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퇴직한 문과생 이야기

23. 결국 또 이렇게 되네?

by 드리머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다시 면접을 본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과 이런저런 후회에 잠긴 인문이는 환승역을 지나쳐버려 집으로 가는 길은 더 멀어졌다.


장장 2시간에 걸친 지하철 여행이 끝나갈 무렵 서울 지역번호가 찍힌 숫자가 핸드폰 액정에 떴다. 눈에 많이 익은 번호다 생각하는 찰나에 면접을 봤던 바로 그 회사임을 직감하고 반사적으로 폴더를 연 인문이,


“임인문 씨 맞죠? 좀 전에 면접 봤던 회사예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 가능하세요?”

“네! 가능합니다”


만족하지 못한 면접을 치렀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 기쁜 마음에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 한달음에 내달려 엄마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졸업하고 총 3번째로 합격통보를 받고 출근하라고 했던 회사 중에 가장 맘에 든 곳이라고 생각한 인문이는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았다.

졸업 막학기부터 남들은 어디로 취업을 했다더라, 또 누구는 시험 준비를 한다더라, 대학원을 간다더라, 유학을 간다더라 등등 다들 제 갈길을 찾아서 하나둘씩 나아가는 데 자기만 뒤쳐진 것 같았던 인문이에게도 드디어 만족할 만한 회사로부터 부름을 받은 것이다.


공강시간마다 중앙도서관에 있는 PC를 찾아가 채용사이트에 올라온 공고를 하나하나 탐색하며 토익점수 조건만 되면 일단 접수시킨 곳만 해도 100여 곳은 넘었다. 학과 조교 누나로부터 금융권 취업을 위한 추천서를 받아 지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면접의 기회조차 갖지 못했고, 당시 유명한 유통회사 중 하나인 신세계 면접에 가서는 정용진 부회장이 던지는 질문에 우물쭈물거리기도 했다. 방직회사 면접에 가서는 함께 면접을 본 ROTC 출신 경쟁자의 든든한 기세에 눌려 모기소리보다도 못한 목소리로 일관한 적도 있었고, 무역회사 면접에 가서는 영어로 자기소개를 해보라는 면접관의 주문에 간단하나마 응수했으나 취득한 토익점수에 비해 영어회화 실력이 낮은 것 같다는 핀잔 아닌 핀잔까지 들어야 했다.


이 모든 게 스스로 스펙이 부족한 것이라고 받아들일 찰나에 취득한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가지고 경인지방노동청에 근무까지 했으나 선배 상담사의 일침으로 퇴사를 하기도 했고, 졸업식이 끝나고도 아직 취업을 하지 못했다는 주위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바로 포워딩 전문 해운업체에 입사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장장 10개월여 동안의 마음고생을 훌훌 날려버리고 이젠 어엿한 회사원으로 또다시 신입의 길을 걸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오른 인문이는 그동안 방학 때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한테 기쁨의 문자를 날렸다.


드디어 첫 출근하는 날이 밝았다. 들뜬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앞으로 어떤 일을 누구와 하게 될지에 대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지옥철로 유명한 국철에 겨우 몸을 싣고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수많은 인파를 헤쳐나가며 샐러리맨의 진정한 출근길을 경험했다. 집에서 나온 지 꼬박 1시간 30여 분 만에 회사에 도착한 인문이는 다시는 못 올 줄 알았던 회사건물 16층에 당당히 발을 내디뎠다.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우선 화장실로 향한 인문이가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는 사이 어디선가 낯이 익은 한 사람이 다가옴을 느꼈다. 바로 면접관 중 한 분이었던 것이다. 얼떨결에 반사적으로 인사를 한 인문이에게 첫 출근이냐며 반대쪽 사무실에 있는 총무팀으로 가라고 언질을 건넨 그분은 다름 아닌 인문이가 일하게 될 부서의 부장님이었던 것이다.


화장실을 벗어나 반대편 복도로 진입하니 원목으로 된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안쪽 테이블에 놓인 종이에 뭔가를 적고 다시 나가는 것을 보니 아마도 출근부에 사인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인사를 하고 들어가니 면접 때 진행을 도운 직원이 아는 척을 했다.


“늦지 않게 잘 왔네요~, 저기 앞에 잠깐 앉아 계시면 제가 좀 있다가 전 직원들한테 인사를 시킬게요.”


그렇게 16층과 5층으로 분리되어 근무를 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시켜주고 나더니 그 직원은 5층에서 홀수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17층에서 내리더니 잠깐 얘기를 하고 가자고 했다.


“인문 씨는 무혈입성이야!”

“네?”


어리둥절한 인문이가 되물었다.


“인문 씨 작년 12월에 입사지원서 냈죠? 그때 지원해서 합격한 직원들은 올 1월 30일부터 입사해서 근무를 하고 있는 중이에요. 총 3명이….”


그렇다. 인문이도 작년 12월에 입사지원서를 제출했지만 면접의 기회도 갖지 못했다.


“근데 그때 신입으로 들어온 직원들은 잘 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그 신입직원보다 1년 남짓 일찍 들어온 직원 중 한 명이 갑자기 그만둔 거예요. 더 심각한 건 그만두려는 직원이 속한 부서가 기획부인데 한창 바쁠 때이거든…. 하루라도 빨리 채용해 달라고 해서 임원한테 보고를 했더니 그럼 작년 12월 서류합격자 들 중에 차순위 3명을 불러 면접을 봐서 뽑자고 하시더라고요. 첨부터 다시 공고내고 하면 1달 이상은 걸리니까요….”


대충 스토리가 그려진 인문이는 갑자기 그만둔 직원을 수소문해 감사 인사라도 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근데 더 웃긴 건 뭔지 알아요?”


순간 또 반전의 내음이 물씬 풍겼다.


“아니 난 삼국대 행정학과 출신 지원자가 될 줄 알았어요. 근데 그 사람이 온다고 해놓고 안온 거예요. 그러니까 그 사람, 인문 씨, 그리고 한 사람을 더 면접에 오라고 연락을 했는데 인문 씨만 면접을 보러 온 거예요”


“아……”


인문이의 입에서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마치 흩어진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춘 듯한 기분이 든 인문이를 향해 그 직원은 또 한 번 사자성어를 읊었다.


“무혈입성”


각본 없는 드라마처럼 마치 인문이를 합격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들러리를 선 것처럼 되고 말았다. 합격을 하려니 또 이런 식으로 합격이 되나 싶었던 인문이는 듣고 있는 내내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갑자기 그만둔 직원, 면접에 오라고 연락했지만 면접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인문이를 제외한 나머지 또 두 명.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각본 없는 드라마에서 인문이를 주연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조연과 엑스트라 연기를 마다하지 않은 그들에게 인문이는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정말 운 좋게 입사한 그곳에서 인문이는 중간중간 몇 번의 고비는 있었지만 20여 년 남짓 안정적인 회사생활을 하면서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보통 사람들의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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