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나를 낳았다

2장. 나를 위한 일 – 이 노력은 아이를 위한 것일까 나를 위한 것일까

by 홍시

조금이라도 편하게 아이를 돌보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육아는 아이템이라던데 몰라서 고생하고 있는 도구가 혹시 존재하지는 않을까. 밤마다 아이가 잠들 때마다 검색하고 블로그를 뒤지고 맘카페를 뒤지면서 혹시라도 놓치고 있는 정보가 있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정보의 바다를 헤매었다. 이걸 사면 좋을까, 저걸 사면 혹시 실패할까, 몇 번의 실패 끝에 그래도 혹시 좋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이것저것 사보았지만 결국 끝은 똑같았다. 내 손을 거쳐야 한다는 것. 엄마의 힘듦을 덜어준다고 광고하는 어느 것 하나 내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것들이었다. 받아들여야 했다. 아, 무엇을 사든 내 수고로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구나. 나를 갈아 넣어야만 키울 수 있는 거구나.


임신 중에 사서 읽은 육아서 달랑 두 권에서는 수면교육을 강조하고 있었다. 가장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니 이유가 있는 추천이겠지. 그런데 잘 안 되었다. 잘 안 되는 정도를 떠나서 매일이 고통이었다. 지금 이 시기에 올바른 수면습관을 들이지 못하면 평생 고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스스로 잘 수 있게 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 되었다. 잠드는 것에 대해 자신이 없어 평생 고생했기에 자꾸만 조바심이 났다. 머리만 대면 잠드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머릿속의 온갖 상념들과 잡념에 사로잡혀 잠 못 이루던 수많은 밤과 그로 인한 부작용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너는 그런 밤들을 보내면 안 되는데. 혹시 나와 같이 잠 못 이루는 밤들이 길어지면 내가 제대로 못 가르쳐서 그런 걸까 봐 지레 짐작하고 섣불리 미안해했다. 그래서 더 매달렸다. 어떻게든 수면 교육이라는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잠과 투쟁하고 잠과 대치하던 날들을 끊어준 건 ‘느림보 수면교육’이라는 책이었다. 책에서는 느려도 좋으니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조언해 주었다. 맞아. 너무 힘들었어. 너무 많은 에너지와 마음을 소비했어. 느리면 어때. 괜찮다고 하잖아. 중요한 건 아이와 나잖아. 잠들지 않는 아이 때문에 아이가 미워지면 안 되잖아. 아이를 탓하면서 사이가 나빠지면 그게 더 최악 아닌가. 그만하자. 우연히 본 다큐 속 미국에서는 아기를 재우는 스타일이 시대별로 유행처럼 바뀌었다. 이렇게 일관성 없이 꾸준히 바뀌어왔다면 사실 양육방식이라는 건 없을지도 몰라. 가장 좋은 건 아이에게 그리고 그 아이를 양육하는 당사자에게 가장 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방식일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면 교육을 중단했다.


주 양육자의 잠 패턴과 남편의 귀가시간과 아이의 잠 패턴을 고려하지 않은 정확한 시각에 시작하는 고된 재우기 과정을 삭제했다. 대신 아이가 피곤해하는 기색을 보일 때까지 충분히 놀아주고 남편이 귀가하면 남편과 충분한 시간을 갖게 한 다음 우리가 잠들 수 있는 시간에 아이도 옆에 누워 같이 재웠다. 불을 어둡게 하고 책을 읽고 아이가 하품을 여러 차례 하면 불을 끄고 누웠다. 남편과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고 있으면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혹은 남편이 잠에 든 뒤 얼마 안 있어 아이도 잠에 들었다. 그러고 나면 살그머니 빠져나와 혼자 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처음엔 아이가 잠에 들길 기다리는 시간도 지겨웠지만 점점 아이가 빨리 잠에 들었고 그 시간조차도 견딜 만한 시간이 되어갔다.


아이가 불안감을 느끼게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교육은 없다. 부모가 옆에 없으면 수시로 깨고 불안해하는 아이는 부모 옆에서 함께 재우는 것이 맞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감정이었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느끼고 안심하고 편안한 마음 상태가 되어야 잠에 들 수 있다. 아이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은 육아법은 아이를 위한 방법이 아니었다. 어른을 위한 방법들이었다. 어른이 좀 더 편안하게 자기 위해서, 어른이 좀 더 쉬기 위해서였다. 살면서 느꼈지만 이번에도 편한 길이 정답은 아니었다. 천천히 돌아서, 더 인내하고 더 기다려야 했던 길들이 정답이었다.

작가의 이전글1부 나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