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와 함께 - 7. 봄처럼 씁니다.
육아를 하면서부터가 아니었을까? 로맨스 소설의 세계에 조금씩 빠져들던 것은. 우연히 들어간 한 웹페이지에서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클릭을 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웹소설의 페이지 구성에 적응하지 못해서 너무나도 어색했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그 어색함을 눌러가며 하나의 연재분을 본 후, 소설의 처음으로 가서 찬찬히 정주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를 재워놓고 밤 9시부터 10시까지, 딱 그 한 시간. 몸은 너무나도 힘들고 잠은 쏟아졌지만, 그 한 시간이나마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곳과 전혀 다른 세상으로 떠날 수 있다는 것은 고된 하루 속에서 큰 위안이 되어 주었다.
그 위안 속에서 처음으로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도 그 마음의 실체를 잘 몰랐다. 다만, 읽고만 있어도 입가에 살그머니 미소가 떠오를 수 있는 글, 지금 나의 고단한 일상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반짝반짝 빛나던 예전의 그 나날들을 상기시켜 주면서도 ‘그 시절 덕분에 지금이 있지.’라며 내일을 다시 시작할 힘을 주는 글, 나는 그런 예쁜 글들이 손끝에서 퐁퐁 솟아나게 하고 싶었다. 억지로 꾸며내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딱 떨어지는 옷을 입는 것처럼, 조금씩은 마음이 지친 다른 사람들의 마음 한 귀퉁이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예쁜 레이스를 걸쳐주고 싶었다.
그렇게 보무당당하게 등장인물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세상의 시대를 정했다. 인물들의 대사가 떠오르는 대로 태블릿에 적당히 한 회의 연재분 정도가 될 분량을 끄적끄적 적으면서 생각을 확장해 나갔다. 그동안 해 왔던 모든 독서의 내용을 이리저리 끼워 넣고, 말을 더 예쁘게 다듬어 보면서 나름의 퇴고를 거치기 시작했다. 주변의 사람들에 대입하자니 빈약하기만 한 나의 인간관계 속의 사람들은 다들 비슷해서, 그리고 모두가 소중해서 함부로 악역을 맡길 수도 없었다. 악역 없는 소설. 착하기만 한 글이 얼마나 밋밋하던지. 소설은 계속 제자리에서 빙빙 돌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에 도서관에 들러서 캐릭터와 관련된 책을 빌리고, 역사 속에 악하다고 정평이 난 사람들을 찾아보았다. 그들이 살아 있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 잘 보지 않았던 드라마까지 챙겨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공부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서 노력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심리학을 배워 보려 사이버 대학교도 다녔다. 동네 도서관에서 개설한 에세이 수업도 들으면서 다른 글도 써 보았다. 그러면서 조금씩 깨달았다. 글은 손끝에서 퐁퐁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뼈를 깎으면서 만들어 가는 작품이라는 것을. 글자 하나, 조사 하나,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그냥 나온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공부만 하고 있으면 나의 글은 항상 구상 단계에만 머문다는 것을. 처음의 그 한 글자, 한 문장을 반드시 써야만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글 한 편을 중심에 두고 배움과 깨달음과 좌절과 일어남이 뱅뱅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끝없는 헤맴을 반복하면서 한 통계를 만났다. 로맨스 소설 구독자 수 1위가 40대 여성들이라는 통계. 갑자기 웃음이 새어 나왔다. 40대 여성이라. 세상을 향해서 전투력도 생존력도 최고에 도달하는 시기의 여성들이란 누구일까? 지켜야 할 존재가 있기에 가장 힘이 세지고, 세상을 향해 크게 서야만 하는 사람들. 혹자는 맘충이라 부르고, 아줌마라 칭하면서 비하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가슴속에도 한 때 봄이 있었다. 연둣빛의 새순순이 솟아나고, 예쁘게 꽃이 되었던 그들의 봄. 각자 하얗게, 노랗게, 빨갛게 꽃이 피었던 그들만의 봄. 햇살과 비가 번갈아 쏟아지는 여름을 맞기 전, 포근해지는 햇살과 설레는 바람이 함께 마음에 있던 우리들만의 봄. 40대의 여성들이 본다는 그 로맨스 소설 속에서 그녀들은 자신의 봄을 찾는 것은 아닐까.
문득 나의 글이 그들에게 한 자락 봄바람이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 글에,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생생한 봄의 향기를 넣어 보고 싶었다. 봄이 주는 향기가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했던 것처럼, 나의 글에 봄의 기운을 얹어 그녀들에게 전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봄이 되고 싶다.
덧붙임: "봄"은 제가 쓰는 또 다른 필명입니다. 브런치가 아닌 모임에서, 다른 플랫폼에서 사용합니다. 문득 필명을 지었던 계기가 떠올라 봄에 대한 글을 써 보았습니다.
커버 이미지: 2025 서울 국제정원 박람회 포스터(https://festival.seoul.go.kr/garden/introduce/introduce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