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명퇴한 문과생 이야기

1. 두드려라! 언젠가 문은 열릴 지어다.

by 드리머

~징~~

스마트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한다.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하던 임원장은 잠시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보며 터치한다.

스마트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항상 반갑다.


“감사님~ 어떻게…. 취업하셨어요?”

“아니요, 이력서 넣고 있어요~”

“거기, 협회 경기도회에 들어가면 거기 소장들이 사람 구하는거 많이 올려요. 거기 한 번 계속 보시고 경력이 없으니까 교대자 구하는 곳에 넣으세요. 기전직으로! 내 동생도 그렇게 시작했어요~”

“아..네네~”

“일단 최대한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는걸로 해서 어디든 1년만 버티세요! 그 1년으로 갈 곳은 더 많아지고 그렇게 또 3년 5년 배우고 자격증 따시면 그래도 롱런할 수 있습니다.”

“네~ 소장님, 팁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소장님 계신 아파트에는 자리 없어요?”

“저희가 뽑아야 말이죠….아직 티오가 없어요…대신 12월초에 경비원 자리가 하나 나오긴 할 것 같은데 감사님이 벌써부터 경비원으로 근무하시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구요 어차피 공부하시고 자격증 따셔서 소장을 생각하신다면 시설이나 그런 쪽 경험을 쌓는게 더 도움이 될거에요. 그래도 뭐 정 받아주는 곳이 없으면 경비원도 하나의 경험이 될 수는 있겠죠. 일단 시설 쪽 기전직이나 영선직에 이력서 계속 넣어보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네네, 잘알겠습니다. 소장님 알려주신대로 이력서 넣어보고 궁금한 거 있음 연락드릴게요”

“네~ 감사님, 수고하세요~”


사실 김소장과 임원장은 약 10년여 전, 임원장이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입주자대표회의 동대표와 감사직을 수행을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 김소장이 새로로 부임해 입주초기부터 함께 일하면서 정이 많이 쌓였던 전우애 탓에 그리고 헌신적으로 일을 하는 김소장을 임원장은 존경할 정도였다. 그렇게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을 때마다 김소장을 임원장을 ‘감사님, 감사님’하며 추켜 세웠던 것이다.


임원장은 아차! 싶었다. 거의 한달여간 매일 일코리아에 올라오는 채용공고를 탐색하며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연장선인 월급 학원장 또는 재수종합 기숙학원 야간 실장직에 계속 이력서를 넣었던 터였다. 하지만 주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독서논술학원을 운영한지 만 3년 남짓된 임원장을 한 단계 높은 수준인 고등학생 또는 재수생을 상대하는 학원에서 쉽사리 기회를 줄지 의문이긴 했다. 하지만 임원장도 나름 가지고 있는 직업상담사 2급 자격을 가지고 모대학에서 자유전공학부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한 경력이 있어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기운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두어군데 학원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가보았지만 고배를 마실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학원쪽 일을 이어서 하고자하는 임원장의 노력이 조금씩 수그러들면서 다른 분야로 의 진입을 모색한 임원장은 빌딩 또는 아파트 시설관리 회사에서 모집하는 영업직에 지원하고 있었지만 그간의 경력과는 이어지지 않는 탓에 서류통과 조차도 못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도 그럴것이 시설관리라는 전혀 색다른 분야에 일은 하고 싶은데 그쪽 분야에 아무 경력이 없던 그가 시설관리 회사 본사에서 본부장급이나 팀장급으로 경력을 급선회를 한다는 것은 그 회사입장에서 봐도 터무니 없는 일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던 중 평소에 알고 지내면서 가끔 연락을 주고받던 김소장이 걱정이 되었는지 자주 전화를 하면서 만약에 아파트쪽에서 일을 하고 싶고 관심이 있으면 현장 교대제부터 하나씩 하나씩 밟고 올라가라고 팁을 준 것이었다.


통화를 끝낸 임원장은 일코리아 사이트에서 빠져나와 주택관리사 경기도회 홈페이지에 접속해 회원가입을 하고 본격적으로 구인광고를 검색하며 스캔을 시작했다.


어딘가 모르게 세련되지 않은 분위기의 홈페이지였지만 구인광고만큼은 풍성하기 그지 없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거의 실시간으로 구인광고가 올라오고 있던 것이다. 전국방방곡곡 이렇게 많은 아파트에서 사람을 필요로 하는 걸 목격한 임원장은 이 중에서 자기가 갈 곳 한 곳 없겠냐는 자신감이 살살 피어올랐다.

임원장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마치 지역 상관없이 어디든 이력서를 넣어서 어떻게든 취업을 해보고 싶은 의욕과 기대로 가득한 느낌이었다.


검색 기준을 일단 수원시, 영통구, 팔달구, 권선구, 장안구, 인접지역인 용인시, 화성시 그 지역의 인접지역으로까지 검색범위를 넓혔다. 관리과장, 관리주임, 전기과장, 전기기사, 기전직, 서무, 경리 등등 실로 다양한 직군이 있었지만 선택은 하지 않고 바로 검색 아이콘을 클릭했다.


구인광고를 하나하나 이 잡듯이 자세히 살펴보며 임원장 뇌리를 스치는 한가지가 있었다.

김소장은 가끔 교육을 받으러 아파트 관리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갈 때 항상 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은 어떤 교육을 받으러 왔다고 말해주기 일쑤였다. 대부분 주택관리사와 관련된 실무교육 위주였던걸로 기억을 한다.


그 중에서도 어느날 하루는….

“감사님~ 저 오늘 소방안전관리자 교육 받으러 왔어요! 제가 2급인데 그 때 당시 바로 그냥 1급을 이나 특급을 딸 걸 그랬어요, 어디 써먹을 때가 없어요..요새는 건물들이 하두 초고층이라….”

