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나를 낳았다

3장. 죄책감-지금, 여기에 마음을 두고 있지 못하는 엄마

by 홍시

오랜만에 만난 후배에게 이런저런 어려움들을 토로했더니 “언니, 그래도 행복하죠?”라고 물어왔다. 말문이 턱 하고 막혀왔다. 숨이 막혔다. '아니, 하나도 행복하지 않아. 언제나 숨이 차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눈물도 나지 않아. 지금 행복한 상태여야 하는데 행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마음껏 울 수도 없어. 행복하냐고? 인생에서 지금보다 힘든 순간이 한 번 있었는데 거기에 비할 바 없이 불행해. 매일이 지옥 같아. 벗어나고 싶어. 그런데 이런 생각하는 스스로가 너무 못나서 견딜 수가 없어. 엄마로서 행복해야 하는데, 왜 난 못 느낄까? 너무 괴로워. 아이가 우는 소리가 마치 경고음 같아. 엄청 무거운 쇠공이 내 발목에 채워져 있는 것 같아. 이 족쇄를 풀고 싶어. 그런데 이런 말조차 애 앞에서 하는 게 죄스러워 말할 수가 없어. 그런데 이런 생각조차 아이가 느끼고 있을 것 같아 너무 괴로워. 죽고 싶어'라고 말하지 못했다.

“응. 행복한데 딱 그만큼 힘들어. 얼마나 힘든지 가늠이 돼? 내 애니까 엄청 예쁠 거 아냐. 근데 그만큼 힘들다니까?”

“우리 언니는 아기 발 냄새 맡으면 행복하대요.”

솔직히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부러웠다. 나도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애정을 갖지 못하고 있는 나를 들킬까 봐 겁이 났다.

“그래. 발 냄새도 귀엽지.”

애써 이해하는 척했다. 자신이 한 번 더 혐오스러웠다.


“나는 아기 키울 때가 제일 행복했어. 아기 업고 밤새 재운다고 산책할 때 너무 행복하더라고.”

‘맞죠! 저도 알아요. 저도 진짜 행복하더라고요.’라고 말할 수 없어서 비참해졌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매일 한 시간씩 아이를 안고 짐 볼 위에서 바운스와 무릎 바운스를 하는 동안 같은 동요를 한 시간째 부르며 나는 핸드폰을 했다. 도대체 언제 잠드나 화가 났다. 토닥토닥해야 하는 엉덩이도 한 번씩은 팡팡 두드렸다. 남편 품에서는 잠들지 않고 엉엉 우는 애가 원망스러웠다. 정확히는 내 품에서도 한 번에 잠들지 않는 아이를 남편 품에서 잠들지 않고 우는 모습을 못 참고 결국 내 품으로 데려와야만 하는 내가 싫었다. 한편으로는 안아서 재우면 안 되고 눕혀서 재워야 한다는 책 속의 한 줄 때문에 잘못하고 있다는 열등감이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총체적 난국 속에서 행복을 놓치고 있었다. 아이 가진 엄마가 느껴야 할 것 같은 행복감을 느끼며 아이를 재워주지 못한 못난 엄마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목을 조여 왔다.


그렇다고 아이가 예쁜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잠들기 직전 머리를 살짝 들어 내 얼굴을 보고 내가 있음을 확인하고 안심한 듯 웃으며 풀썩 쓰러지는 아이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거실에서 한 시간을 서성이며 지쳐갈 즈음 달빛에 비치던 아이의 미소를 보았을 때 행복했다. 어둑한 방 안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이 미소를 본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다,라는 생각에 아이의 소중함과 연약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하지만 잠깐 옷 가지러 옷 방에 다녀오면 아이는 눈앞에서 사라진 내가 영원히 사라지기라도 할 듯 대성통곡하며 나를 따라다니기 바빴다. 화장실도 안 보내주고 밥 먹을 시간도 주지 않는 생명체와 24시간을 함께 지내다 보면 소중함도 연약함도 어느새 잊고 제발 내게 인간다운 시간을, 사람의 시간을 허락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것이다.


엄마로서 느껴야만 하는 행복감, 엄마라면 당연히 웃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 아이 옆에서 지친 기색으로 핸드폰을 하고 있었던 이름 모를 아이 엄마에게 질책의 눈빛을 보내던 아이를 낳기 전의 내 모습, 사회가 생각하던 엄마의 모습을 나도 똑같이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벗어난 사람들의 모습을 비난했었다. 내가 지금 찔려하는 것은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당신은 엄마가 될 자격이 없다고 비난할 것이 두려워서일까, 엄마가 지녀야 할 태도와 마음을 지니고 있지 않은 내 모습을 사회에 들킬 것이 두려워서일까.


결국 나는 사회와 똑같은 잣대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과 같은 기준으로 나를 바라보며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엄마라면 행복해야지. 엄마라면 아이가 세상 누구보다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아이와 눈 맞춤하고 언제나 정성껏 교감하고 반응해 줘야지. 누구보다 잔인한 잣대로 내가 나를 보며 나를 비난하며 동시에 남편의 눈빛을 질투했다. 너는 이 고통을 겪고 있지 않으니까 그렇게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거야. 가끔씩 만나는 손주를 그만할 때의 나보다 더 예뻐하는 조부모들의 모습을 보며 질투했다. 나도 손주보고 싶네. 나도 그렇게 내 아이를 가끔 만나 예뻐만 하면 좋겠네.


내가 선택한 일련의 결정들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했다. 내 인생이고 내가 택한 엄마의 삶이었음에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모습을 그려놓고 그 틀에 나를 끼워 넣으려 애썼다.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내가 되고 싶은 것보다 내가 되어야 하고 해야 하는 일들에 집중했다. 그 결과 나는 나를 포함한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었다. 내가 내 인생을 살고 있다는 주체성을 느끼지 못했다. 멱살 잡혀 끌려가듯 하루하루를 버티고만 있었다.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이 있었고 그 모습에 내가 부합하지 않자 나는 나의 능력과 가치를 의심했다. 끊임없이 내 가치를 증명할 다른 방법을 찾으려 매달렸고, 나의 무능력이 탄로 날까 두려워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을 자꾸 미루거나 집중해 일을 처리하지 못했다. 현재를 불만족스러워하고 주변을 탓했으며 나를 비난하고 나를 혐오했다.


엄마라면 언제나 아이가 사랑스러워야 한다고 흑백논리로 사고했고, 나는 잘못된 엄마라는 잘못된 결론으로 비약했고, 남편이 육아휴직을 쓸 수 없다는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췄고, 남편이 아기는 잘 못 돌보지만 청소를 잘한다는 긍정적인 것을 무시했다. 엄마라면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스스로 만들거나 혹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에 나를 가두어 놓고 채찍질할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나의 모습을 그리고 그것을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해나가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리지 못했다. 질문하지 못했으므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깊은 수렁에서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지는 늪 한가운데에 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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