도 점점 멀어져 갔다.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나와 힘든 모습의 아내를 볼수록 남편은 지쳐갔다. 힘들다는 말을 그만하라고 했다. 고마워할 줄을 모른다고 했다.
라테파파가 핫했다. 당시 남편은 유럽계 회사의 일본 지사에 다니고 있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기대했지만 일본 회사 정서 상 그런 문화는 없었다. 다들 추가수당을 위해 야근을 밥 먹듯 했으며 출장도 잦았고, 출근시간도 일렀다. 남편은 그래도 외국인이어서 그런지 정시출근과 정시퇴근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만이 산처럼 쌓여만 갔다. 외국계 회사면 외국계 회사답게 육아휴직을 보장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출산휴가조차도 예정된 일수보다 적게 쓰고 바로 복귀해야 했다. 스웨덴 아빠들은 육아휴직도 1년씩 쓰고 유아차도 밀고 낮에 아이를 보는데(실제론 50%만 쓴다고 한다) 내 남편은 왜 출산휴가도 고작 6일이면서 육아휴직도 없는 것인가!(일본 남편들은 그나마도 쓰지 않는다)
남편은 여기 회사 문화를 따를 수밖에 없음에도 유럽 남편에 기준을 맞추고 남편의 육아참여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비난의 화살은 남편을 향했다.
너는 왜 아직도 아이를 제대로 안지 못하냐(당연히 나는 남편의 10배의 시간을 아이와 보내고 있다), 너는 왜 아직도 기저귀를 빨리 갈지 못하냐(나는 남편이 기저귀 가는 횟수의 20배를 갈았다), 너는 왜 밤에 아이가 우는 소리를 못 듣고 잠만 쿨쿨 자는 거냐(내일 출근해야 되니 한 사람이라도 편하게 내가 자라고 했다), 너는 왜 육아와 집안일을 너의 일이라고 말하지 않고 도와준다고 표현하냐(남편은 평균치 이상으로 집안일과 육아를 하는 편이다) 등등 꼬투리를 잡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잡을 수 있었다.
농담도 통하지 않았다. 긍정:부정의 비율이 20:1을 넘어야 유머가 통하는데 남편과 나는 겨우 1:1을 유지하고 있었다. 언제 이혼해도 이상하지 않을 비율이다. 부부싸움의 첫마디를 아내의 격한 목소리로 시작하는 경우 97% 확률로 이혼한다. 남편과 나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가 경멸 비난 방어 담쌓기로 15분 동안 지속될 경우 94% 확률로 이혼한다.
울고 있는 아이를 안고서 싸우고 울면서 매달리는 아이를 붙잡고 남편과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이 이상 싸우면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그만 대화를 멈추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버스를 타고 카페로 가서 편지를 썼다. 요즘 너무 힘든데 방법을 모르겠다. 너무 예민하고 지쳤다. 이해해 주길 바란다. 예전에 우리가 결혼을 결심할 때의 내 판단을 믿고 다시 노력해보고 싶다. 남편과 아이가 잠든 집안으로 조용히 들어가서 남편책상 위에 편지를 올려두고 잠이 들었다. 남편은 출근하면서 편지를 읽고 카톡으로 답장했다.
