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퇴직한 문과생 이야기

2. 술고래 임인문

by 드리머

따르르르릉~따르르릉~

알람시계가 요동을 치는 소리에 눈을 뜬 인문이(임원장 본명)는 전날 신입사원 환영회 때의 숙취로 인해 몸을 일으키기가 어려웠다. 시계를 보니 아직 현관을 나서야할 시간은 한참 남아 그는는 출근을 할지말지를 고민하는 눈치였다.


“인문아~ 회사 출근해야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들을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는 언제 누가 들어도 덜깬 잠을 내쫓는 에네르기파가 느껴진다.

“네···..”

“무슨 술을 그렇게 먹고 집도 못찾고 몸도 못 가누고 그러고 다녀~ 동네 창피하게···그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려고···..”


그랬다. 인문이를 보는 누구라도 말술이겠거니 할 정도로 키도 덩치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 외면의 모습에 화답이라도 하듯 술! 하면 빠지지 않는 인문이었고, 귀가 시간이 너무 늦어 교통 수단이 택시 밖에 없는 시간에는 멀쩡히 잘 타고 와서는 하차시에 가끔 택시기사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는 그였다.


“신입사원 환영회라고 먹이는데 나라고 뭐 안먹을 수가 있어야죠···”

“암튼 술 좀 줄여라, 지 아버지 닮아 가지고는 원 ···..”

“네···..”


아침부터 자식 걱정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휴가를 내고 좀 쉬려고 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다만 아직 숙취가 남아있어 그런지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한 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갈 생각을 하니 깝깝했다.


인문이는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우여곡절 끝에 초등학교2학년 때에 인천으로 이사를 온 이후로 쭈욱 살고 있다. 원양어선을 타셨던 아버지 영향으로 우리나라 대표적인 항구도시에서만 살았던 것이다.


전세를 긍긍하며 살며 초등학교도 도보로 30분 정도되는 거리를 항상 걸어다녔고, 중학교는 버스로 30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곳으로 다니더니 고등학교는 스쿨버스가 있는 학교이긴 했지만 버스배차 간격도 불규칙한 소요시간도 1시간 이상 걸리는 학교로 다녔다. 대학교 역시 전철로 1시간 거기에 버스로 환승해서 20여분 남짓되는 거리를 통학했으니 뭐 등하교를 1시간 이내에 해본 적이 별로 없는 그였다.

역시나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중구에 소재한 회사에 입사하게 된 그의 통근길 역시 1시간 이상 소요됐다.


지옥철인지 지하철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로 특히 출근 시간대 미친 혼잡도를 자랑하는 국철에 겨우 몸을 싣고 다닌지 어언···.5일···.이 되었지만 여길 그가 제대로 다닐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포워딩 회사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하는 업무 특성상 8시 20분까지 출근을 해야하고 일단 프리토킹이 가능해야 원활한 업무가 가능해 보였다. 입사지원서에 영어회화 수준에 양심상 ‘상’에 동그라미를 치지 못하고 그렇다고 ‘하’에 동그라미를 하자니 면접기회도 없을 것 같고, 결국 어중간하게 ‘중’에 체크한 그는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운좋게 입사까지는 했지만 그 이후에 펼쳐질 일들을 상상하니 자신의 성향과 적성에는 이 업무가 도무지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을 지울 수 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교 졸업장을 받아든지 두 달이 넘도록 백수로 남아있긴 싫어서 출근이라는 말을 해 준 회사가 고마워서 어쩔 수 없이 출근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엔 그저 그 상황을 유지하는 게 그나마 나은 선택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사무실에 도착한 인문이 앞에 펼쳐진 광경은 이미 전쟁터였다. 조금 일찍 출근한 선배직원은 전화기를 붙들고 샬라샬라 하고 있었고 또 누구는 팩스기 앞에서 서류를 전송하고 있었고, 또 누구는 상사 앞에 얼음 땡! 처럼 서있으면서 온갖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살며시 자리에 앉으려는 찰나에 인문이 책상에 놓은 전화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인문이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입사한지 5일 밖에 되지 않아 아침부터 전화온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왠일인가 싶었던 인문. 순간 망설였다.


헬로우로 받아야할지 감사합니다로 입을 열어야할지···.고민을 하면 수화기를 잡아든 인문의 귀 넘어로 들여오는 나즈막한 샬라샬라···..소리도 작거니와 감이 너무 멀어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등줄기로 식은 땀이 흐르고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순간, 맞은 편에 입사 동기인 문가희가 마침 출근을 했다.


문가희는 해외 거누경험이 있어 영어를 국어처럼 말하는 친구였다. 눈짓을 보내니 척하고 알아들은 문가희가 수화기를 받아들더니 숄라숄라 몇 마디 하고 끊었다.

“뭐래요?” 궁금한 듯 인문이가 물었다.

“거기가 고래해운 맞냐고 묻길래···여긴 상어상선이라고 하고 끊었어요”

“예?” 인문이 남름 실망한 투로 말했다. 아니 그가 웨일도 못알들었다라는 실망에서였다.

고래라면 인문이도 자주 듣는 애칭이었기 때문이었다. 술고래 임인문.

