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나를 낳았다

4장. 악순환 -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엄마

by 홍시

아이를 전담하는 사람이 나 하나기에 사소한 것 하나라도 잘못되면 오롯이 내 책임이라는 생각. 그래서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은 집착을 낳았고 집착은 불안을 낳았으며 불안은 곧 우울로 이어졌다. 나는 웃음을 잃어갔고 자주 인상을 썼으며 언제나 핸드폰을 보며 골몰해 있었다. 혹시나 놓친 것이 있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정보의 바다를 헤매었다. 개월 수 별로 발달단계를 입력하고 그래프에 나오는 발달 단계에 아이가 못 미치고 있을까, 설명에 나오는 행동을 아이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개월 수에 맞는 놀이는 무엇일까 혹시 나만 그 놀이를 못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내 생각에 몰입하며 부정적 생각과 감정을 강화했고 그동안 남편과 아이는 소외되어 있었다. “잠깐만, 이것 좀 하고.”, “잠깐만, 나 바빠.” 뭘 그리 열심히 찾았던 건지 내가 집중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내 앞에 있는데 나는 다른 곳에서 안심과 위안과 웃음을 찾고 있었다.


존 가트맨 박사의 말에 따르면 배우자를 1순위로 두지 않는 모든 것은 외도다. 나는 핸드폰과 외도를 했고, 아이를 두고 핸드폰에서 기쁨을 찾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의 기쁨은 일시적이고 피상적이었으며 내 삶과 관계없이 휘발되는 기쁨이었다. 허무와 불안이 더해갔다. 세상과 단절하고 주위와 단절했다. 가장 가까운 남편과 아이와 단절했고, 원가족과 단절했으며,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 세상에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외롭다. 이런 나는 대체 누가 돌봐주지?


핸드폰과 외도를 하는 사이 아이와 남편은 더욱 나로부터 소외되었다.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해도 현실로부터 잠시 도피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해야 할 일과 견뎌야 하는 일상의 무게는 똑같았다. 오히려 현실도피를 하는 사이 집안은 더 엉망이 되어 있었고 수면부족으로 머리가 아팠으며 멍한 머리로 아이를 돌보는 하루가 더 길게 느껴졌다. 필라테스를 끊어보았지만 저녁 시간에 나가고자 할 때마다 치러야 하는 아이의 눈물 젖은 얼굴이 발목을 붙잡았다.


원했던 삶을 살고 있고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으며 남들이 보기엔 이상적인 그림의 삶을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허덕거리고 있는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육아 번아웃이자 육아 우울증이었다. 그리고 인생의 고비에 주로 스스로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고 나를 방치했었다. 앞에 놓인 상황에 무기력했다.


아이를 돌보는 상황에 매몰된 나머지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았고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몸이 피곤하고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아이를 기르고 있는 그때도 지금도 나는 내 삶의 주인이자 내 시간의 주인이었다. 다만 절대 시간이 줄어들 수는 있으나 여전히 나를 돌볼 수 있었다.


내 마음을 알아봐 주고 내 컨디션을 체크해 주고 관리하는 것을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해주는 것이 그 당시 나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었다. 나를 돌보는 것이 가능한 다음에야 비로소 아이를 돌볼 수 있음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남편을 탓하고 주변을 탓하고 아이를 탓했다. 그리고 애먼 사람들을 탓하는 내가 미워 나를 탓했다. 예쁘게 포장한 내 모습만 보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얻고자 안달복달했다. 나, 아이, 남편 가장 중요한 세 사람을 제외한 엉뚱한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자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육아는 물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의 안녕이 가능하지 않고는 내 주변도 안녕할 수 없었다.


누군가가 나의 안녕을 보살펴주기를 바랐다.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해줄 누군가를 찾았지만 그 어디에도 그게 가능한 사람은 없었다. 24시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 주고 불편한 걸 살펴봐주고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였기 때문이다. 나를 방치하고 무시하고 보살피지 않자 몸과 마음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보다 우선순위가 되어버린 것들을 시기하고 질투했다. '나는 대체 언제쯤 돌아봐줄 거야? 나 힘들다니까!!'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가장 가까운 타인에게 쏟아냈다. 남편이 표적이 되었다. 다음 타깃은 아이였다. '너 때문에 내가 우선순위에서 멀어졌잖아!! 난 언제쯤 다시 일 순위가 되는 건데!!'


아이가 없을 때에도, 남편이 없을 때에도, 일 순위였던 적이 없던 내가 아이가 사라진다 한들, 남편이 사라진다 한들 다시 나로부터의 돌봄을 받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우선순위를 재설정해야 했다. 우선순위를 재설정하는 것이지 나만 보살핀다는 뜻이 아니다.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고 안쓰러워하고 마음을 쓴다는 것이지 모든 욕구들을 뜻대로 하게 내버려 둔다는 뜻이 아니다. 나를 돌보아달라는 외침을 듣지 못할 뿐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돌보아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다. 배움이 부족하였으나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몰라 깜깜하고 축축한 동굴 속에서 손을 비비고 몸을 떨어가며, 그리고 악을 써가며, 악을 써도 해결되지 않음에 답답해 가슴을 치며 발을 구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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