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나를 낳았다

5장. 저항-받아본 적이 없던 것을 주어야 할 때

by 홍시

아이가 울고 있을 때 아이가 원하는 것은 하나다. ‘안아줘.’ 심지어 팔을 벌리며 안아달라는 제스쳐까지 취할 때도 있다. 하지만 때때로 안아주기가 힘들다. 내가 받아본 적 없는 따뜻함을 주어야 할 때.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이 따뜻한 포옹이라는 것을 알지만 내가 받아본 적이 없기에 주기가 힘들고, 내가 받아본 적 없는 것을 너에게는 주어야 하는 이 순간이 사무치게 외롭고 갈등이 된다. 이건 어린 시절 혼자 울던 나를 내가 안아주는 거야, 라는 생각으로 안아주면 좋으련만 과거에 내가 울던 모습과 매몰차게 안아주지 않고 나를 더 외롭게 했던 차가운 엄마 얼굴이 스치면서 나는 얼어붙는다. 아이의 손을 잡아주고 싶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애착 연구에 따르면 엄마와 아기의 애착 유형의 70~75퍼센트는 그 아기가 자라서 엄마가 되었을 때 반복된다고 한다. 애착 관계는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안정적 애착, 불안-양가감정적 애착, 불안-회피형 애착, 혼란형 애착이다. 안정적 애착은 가장 바람직한 형태로, 아이들이 보호와 정서적 돌봄이 필요할 때 양육자에게 다갈 수 있고 지지받을 수 있다는 기대와 신뢰가 탄탄한 애착관계이다. 불안-양가감정적 애착은 양육자와 떨어지면 몹시 불안해하지만 양육자가 돌아왔을 때도 안심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인다. 불안-회피형 애착은 양육자가 떠나거나 돌아오거나 무관심하며 양육자를 회피한다. 혼란형 애착은 양육자에게 강하게 다가가다가 강하게 도망가거나, 양육자와 재회할 때 멍하거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방향을 잃고 혼란스러워한다.


엄마와 나는 불안-회피형 애착관계를 형성했다. 내가 외롭거나 고통스러워 할 때 거의 무반응으로 대응하거나, 울면 혼내고 야단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감정적으로 방임형 또는 억압형이었다. 안아줘도 회피하거나 안기려 하지 않고, 강한 애착을 느끼지 못하고 조금 커서는 반항적이 되고 낮은 자존감과 부정적 자아성을 지녔었다. ‘나는 나쁜 아이다’, ‘엄마는 날 미워하는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 낮은 자존감과 부정적 자아상을 지녔었다. 환경에서 긍정성보다 부정성을 더 빨리 포착하고, 위축이나 과잉 행동을 보였었다.


어릴 때 엄마가 날 보며 웃어준 기억은 손에 꼽는다. 생선가시를 잘 발라내는 엄마를 보며 고양이 같다고 말했을 때 엄마가 고개를 젖히며 웃었던 순간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하교하는 길에 집 앞에서 우연히 장 보고 돌아오는 엄마를 보며 "엄마~!" 하고 뛰어갈 때 엄마가 날 보며 미소를 지어줬었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내 얼굴을 보고 엄마가 웃어줬던 기억의 전부다.

대부분 날 향한 엄마의 얼굴은 화가 나 있거나 굳어 있었다. 주로 야단을 맞았고 칭찬이나 지지나 격려의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사랑한다는 표현 역시 들어본 적 없었다. 남동생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걸 옆에서 보거나 들은 적은 많았다. 부러웠고 슬펐다. 외로웠다. 울 때는 항상 혼자였고 날 안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소리 내어 울 때는 주로 맞고 있었고, 숨죽여 울 때는 주로 몰래 울었다.

주양육자의 화난 얼굴은 각인이 된다고 한다. 어떤 행동을 할 때 양육자가 화를 내는지 기억하지 못하면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잊을 수 없이 각인된 얼굴을 나 역시 내 아이에게 똑같이 보여주고 있었다.


