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이는 순례길

신간읽기 프로젝트 30

by 홍유

아는 만큼 보인다.


이 말을 들어보셨을지요? 저는 이것이야말로 20세기 최고의 명언이 아닌가 합니다. 그 ‘아는 만큼 보인다’가 처음 실렸던 그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올해 30주년이 되었습니다.


1994년 남도 답사 일번지로 시작했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지난 30년 동안 전국 곳곳을 돌고 중국과 일본을 지나서, 서울까지 톺아주었습니다. 저는 모든 책이 다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산사 순례를 정말 따뜻하게 읽었습니다. 산속에서 자연과 어우러졌던 우리의 사찰들. 산등성이의 곡선에 맞추어지었다던 각 건물의 처마선이 왜 그렇게 기억에 남았는지요. 그날 이후로 산사에 가게 되면 저는 늘 능선과 처마선을 맞추어봅니다. 그렇게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던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하고, 그 세심함에 또다시 감복합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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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박물관 순례1, 유홍준, 창비, 2023 / 그림출처: 알라딘 인터넷 서점


이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국토 박물관 순례로 이어집니다. 역사 연표에 맞추어서 그간의 모든 이야기들이 찬찬히 순서를 잡아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마치 단편적인 기억들로 가득했던 지난날들이 하나의 소설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랄까요? 가장 먼저 연표의 첫 단어가 목차에 나옵니다. 경기 연천 전곡리.


처음 국사를 배울 때, 구석기시대의 유적지로 배운 기억이 생생합니다. 구석기-뗀석기-경기 연천 전곡리. 국토 박물관 순례에서는 그 ‘경기 연천 전곡리’를 시작으로 우리의 역사에 대한 운을 뗍니다. 전곡리가 발견되던 그 기적 같던 우연. 처음 발견했으나 그 장소를 전곡리로 남겨 주었던 최초 발견자의 너그러움. 전곡리에서 발견되었던 수많은, 삶의 흔적들. 그리고 지금 그곳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까지. 돌 하나에 새겨졌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삶을,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노력을. 돌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서, 흙 한 줌에 이야기를 담아서 그렇게 따스하게 살려서 전해 주네요.


전곡리를 지나서 부산 영도의 패총. 영도가 왜 영도가 되었는지, 현대사를 가만가만 듣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신석기로 날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울산 언양으로 향하면서 신석기, 청동기, 초기 철기 시대의 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함께 살게 되지요. 초기 철기 시대와 함께 맞물려 흐르는 고구려의 이야기. 아시지요? 고구려 유적지는 우리나라에서 찾기가 힘듭니다. 대부분의 유적지는 만주 지역과 북한에 걸쳐 있습니다. 그렇기에 직접 가서 볼 수가 없는 곳이지요. 오직 (오래전) 사진과 이야기로만 볼 수 있는 곳. 그렇기에 더욱 아쉽고 아까운 역사입니다. 제가 처음 역사를 배울 때에는, 통일이 되어서 가볼 수 있을 줄만 알았던 곳인데, 이제는 중국 쪽의 유적지도 접근할 수 없어져서 더욱 애절하게 느껴집니다.


중국의 동북 공정이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잠시 이 책에서도 그런 언급이 나옵니다. 동북 공정에 의해 발해 지역의 역사가 모두 숨겨지고 있고, 우리네 역사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입니다. 고구려와 발해를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우리들의 삶. 단순히 사신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수렵도가 중요한 것이 아닌, 그 시대의 삶을, 이야기를, 강처럼 흘러오는 시간을 잃어가는 것이 더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는 '강'의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옵니다. 책에도 전문이 나오지만, 아마도 유홍준 교수님께서 고구려 편에서 가장 하시고 피었던 말씀이 아니었을까 싶은 신경림 시인님의 시를 조금만 옮겨 볼게요.


평화롭게 사는 것의 아름다움을,
어두웠던 지난날들을
제 몸속에 깊이 묻으면서.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신경림,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가제본책 214쪽)


이번 가제본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가제본이 된 책을 받아 들었을 때, 마치 나의 문화 답사기 1권의 초판을 구입한 것만 같았습니다. 온통 흑백의 책, 빽빽한 글자들. 이것이 얼마 만에 보는 흑백 책인가요? 가제본 책이 뜻하지 않게 저를 30년 전으로 데려가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얼마나 아끼면서 보고 또 보았는지 모릅니다. 지난 30년을 강처럼 흘러서 다시 만나게 된 새로운 흐름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가슴이 설렙니다. 아마도 이번 시리즈는 역사 연표와 함께 신간 알림을 해 놓고 또 하나씩 구입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새삼스레 느끼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는 참으로 아름답고, 참으로 소중하니까요.




표지 이미지: 국토 박물관 순례(창비, 2023, 이미지 출처: 알라딘 인터넷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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