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퇴직한 문과생 이야기

3. 추락하는 성적에는 날개가 없더라

by 드리머

‘드르륵~’

교실 뒷문 여는 소리가 교실안에 퍼지며 정적을 깼다.


“인문아~ 담임선생님한테 가봐~ 오라시네~”

“응….”


드디어 인문이 차례가 왔다. 학력고사를 몇 달 앞두고부터 시작된 진학상담. 요즘말로 진학상담이지 당시에는 상담이라기 보다는 그저 담임선생님이 배치표에서 찍어주는 대로 원서를 쓰기 위해 잠깐 대화를 나누는 정도였다.


인문이가 다니던 고등학교 고3은 한 학년 동안 여름방학 때를 제외하고는 매월 국영수 모의고사를 보면서 여타 다른 지역의 명문고들의 성적과 비교를 해가며 학교의 우열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곤 했었다.


당시 인문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비평준화 지역내에 있었고 중학교 3년 때 보는 연합고사 점수 200점 만점에 학교 자체적으로 국영수 3과목 300점을 더해 총 500점 만점을 기준으로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했다. 물론 선지원 후시험이었던 이 학교 경쟁률은 낮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매일 아침 특강을 7시 30분부터 오픈을 했고, 인천에서도 당시 좀 외진 곳에 있던터라 대중교통이 좋지 않아 학교에서는 이 특강 시간에 맞춰 학생들이 등교할 수 있도록 별도 이용료를 받고 스쿨버스를 운행했다. 더구나 야간 자율학습을 에누리 없이 매일 밤 10시까지 했으니 인천에서 공부좀 한다는 애들은 다 지원한던 터였다. 다만 학교가 개교한지 3년 밖에 되지 않아 전통이 없다는 점이 단점이었지만 학교에서도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입학 성적 순으로 특수반이라는 제도를 꾸려 상위권 학생들은 보다 특화된 교육을 시행하던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중학교 때 이름 좀 날렸던 인문이도 그 학교를 그냥 지나칠리 없었다. 그렇게 또 운 좋게 입학은 했지만 인문이 보다 실력이 좋고 이미 선행학습으로 다져진 상위권 아이들의 선수층이 두터워 인문이는 좀 우스갯소리로 바닥을 깔아주는 수준 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을 버텨내면서 성적은 조금씩 올랐지만 선지원 후시험인 학력고사를 앞두고 기대할만한 반전은 이루어지지 않아 인문이도 실망이 컸다.


“똑똑”

“들아와~”
교무실로 담임 선생님을 찾아간 인문이는 배치표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담임선생님과 독대를 시작했다.

“인문! 성적은 조금씩 올랐고 내신도 좀 상승은 했는데 이거 가지고는 좋은 대학 가긴 힘든건 알지?”
“네..”
“내가 보니까 인문이 성적이면 성실대 정도에서…..정치외교학과 원서를 쓰면 합격할 것 같아. 아니면…시민대 교육학과도 괜찮고…근데 시민대는 인천에서 너무 멀어~. 성실대가 노량진역에서 버스타고 들어가면 금방이거든…인문이 집이 어디지?”

“동인천역 근처요”
“잘 됐네, 거기서 전철타고 노량진까지 가서 버스타면 돼. 동인천역에서 타면 또 않아서 편하게 1시간 정도 가면 되니까 여기 써보자!”

“네…”
“아..그리고 2지망 학과도 하나 써여하는데 뭐 이건 별로 의미도 없고 떨어지면 떨어졌지 2지망에서 합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어디보자…..”

담임 선생님은 배치표에 적인 성실대 라인에서 정치외교학과 보다 한 두어단계 낮은 곳을 손으로 짚어내시더니….

“그래! 여기네. 독어독문학과, 그 밑에 사학과나 철학과도 있는데 그래도 언어라도 배우는게 낫지 않겠어? 철학 사학은 정말 학자나 교수할 사람이 가는곳이라…”
“네…”
“ 그래! 그럼 인문이는 성실대 1지망 정치외교학과, 2지망 독어독문학과로 원서를 쓰자! 지금 하던대로만 학력고사 보면 충분히 합격할거다.~”
“네,,,감사합니다.”


이렇게 상담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종료되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한국대 법대를 충분히 갈 만한 인재로 오해받았던 인문이는 그로부터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한국대 법대 문턱은 고사하고 겨우 인서울 대학에 입학을 할 수 있을까말까한 인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축 늘어진 어깨를 겨우 추스려 교실로 돌아온 인문에게 이창이가 물었다.

“부바! 어디쓰래?”

부바는 인문이의 별명이었다,. 무슨 애니메이션 캐릭터라고 하는데 인문이도 본 적 없는 그 캐릭터 이름으로 친구들의 대다수가 인문이를 그렇게 불러댔다.

“아..몰라! 성실대 가래…”
“그래? 그래도 서울이네…”

“넌 어디 쓰라는데?”

