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어떻게 되려고 그러는 건지….
여길 계속 다녀야 하나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억지로 출근을 하던 3일 차가 되는 날, 밖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인문이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딱히 전화 올 곳도 없고 게다가 모르는 번호이기에 어딘가 싶어 받고 싶지 않았지만 관성적으로 폴더를 열고 받아버렸다.
“임인문 씨죠? 혹시 낼모레 면접 보러 올 수 있어요?”
갑자기 뜬금없는 면접타령을 하는 상대의 말에 어디시냐고 반문을 하는 인문이에게,
“아… 여기 지난 12월 말에 입사지원 했었던 **회사고 인사담당자예요”
앞 뒤 다 자르고 면접올 수 있냐는 말에 다른 곳에 취업해서 일을 하고 있다는 말 대신, 가능하다고 답을 하니 그럼 낼모레 10시까지 오라고 하는 상대의 말에 알았다고 대답한 인문이는 전화를 끊자마자 3일 출근했던 그 회사에 사표를 냈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한 곳에 다시 취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설령 그 회사에의 부름을 받지 못한다 할지라고 여긴 더 이상 안 다니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인문이는 잠시 책상에 앉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아까 그 인사담당자 말로 지난 12월이면 2000년 12월이고 그때 입사지원서를 제출한 회사가 한 두 군데가 아니었을 것인데 어렴풋이 들은 회사이름은 기억이 날똥말똥했다.
사표를 내고 점심도 먹지 않고 사무실을 벗어난 인문이는 곧바로 집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지원했던 회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도착한 도서관은 포근한 봄날씨 탓인지 열람실보다 밖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통화를 끊고 나서 보내준 인사담당자의 문자내용을 확인한 인문이는 회사이름으로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갔다. 인문이가 입사지원을 했던 수십여 군데 중 한 곳이었지만 당시의 기억이 조금씩 떠올랐다.
입사지원서를 작성하기 위해 어떤 회사인지 탐색을 하면서 이런 분위기의 회사라면 자신 성격과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으로 지원서를 작성했던 기억을 떠올린 인문이는 회사연혁부터 사업, 회사주소 등 그 회사에 대한 모든 것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공무원 조직은 아닌 것 같았지만 공공의 성격이 강한 그 회사는 서울, 그것도 강남구 대치동에 있었다.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도 1시간 30분 정도를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면접 당일 10시까지 오라는 담당자의 말에 출발해야 할 시간을 역산해 보니 최소 8시 20분에는 집에서 나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천에서 살던 인문이는 강남 쪽으로 나올 일이 별로 없었다. 대학교가 강남권역에 있기는 했지만 실제 강남역과는 거리가 있었고 당시에는 학교에서 집만 왔다 갔다 하기에 바빠 행동반경이 그다지 넓지 못했다. 더구나 동기 중에 강남권에 살았던 친구도 없었기에 전혀 딴 세상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생전 처음으로 강남에 그것도 대치동 땅에 발을 디딜 기회를 가지게 된 인문이는 어떻게든 면접을 통과해서 보란 듯이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출근하고 싶다는 열정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타올랐다.
회사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면서도 면접 때 어떤 질문이 나올지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 회사가 속한 산업분야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을뿐더러 그쪽 분야에 대한 배경지식 또한 부족했기에 막막하기만 했다.
다만, 그 회사가 하는 사업분야, 조직체계 등에 대한 정보를 공부하면서 그 막막함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문이는 마지막 면접이라는 생각으로 열과 성을 다해 회사에 대한 정보를 외우다시피 하면서 머릿속에 메모리 시켰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면접 당일 새벽부터 일어난 인문이는 마치 배우가 전날 암기한 연기 대사를 읊듯이 프린트물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기억을 되살렸다.
출근시간을 살짝 피한 시간대였는데 전철에는 아직도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전철로 이동하는 내내 손에서 프린트물을 놓지 못하고 뒤적거렸지만 그렇다고 머릿속에 입력도 되지 않았다. 음악을 들어도 긴장된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지하철 개찰구를 빠져나와 드디어 지상으로 몸을 드러낸 인문이는 난생처음 밟아보는 강남의 중심지에서 높다란 건물과 널찍한 도로를 바라보며 여기서 근무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뚜벅뚜벅 면접 장소로 걸어갔다.
예정된 시간보다 20여분 일찍 건물에 도착한 인문이는 1층 화장실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깊은숨호흡을 한 뒤 사무실이 있는 16층으로 올라갔다.
면접에 대한 확실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서인지 가슴이 쿵쾅쿵쾅 거리는 것을 연신 깊은 심호흡을 내쉬며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16층에 도착한 인문이는 건물 규모에 비해 엘리베이터 홀이 작다는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인문이에게 면접 보러 왔냐고 묻기에 성큼성큼 다가가 이름을 댔다.
“이쪽 안으로 들어가서 잠시 기다리세요”
비서로 보이는 여직원은 남자직원의 바통을 이어받아 인문이에게 소파에 앉아서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아까 복도에서 마주친 남자가 회의실로 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인문이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지긋한 연세로 보이는 6명의 사람들 앞에 인문이는 내던져졌다.
“자기소개 한 번 해보세요”
“자신의 장점은 무엇인지 설명해 보세요”
2명의 면접관이 차례로 질문을 던졌다.
정성 들여 작상한 자기소개서 위주의 질문이 이어져 준비한 대로 착착 진행이 된다는 자만심 때문이었을까?
질문의 수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음을 느끼며 조금씩 긴장한 탓에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힌 인문이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혼돈스러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떤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했는지, 아니 어떤 질문이 던져졌는지 파악도 제대로 못한 채 두서없이 아무 말 대잔치를 하고 나온 인문이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동문서답을 한 건 아닌지, 이 면접을 제대로 보기나 한 건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오만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게 약간 넋이 나간 채 등을 돌리는 인문이에게 합격하면 오늘 오후에 연락이 갈 수도 있다고 남자직원이 말했다. 과연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휩싸인 채, 인문이는 엘리베이터 호출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