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퇴직한 문과생 이야기

21. 어떻게든 되긴 되네?

by 드리머

인문이를 비롯한 거의 모든 수험생에게는 학력고사가 끝나고 합격자 발표까지 약 2주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정말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멍을 때리든지 밤새 놀면서 무얼 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못하는 2주간의 값진 시간. 하지만 인문이에게는 그런 여유로운 시간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국어는 그럭저럭 본 것 같지만 기대만큼은 아니었고, 수학은 절반도 못 풀어 찍기에 바빴고, 그나마 영어에서 만회를 했어야 하는데 만족스럽지 못했으며, 국영수에서 잃은 점수를 암기과목에서 보완해 반전의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여건도 되지 못했던 것이었다. 대충 점수를 내보니 여태껏 보았던 모의고사 성적에도 미치지 못한 걸 느낀 인문이는 합격여부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했다.

언론에서는 마지막 학력고사여서 더 어렵게 출제되었다고 연신 떠들어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이는 자기만 시험을 잘 못 본 것 같아 불안해했다.


친구들이 만나자고 연락을 해도 선뜻 집을 나서기가 싫은 게 분명 어딘가 불편한 구석이 있는 게 틀림없어 보이는 인문이는 며칠간 두문불출했다.


그렇게 2주간의 시간이 흘러 드디어 지원한 대학교 합격자가 발표되는 날 아침이 다가왔다. 불합격할 수 있겠다에 무게중심을 두어서인지 왠지 직접 게시판을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인문이는 이불로 몸을 돌돌 감은채 눈을 감고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직접 눈으로 확인해서 붙으면 좋은데 만약 떨어지면 그 자리에서 쉽게 발을 뗄 수가 없을 것만 같아 날도 춥고 하니 그냥 집에서 전화로 알아보고도 싶었다.

하지만 게시판을 직접 쳐다보면 합격의 감격을 누리는 순간도 필요할 것 같았다. 이런 감동의 순간을 또 언제 가질 수 있으랴…. 어차피 확률은 반반이라고 생각한 인문이는 벌떡 잠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목욕재계를 끝낸 인문이는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갈 땐 가더라도 전화로 확인이나 한 번 하고 가라는 엄마의 부탁을 만류하고 인문이는 두 눈으로 직접 합격자 명단이 적힌 게시판을 보기 위해 지원서를 접수한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시간이 마치 한 달처럼 길게 느껴졌다. 가는 동안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에 휩싸였다.

‘떨어지면 후기대에 원서를 내야 하나?’

‘시험제도가 변경되면 재수도 하기 힘들 것 같고…’

‘떨어지면 엄마한테는 뭐라고 하지….’

‘아…. 다른 친구들은 잘 봤나 모르겠네….’


어떻게든 이번에 합격해서 다시는 고3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던 인문이는 가는 내내 다양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 어디에도 합격을 하면 입학 전까지 무얼 할까 하는 질문지는 없었다.

그저 대학에 떨어지면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은 느낌까지 들 것 같아 지하철에 몸을 싣고 걱정만 쌓아갔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로 환승하러 가는 길에 있는 중국집 간판을 보면서 시험이 끝나고 엄마와 밥을 먹었던 기억으로 걱정을 씻어보려고도 했지만 꼭 붙을 거라는 자신감보다는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추운 날씨를 뚫고 도착한 학교 게시판 주위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다들 ARS전화로 합격여부를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축 늘어진 어깨를 겨우 일으켜 갈 길을 가는 모습이었다. 엊그제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은 것처럼 인문이의 쌓인 걱정도 사그라들 줄을 몰랐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녹색 게시판을 향해 걸어가는 인문이의 발걸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아스팔트가 인문이의 발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정문 바로 옆 게시판에 도착한 인문이는 어렵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녹색 게시판 위에 놓인 흰색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인문이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수험번호와 이름이 적힌 종이 위를 한 줄 한 줄 없애가며 훑어내려가면 갈수록 불안감이 가중되면서 좋지 않은 예상은 항상 빗나가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할 무렵,


“어…..?”


인문이의 예상 선택지에는 전혀 없던 결과가 앞에 놓인 것이었다.

원래 1 지망으로 지원했던 학과에 자기 자신의 이름을 찾지 못해 떨어졌나 싶었는데, 맨 아래 수험번호와 자기 이름이 적힌 줄을 발견한 인문이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담임선생님이 2 지망은 저 아래 그냥 아무거나 적자고 해서 적은 독어독문학과로 합격을 한 것이었다.

누가 그랬던가?

2 지망은 가망이 없는 만큼 그렇게 정성 들여 쓸 필요가 없다고…..


인문이는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다. 만약 재수를 하게 되면 다음 해부터 치러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봐야 했는데 시험방식이 바뀌다 보니 다들 재수를 꺼려했다. 그런 이유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선지원 후시험인 학력고사 원서를 접수할 때 하향지원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상위권부터 하향지원을 하다 보니 그게 인문이에게도 영향을 미친 탓인지 1 지망에서는 떨어지고 그 누구도 고민하고 쓰지 않던 2 지망에 덜컥 합격을 한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인문이는 자기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2 지망 합격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지 망설였다.


합격은 환영하지만 2 지망, 더구나 독어독문학과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문이는 대승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애초에 원서를 쓸 때부터 자기가 가고 싶어 했던 학과는 없었던 점, 만약 재수를 한다고 해도 바뀐 시험에 적응해 이보다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 집안 환경도 생각해야 한다는 점 등등


긴 시간 고민을 해야 답이 나올 것 같은 문제였지만, 의외로 답은 간단해졌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로 한 인문이는 독어독문학과 합격자 리스트가 있는 곳에 자기 이름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 자리를 잽싸게 떠났다.

올 때의 불안감은 온데간데없고 시원섭섭한 감정을 가지고 지하철역에 도착한 인문이는 어디를 가든 가서 열심히 하자는 마음을 먹기로 했다.


그렇게 합격이라는 기쁜 소식을 들고 집에 도착한 인문이에게 엄마는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셨다. 아들의 합격소식이 더 궁금했던 엄마는 인문이가 집을 나서고 얼마 있지 않아 ARS 전화로 합격여부를 알아보셨던 것이었다. 만약에라도 불합격이었다면 아들을 어떻게 달래주어야 하나라는 걱정 때문이었으리라.


가고자 했던 길이 없어 점수에 맞춰 그 길을 정했지만, 정작 그 길에 진입하지도 못한 채 다른 길로 들어서야 했던 인문이는 그렇게 또 한 번의 인생관문을 어렵사리 극복했다.


인문이는 자기 자신 앞에 차례로 놓여질 문이 지금보다는 더 쉽게 열리기를 바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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