“난 삼국대 가래~ 무역학과”
“그래? 좋겠다. 암기과목 열라 파대더니 효과가 있네?”
“야! 수학포기하니까 암기과목이라도 건질려고 한거지…불어도 포기하고 공업 선택한거 보면 몰라?근데 부바 넌 언제 공업으로 넘어올래…? 멸치볶는 불어보다는 디립다 외우는 공업이 나을텐데…”
“공업으로 바꾸면 나도 삼국대로 점프할 수 있으려나?”
“야! 삼국대나 성실대나 거기서 거기지, 그런말 몰라? 우리나라에는 대학교가 두군데라고…한국대와 한국대가 아닌대!!!”

“이런….그 무슨 망측한 발언아냐!”

“야..사회 나가봐라 의미 있나… 대학졸업하는걸로 만족하자..우리가 또 돈 많고 머리 좋아서 재수를 하겠냐…가뜩이나 내년에는 수능인지 뭔지로 바뀐다자나….마지막 학력고사인데 쫑 내야지!”


그랬다.

인문이 세대는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였다.고3이었던 해 5월인가 10월 두 번에 걸쳐 테스트 삼아 수능이라는 시험을 봤지만 영…적응이 되지 않아 인문이도 재수고 뭐고 그냥 한번에 어디든 갈 요량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원서를 어디를 쓸지 결정하고 나니 이제 남은 건 직접 원서를 접수하는 일과 학력고사라는 시험을 보는 일만 남았다.


몇개월이 지나고 추운 겨울 어느날, 인문이는 이른 아침부터 가방을 챙기고 엄마와 함께 지난 밤을 보낸 숙소를 빠져 나왔다. 시험을 서울에서 봐야했는데 지리가 낯설어 혹시라도 시험 당일 늦거나 할까봐 전날 엄마와 함께 시험을 보게된 학교 근처 모텔에서 잔 것이다.


볼을 뚫을 정도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 1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시험장소. 이미 교문 근처에는 엄마아빠들이 서성이거나 아이들과 얘기를 하거나 하고 있었다. 무슨 올림픽 국가대표 환송회하는 듯한 분위기 속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엄마와 이별인사를 하는 인문이에게 엄마는 침착하게 잘 보고 오라 하신다.


“집에 가 계세요~ 추운데 여기 교문 붙잡고 있지 마시고..”
“아니다. 근처 어디 들어가 있다가 끝날 시간 즈음에 다시 올테니 밥이라도 함께 먹고 가자”
“에이 그러지 마시라니깐,,,,”
“괜찮아…다녀와…”


형제남매 없는 인문이는 외동아들이었다. 하나 뿐인 아들을 얼마나 애지중지 했을지 굳이 상상이 필요할까? 요즘이야 대부분 하나만 키우지만 인문이가 태어나던 시대만 해도 외동자식만 키우는 집은 드물었다. 오죽하면 당시 ‘아들딸 구별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범국민적인 호소에도 불구하고 최소 셋을 낳아 기르던 가정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인문이네 엄마는 우스갯소리로 우리집은 애국자 집안이라고도 했다.

어깨를 움츠리며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인문이를 보며 엄마는 기도를 했다. 제발 실수없이 잘보고 해달라고…

몇 시간 동안 진행되는 학력고사에서 인문이는 수학을 진즉에 포기한 걸 후회했다. 어떻게든 좀 더 붙잡고 공부를 했었으면 어떨까 싶었던 것이다. 아마도 수학을 너무 망쳐서 그랬나보다. 다른 과목들이야 평소실력을 발휘한 것 같은데 수학은 완전 망친 것 같아 합격을 장담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잘 봤어?”

“응 뭐 그럭저럭..”

“고생했어. 밥 먹으러 가자”
“아니야 그냥 갈래…”
“왜? 배고프자나, 인문이 좋아하는 짜장면에 탕수육 시켜 먹고 가자”

“.............”

“어,,저기 2층에 있네,,,어차피 합격하면 이 근처 식당도 이용할거니까 미리 시식한다 생각하고 맛이 어떤가 가보자”
“응,,,”

여느 중국집처럼 허술해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짜장면, 짬뽕, 그리고 탕수육을 시켜주는 엄마에세 식당 주인이 시험보셨나봐요~ 말을 건넨다.

“아.,,예~”
“아이고 고생했는데 군만두 서비스 하나 드릴게요~ 학생 많이 먹어! 붙을거야!”

“네..감사합니다.”


약간 무거웠던 마음이 식당 주인의 말 한마디에 조금씩 누그러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노량진역 육교를 건너 2층에 자리잡은 이 중국집은 나중에 인문이가 자주 들르는 단골집이 되었다.


엄마와 별다른 말없이 식사를 하는 와중에 식당안에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입김을 불며 교문을 지키는 부모들의 모습과 시험을 치루는 학생 보습이 차례로 오버랩되면서 다시 난 불안감에 휩싸였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홀가분함을 느끼고 싶었다.


이런 나의 기분을 눈치 챘는지 식당 주인 아저씨는 새로 들어오는 손님들을 반기며 살며시 TV를 껐다.

작가의 이전글50대에 퇴직한 문과생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