엄마는 돈과 노동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너희들 먹여 살리려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먹이고 입혀주지 않았느냐.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날 시간에 독서실로 학교로 운전해서 데리러 가지 않았느냐. 아침으로 저녁으로 힘들게 밥을 지어 먹이고 치워주지 않았느냐. 그렇게 힘들게 뒷바라지를 해줬는데 사랑을 못 받았다하니 엄마로선 억울했을 것이다. 그렇게 표현된 사랑을 느끼지 못한 건 아니다.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엄마로부터 양가감정을 느꼈다. 엄마로부터 위로나 칭찬의 말을 들은 적 없어 외롭고 부정적 자아가 형성된 탓을 엄마의 잘못으로 돌리고 싶지만 엄마도 엄마 나름의 최선을 다했음을 알고 있기에 마냥 비난할 수도 없었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당시엔 다산을 장려하던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셋째 아이부터는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했다고 한다. 엄마가 돈이 없다는 말에 내가 반박하면 항상 하던 말이, "돈이 없어서 병원비를 못 내면 어떡하냐" 였다. 그렇게까지 아플 일이 있나? 크게 아픈 적 없던 삼 남매를 봤을 때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이해가 간다. 아이가 아플 때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두려웠을지 지금은 이해하지만 당시엔 이해하지 못했다.


임신 중반에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어 부른 배를 안고 비행기를 타면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마주한 엄마는 여전히 나의 외로움과 힘듦보다 본인의 힘듦이 우선이었다. 성인이 된 나 역시 성숙한 성인으로서 엄마를 향한 위로나 격려의 말을 보낼 법 했지만 기대하지 말아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기대하고 다가간 뒤 상처만 받고 돌아와서는 역시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어 하고 후회를 반복했다.


엄마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면 아기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갖은 노력을 써서 엄마에게서 반응을 보려 하지만 끝내 엄마의 표정이 변하지 않을 경우 아기들은 울거나 머리를 부딪히며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음을 표현한다. 양육자와의 연결이 끊어졌을 때의 기분은 마치 망망대해에서 돛과 나침반을 잃은 기분이 아닐까. 방향도 모르겠고 바람이 분들 움직일 수 없는 배를 타고 있는 기분, 고등학교 때 독서실에서 자주 느꼈던 기분이다. 일기에도 써놓았다. 마음에 폭풍우가 몰아치는데 어디에 배를 묶어둬야 할지 나에게 닻이 있기는 한지 알 수 없었다. 섬 하나 보이지 않는 대양 한 가운데서 돛도 없고 노도 없이 뜨거운 태양을 받으며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기분, 독일로 유학 가서 느낀 기분이 그랬다.


아이를 낳은 엄마가 되어 다시 그 기분을 느낄 줄이야. 자상한 엄마는 분명 이렇게 할 것 같은데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만 봤던 엄마들은 이럴 것 같은데, 왜 그게 잘 안 되지. 아이에게는 엄마가 그랬듯 자신의 힘듦을 내색하지 말아야지, 우는 아이에게 따뜻한 포옹과 위로를 주어야지 하고 머리로는 다짐을 하면서도 매번 패배했다. 자라온대로 아이를 키울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고 절망하고 있을 때 한 권의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

스스로 정서적 흙수저 임을 확신하는 내 마음을 들여다 본 듯 책 제목은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었고 목차와 리뷰를 읽은 다음 이북으로 결제하고 단숨에 책을 읽었다. 책은 어떻게 정서적 흙수저가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정서적 결핍을 아이에게 대물림하는지, 아이를 정서적 금수저로 키우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아이를 정서적 금수저로 키우고 싶었다. 정서적 흙수저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길인지 너무 잘 아니까. 다이아몬드 수저는 주지 못할지라도 가져본 적 없는 정서적 풍요와 안정을 꼭 주고 싶었다. 목표가 생겼다. 방법을 찾아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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