남편과의 갈등에서 주로 부딪히는 문제는 주로 체력저하에서 오는 문제였다. 그리고 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전달하기보다 뾰족한 언어로 감정을 잔뜩 실어 비난 또는 경멸의 형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문제였다. 나의 상황을 헤아려봤다. 누가 나의 상황이어도 힘들었을 상황이었다. 결혼하자마자 신혼여행에서 임신을 했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4주 만에 임신 사실을 알고, 8주 만에 입덧이 시작되었다. 임신 3개월에 일본으로 국제이사를 했고, 입덧은 임신 6개월까지 계속되었다. 출산을 일본의 조산원에서 했고, 조리원을 들어간 것도 아니요, 집안일을 해주거나 아기를 돌봐주는 사람 없이 출산 후 6일째부터 집에서 혼자 집안일과 육아를 시작해야 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빈혈이었지만 수유부에게도 철분 복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몰랐고, 흔한 영양제 하나 챙겨 먹지 않고 생후 16개월까지 모유수유를 했다. 내 몸을 생각하기보다 아이를 우선해서 생각한 행동들이었다. 모유 수유를 한 탓에 출산 후 4시간 이상 외출한 적이 없었고, 쉬고 싶으면 나가서 쉬면 될 것을 정당한 핑계 없이 외출하기를 꺼린 탓에 아이가 돌이 지나면서부터 주말 알바를 구했다. 토, 일 카페에서 4시간씩 일했는데 4시간이나마 아이와 떨어지고 싶다는 생각에 일을 시작했지만 출퇴근 시간을 합쳐 고작 5시간 외출에 그나마도 쉬는 게 아니라 서서 외국어 듣기 평가와 말하기 평가를 치르듯 일을 했으니 더 지쳐갔다. 그렇게 1년을 보내다 남편의 출장이 잦아져 알바를 그만뒀고 남편은 온라인으로 대학원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길게는 열흘 정도 1년에 세네 번 출장 혹은 해외 캠퍼스로 수업을 들으러 갔고, 아이와 함께 따라갔다 더 지독한 독박육아를 하고 온 다음에는 그냥 집에서 아이와 함께 지냈다.
남편은 일본어를 할 줄 몰랐고, 은행 업무, 병원 업무, 관공서 업무는 전부 내가 봐야 했다. 나 역시 겨우 JLPT 1급을 턱걸이로 땄을 뿐 허접한 일본어 실력으로 사람을 만나고 서류 작업을 해내고 아이를 돌보는 일이 언제나 숨차게 느껴졌고 좀 더 잘하고 싶다는 열망과 따라주지 못하는 현실과의 갭 차이에 절망감을 느꼈다.
현지 언어를 완벽하게 할 수 없는 나라에 가서 현지어로 사람을 사귀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어찌 쉬울 수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조건임에도 밝고 긍정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화목한 집을 보면 자괴감이 들었다. 긍정적 에너지를 가지고 자신이 가진 자원을 활용하고 커뮤니티를 적극 활용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를 즐기는 사람을 보면 자존감이 높아 보였고 부러웠다.
나의 상황이 객관적으로 봐도 힘들만한 상황이었다는 것, 그리고 남편이 느꼈을 한 여자와 한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라는 무게감, 해외로 파견되면서 경험한 적 없던 부서를 새로 배워야 하는 어려움, 낯선 언어와 낯선 문화 속에서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 남편에 대한 나의 기대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높았다는 것, 아이를 낳기 전 내가 육아의 어려움을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듯 겪지 않은 사람은 그 어려움을 상상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나의 힘듦을 내가 인정해주고 나니 다른 사람에게 징징대면서 힘듦을 토로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이런 대사가 있다. “잘 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쉬워.” 그렇다. 몸이 조금 더 편했다면 덜 힘들었을 테고 아이에게 조금 더 친절할 수 있었을 거야. 아니야. 그렇다고 모든 잘 사는 사람들이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는 건 아닌데?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그럼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잘 살고 못 살고 몸이 편하고 안 편하고 에서 친절함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고달프고 고된 험난한 육아의 상황에서도 아이에게 보여주는 그 친절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아마도 부모의 부모에게서 오는 걸까? 그렇게 키워졌기에 그것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까? 마치 내가 짜증으로 키워졌기에 자연스레 짜증을 내듯이? 그렇지만 여기서 짜증을 걸러내야 한다. 온몸으로 받아왔던 윗대의 짜증들을 아이에게는 전달하고 싶지 않기에. 어떻게 해야 내 대에서 짜증을 끊어낼 수 있을까? 마치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돈을 버는 것처럼, 이 정신적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방법을 찾아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을 읽었다. 읽고 생각했다. 이대로만 하면 되겠다고. 그런데 잘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열리는 감정코칭 전문가 과정을 들으면서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알고 도움을 받고 싶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한국으로 2주에 한 번씩 아이를 데리고 가서 수업을 들을 수가 있나?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코로나가 터졌다. 이직을 고민하던 남편에게 스카우트 제의가 왔고 이직 절차를 밟으며 한국으로 왔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며 적응하는 동안 주말에 열리는 감정코칭 전문가 과정을 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