그걸 영어로 웨일이라고 했을 뿐일텐데 그 단어가 귀에 들어오질 않다니······


암튼 가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인문이는 커피나 한 잔 하자고 했다. 모르긴 몰라도 아까 전화한 외국인이 한 번쯤은 재확인차 또 전화를 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과 귀차니즘을 커피타임으로 때우기 위해서였다.


인문이와 함께 입사한 동기는 이 둘 뿐이었다. 가희는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세계여러나라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었고 국내에 들어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이 회사에 입사를 했다.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 중국어까지 능통한 인재여서 해외영업을 하기엔 깔맞춤 인재였던 것이다. 반면, 인문이는 독어독문학과를 졸업은 했지만 독일어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토익 점수는 비교적 높았지만 역시나 영어 한 마디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터였기에 그 둘은 너무나도 비교되었다.


커피를 한 모금마시던 인문이 뇌리에 스치는 말이 하나 있었다.

“임인문씨! 내일부터 독일을 포함해 유럽쪽 영업은 인문씨가 도맡아서해~, 전화오면 친절하게 받고 말이야. 독일어 전공자가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네! 전무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술김에 내뱉은 그 한마디가 갑자기 생각난 건 왜일까?

“가희씨, 어제 내가 전무님한테 독일쪽 영업은 내가 한다고 했던게 맞아요?”

“어이구···만취인 줄 알았는데 기억은 나나 보네요? 아주 그냥 호기롭게 맡겨만 달라고 호언장담을 하더라구요”

“아이고······”

갑자기 달디 단 다방커피가 쓰디 쓴 에스프레소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가희씨가 좀 말리지 그랬어요···.?

“어이쿠, 그저 전무님 옆에 빈대처럼 찰싹 붙어서 딸랑딸랑 거리고 있는데 제가 무슨 재주로 말려요~~~”


그랬다. 술만 들어가면 인문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찰싹 붙어서 굽신굽신 거리며 평소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리고 설마 신입한테 무슨 일을 맡기겠어?하는 근거없는 안도감도 몰려왔다. 내심 영어든 독일어든 회화공부는 조금씩 해둬야 회사생활이 순탄하겠구나 하는 생각은 했다.


1주일간 업무시간 중에 간간히 진행되는 회사 오리엔테이션으로 오전시간을 무사히 때운 인문은 부서 사람들과 어울려 근처 국밥집으로 갔다. 어제 회식으로 너도나도 속쓰림을 호소하며 앉은 테이블에서 인문의 직속상관인 김부장이 얘기했다.

“인문씨~ 어젠 잘 들어갔어요? 인문씨 어제 보니까 여간 재간둥이가 아니더구만..앞으로 일도 그렇게 할거지?”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그 왜···유럽에서 오는 전화는 인문씨가 다 땡겨 받겠다고 하면서 다른 직원들은 편히 쉬라고 했잖아~~ 기억이 안나나?”

“아..네···..그게 저시기 머시기···.”

“뭐 암튼 난 입사 20년만에 우리 회사에 인물이 들어온 거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열심히 해보자구~”

“네~ 부장님···”

“혹시라도 제가 어제 실수한 게 있으면 이 자리를 빌어 용서를 구합니다. 어제 너무 많이 마셔서요···”

“아니야, 아니야~ 뭐 전무님한테 아주 찰씩 붙어서 술잔 주고받는 모습을 보니 나 신입사원 때를 보는 것 같아서 흐믓했어···근데 그 전무님 퇴임이 얼마 안남았지 아마···.”


뭔가 음산한 기운을 느낀 인문이는 이 난관을 어떻게 빠져나가야할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다행이 식사가 나와서 일단락은 되었다. 식사 내내 김부장 눈치를 보며 밥도 먹는둥 마는둥 한 인문은 좌불안이었다.

여기를 얼마나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근무하는 동안에는 김부장의 그물에서 빠져나가기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입사한 후 줄곧 회사에 충성한 김부장은 전무와의 정치싸움에서 밀려 임원을 달지 못하고 미끄러진게 벌써 두 번이라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다. 회사 내에서도 능구랭이 같은 전무보다는 그래도 위아래 두루 돌보는 김부장이 직원들의 신임을 그나마 얻고 있었다. 그런 김부장에게 인문이는 왠지 찍힌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식사자리에서 더 이상 얘기를 해봐야 버릇없는 신입사원이라는 얘기만 들을 것 같아 그저 고개만 숙일 수 밖에 없었던 인문이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술만 들어가면 인사불성이 되기 직전까지 마시는 인문은 매번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술버릇은 고치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은 뒤로 하고 앞으로 잘 해봐야지 하는 다짐으로 사무실로 향하는 인문의 발걸음은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담배도 끊은지 2년이 넘은 상황에서 술이라고 못 끊을리 없다는 자신감은 저 깊은 마음 속 어딘가에서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지옥같은 식사 시간이 지나고 조금 한가한 오후시간을 보내던 인문이에게 어딘지 알 수 없는 번호가 핸드폰에 떠서 받을까말까 고민을 하는데......

“임인문씨~ 전무님 방에 가봐~ 찾으셔~ 어제 술자리가 임팩트가 좀 있었나봐~~”

인문이 사수인 최대리가 살짝 비꼬듯 말하며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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