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의 온도조절

불꽃튀는 눈치게임

by 홍홍

남편과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함께 산지 한 달 반 정도 되었다. 우리는 잘 지낸다. 욕심이나 자기주장이 크지 않고 서로를 배려한다. 그런데 그게 다행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생활방식이 사소한거 하나까지 전부 다르다. 실내적정온도, 세탁 주기, 일어나고 잠드는 시간, 유튜브 알고리즘, 영화취향(말해뭐해), 책상 위에 놓는 물건들, 주로 마시는 술의 종류 등등. 부부 사이가 다 그렇지 뭐, 서로 맞춘듯 비슷한 커플이 몇이나 있겠어, 다 다르고 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싸운대, 그걸 지혜롭게 해결하는게 행복한 부부생활의 비결이야,… 다 너무도 많이 들어왔고 익숙한 말들이다. 그리고 교만하게도 나는 그런 사사로운 것들로는 갈등하지 않고 살 줄 알았다. 마음씨 넓은 내가 전부 다 품어주거나, 나를 너무나 사랑하는 남편이 전부 다 받아주거나, 둘 다일 줄 알았지.






그런데 그건 전부 영화 속 그린듯한 이상적인 장면이었다. 남편은 나를 너무나 사랑할지 몰라도 나는 그리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니니까. 몰랐는데,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추위를 더 탄다. 자취를 시작하고 처음 안 사실이었다. 그 방에서 겨울을 다섯 번 보내며 약간의 서늘함에 익숙해지고 나서 남편과 살림을 합치고 나니 실내온도는 20도로 뚝, 떨어졌다. 나는 한겨울 30도에 육박하는 친정의 뜨끈한 거실에서 30년간 등짝을 지져온 덕에 겨울에도 반팔 반바지를 입고 살았다. 그런 내가 24도의 자취방 온도에 5년간 겨우 적응을 하자마자 20도밖에 안 되는 냉골로 다시 굴러떨어진 것이다. 그 한기를 견뎌낼 수 있을리가 없었다. 방 안에서 추위를 느끼면 불행감이 온몸으로, 손끝으로 발끝으로 퍼져나간다. 추우면 불행해진다. 나는 왜 이렇게 추울까, 왜 이렇게 몸이 떨릴까, 왜 이렇게 온통 차갑고 딱딱할까, 아아, 불행해, 불행해……. 이 추위를 견디기로 결심할 공간이 내 마음속엔 없었다.






마음의 빈자리가 충분치 않은 나는 입을 비죽거리고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너무 춥다. 20도는 좀 아닌 것 같다. 너는 왜 잠옷 아래 그렇게 내복을 껴입고 있니. 방 안에서 그러는거 아니야. 불을 올리면 되잖아. 왜 게임할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거야. 그냥 보일러를 올리라구 제발. 그럴 때마다 한 마디를 거르지 않고 촘촘한 반론이 날아왔다. 너무 춥지. 그런데 뉴스에서 겨울철 실내적정온도는 20도라고 했어. 영하 15도에 반팔, 반바지를 입는다니. 원래 겨울에는 껴입고 있어야 하는거야. 이렇게 입으면 불을 안 올려도 돼. 너 에너지 절약, 환경보호에 관심 많잖아. 반팔 입고 보일러로 30도 때면 자원이 많이 낭비되겠지. 하나같이 다 맞는 말이라 말문이 막혀버린다는 말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내 추위도 힘들었지만, 그의 절약도 지혜로웠다.






서로 한 번씩 주고받은 후에도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우리는 다른 전략을 세웠다. 물밑작업. 위에서는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수긍하는 척을 하면서, 뒤돌아서는 몰래 자신이 생각하는 적정온도로 보일러를 돌리는 것이다. 나는 저녁을 먹으려는데 실내온도가 20도 언저리여서 너무 춥다고, 이대로 뭔가를 먹으면 소화가 안될 것 같다고 짐짓 불쌍한 체를 하면서 보일러를 24도로 바짝 올렸다. 그리고 남편은 식탁을 정리하고 나서 후식으로 먹을 맥주캔을 티비 앞에 가져다 놓으며 나 모르는새 온도를 21도로 낮추어놓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맥주를 마시며 보일러 설정온도가 낮아진 것을 눈치채곤 화장실에 가는 척 하면서 다시 온도를 23도로 올려두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남편은 내가 사실 너 몰래 보일러 낮춰뒀다며 끌끌거리고 웃는다. 그런 남편에게 그런줄 알고 나도 온도 도로 올린거 너 몰랐냐며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마지막에 웃는자가 승자라고 했지, 그 날은 내가 이겼다.






하지만 남편은 승리의 대상이 아니니까. 우리는 서로 이기고 지려고 만나서 같이 사는게 아니라, 그냥 같이 있는게 좋아서 앞으로도 계속 같이 있기로 마음 먹은 사람들이니까. 현재 우리집 겨울철 실내 적정온도는 23도로 맞춰졌다. 치열한 토론과 비겁한 작전들이 여러차례 오간 결과 자연스럽게 도달한 목적지이다. 남편은 온도를 1도 양보했고, 나는 긴팔 잠옷을 꺼냈다. 아이,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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