“아…그래요? 근데 그거 전공지식 있어야 하는거 아니에요?”

임원장이 다소 관심을 보이면 되물었다.

“아니에요! 교육 1주일 듣고 시험봐서 합격하면 돼요. 별도로 자격요건은 없어요! 감사님도 시간 많으실때 하나 따놓으셔요. 특급은 경력이 있어야하니 2급이라도 따 놓으시면 나중에 도움이 되실거에요. 요새 하두 불도 많이나고 안전불감증 때문에 정부에서도 신경을 많이 쓰거든요!”

“아..그렇구나…한 번 알아봐야겠네요~”


이렇게 말은 알아본다고 해놓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게 2년여 전이었다. 실제 알아보기는 했지만 당시 소방안전관리가 강습교육 때가 맞지 않아 나중에 해야지 하고 미루기도 했겠지만, 아마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지도 모른다.


임원장은 구인광고를 스크롤 하며 하나하나 상세정보를 보면서 자격증에 기재된 내용을 유심히 보았다. 소장안전관리자, 전기산업기사, 기계설비유지관리사 등등 자격을 요구하는 아파트 단지가 많았던 것이다. X세대, 오렌지족이라는 키워드로 대변되던던 시대에 문과를 선택해 대학을 졸업한 임원장에게는 실로 낯선 단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요즘이야 의치한약수, 공대선호현상으로 보편화된 상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겠지만 임원장이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해도 사실 공대보다는 법대, 경상대를 선호하던 시절이었고 조금 못미치면 인문, 문학관련 전공을 선택하는게 일반적이었다. 특히나 대학 간판이 우선시되었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각 아파트 단지마다 자격증 요구사항에 우대라고 적혀있고, 어떤 단지에서는 무제한 선임, 선임우대 등의 단어도 적혀있었다. 더구나 경력은 최소 1년 이상, 3년이상을 요구하는 구인광고가 태반이었다. 조금전 번개처럼 빛나던 임원장 눈빛이 조금씩 흐릿해지면서 불과 30여분 전의 자신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자격증은 커녕, 경력 1도 없는 임원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임원장은 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실 임원장은 학원을 운영하면서 수업은 선생님한테 맡기고 신규 상담만 해왔었고, 원생이 조금이 줄어들면서 다른 일을 꾸준히 찾고 있었던 터였다. 불과 1년여전에는 약 25년여 전에 취득해 놓았던 직업상담사 자격증이 영원히 장롱롱자격증으로 전락하기 전에 한 번은 활용해 보고자 하는 요량으로 역시나 마찬가지로 이력서를 마구 접수시킨 결과 모대학에 운좋게 취업해 경험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었다.


사실 9개월 정도 근무하면서 나름 많은 걸 깨달았지만 본업인 학원 운영에 어려움이 닥쳐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근근히 일을 해가면서도 임원장은 항상 포기보다는 도전을 선택했다.

물론 한 가지 일에 몰입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긴 했다. 한 가지 일을 제대로 깊이 하지 못하고 이일 저일 자꾸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임원장 스스로도 불만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무슨 일이든 경험이라 생각하고 일단 하고보는 임원장이었다. 그렇게 꾸준히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수정하면서 업데이트 해왔던 터였다.


경험이 경험으로만 끝나지 않고 뭔가 반전을 이룰만한 계기가 필요헸던 임원장은 문득 IMF시기를 지나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던 옛 시절을 떠올렸다.


4학년 막학기라 공강시간이 많은 틈을 타 중앙도서관에 비치된 컴퓨터에 앉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업로드하기 바빴다. 당시 인터넷망이 급속도로 깔린 이후 기업들에서도 온라인 지원서를 받던터였기 때문에 정말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도 수십군데 원서를 넣을 수 있었던 환경이었다.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로 가뜩이나 2지망으로 입학한 임원장은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말이 전공이지 독일어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자칭 문학도라고 표현하기 일쑤였다. 스펙이 그렇다보니 복학이후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취득했지만 취업의 문이 쉽사리 열리리라고는 생각하지 임원장은 지원서를 인해전술로 넣기 시작했다. 일단 전공, 자격요건만 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온라인으로 지원을 했던 것이었다.

그게 벌써 20년이 훌쩍 지난 일이었는데 지금 오십이 넘은 나이에 임원장은 인해전술 이력서 접수를 또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에도 기업에서 요구하는 조건에 100% 부합되어서 지원을 했다기 보다는 2% 아니 20%가 부족하다고 해도 일단 지원서를 제출했다. 물론 어문계열이다보니 토익점수를 몇 점이상으로 요구하는 곳이 있었던 터라 다행히 접수할만한 기업의 수는 적지 않았다.

다만 영어 프리토킹이나 전공인 독일어 회화 수준이 여느 전공자처럼 유창하지 못했다는게 흠이라면 흠이랄까?


근데 오십이 넘은 나이에 이력서를 다시 제출하고 있는 임원장의 현실은 그때보다 나아진 것 없는 것 같다. 구인광고를 보면 볼수록 이 나이까지 뭐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후회가 밀려들기도 하지만 그도 그럴것이 전혀 다른 분야에 올라온 구인광고를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임원장 스스로도 아쉬운 것은 그동안 더 많은 경험을 할 걸이라는 생각과 문과졸업생이 퇴직해서 다시 재취업할 수 있는 분야가 그리 많지는 않다는 현실의 높은 벽을 체감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원장은 구인광고 검색을 늦추지 않았다. 어딘가에는 분명 임원장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기대는 아마도 대학 졸업이후 취업을 준비하면서 열릴 때까지 문을 두드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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