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퇴직한 문과생 이야기

20. 추억이야 추억!

by 드리머

인문이의 블로그 포스팅을 위한 동반자는 다름 아닌 첫째 세준이었다.

주말마다 첫째를 데리고 현장체험학습이라는 명목하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이제 갓 돌을 넘긴 둘째는 평일을 비롯해 주말에도 와이프 몫이 되어 버렸다. 이런 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인문이는 가급적 거주지 인근으로만 동선을 짰다. 그리고 오전이든 오후든 반나절에 뚝딱 다녀올 수 있는 곳으로만 탐색을 한 것이다. 육아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인문이 또래의 가족들 또한 비슷한 여건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이 잠시라도 즐길 수 있는 볼거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주말마다 계획된 대로 때로는 아침부터 때로는 정확한 시간에 맞춰 세준이와 인문이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빈틈없는 주말까지는 아니었지만, 세준이는 현장체험학습이라는 명목하에 자기 의지와는 별개로 아빠가 이끄는 대로 박물관, 과학관 등의 체험수업은 물론, 다양한 지역축제에 참여하며 아빠 블로그에 업로드되는 사진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경기도어린이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유적지 체험에서는 뜨거운 여름날 박물관 야외에 준비된 신석기 구석기 도구 만들기 체험을 했다. 어두운 곳을 싫어하던 세준이는 광교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새로 생긴 수원광교박물관에 가서는 수원화성을 중심으로 정조대왕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수업을 듣기 위해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영상을 보기도 해야 했다. 수원화성에서는 투호 던지기, 전통의상 입어보기 등등의 체험을 하기 위해 감기가 걸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가야만 했다.

어디든 아이들이 보고 느끼고 배울만한 교육이나 체험이 진행되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 방문해 세준이가 직접 체험을 하고 아빠는 그런 모습을 카메라로 담는 것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세준이는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야 하는 활동이 있었고 인문이는 그런 모습이 조금이라도 포착이 되면 옆에서 비위를 맞춰주면서 어떻게든 그 활동을 마무리하려고 들었다.

늦잠을 자고도 싶은데 어디를 자꾸 가자고 하는 아빠에게 조금씩 자기 의견을 내세우기도 했고, 거기 가서 무엇을 하는 거냐고 묻기도 했으며, 다음에 가면 안 되냐고도 했다. 세준이가 생각하기엔 처음엔 정말 좋은 취지로 경험을 넓히기 위해 자기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자기 의견은 전혀 반영이 되지 않고 하기 싫은 활동도 억지로 해야 하면서 어떻게든 주말마다 블로그 포스팅을 위한 소재를 채우기 위한 활동으로 전락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면서 예약된 체험수업도 취소할 상황도 생기고 그럴 때마다 인문이는 블로그 포스팅 소재가 또 하나 날아갔다는 아쉬움에 휩싸였다.

그러는 사이 여름휴가 기간이 다가왔다. 올해는 어디를 가느냐는 와이프의 질문에 인문이는 이미 계획이 있다는 표정으로 경기도 양평으로 가자고 했다.

“양평에 뭐가 있는데?”

“휴양림도 있고, 계곡도 있고, 꽃마을도 있고 다 있지…?”

“그래? 그럼 일정 잡아봐”

그렇게 또 인문이네 가족은 블로그 포스팅을 위한 소재를 채우기 위해 인문이의 의도대로 양평으로 여름휴가를 3박 4일 동안 가게 되었다. 한창 물놀이를 좋아할 나이인 세준이에게는 계곡 핑계를 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보다는 어느 한 곳에 머물러 그야말로 여유로운 휴양을 즐기기를 원하는 와이프에게는 자연휴양림 숲 속의 집으로 둘러댔다.

여름휴가는 첫날부터 삐그덕거렸다. 비가 오는데 굳이 밖으로 나가자고 하는 인문이와 비 오는데 어딜 가냐며 숙소에서 빗소리나 들으며 조용히 고기나 구워 먹자고 하는 와이프, 그런 와이프의 말에 동조하면 TV도 보자고 하는 세준이, 이런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 방바닥을 뒹굴며 돌아다니는 둘째.

결국 비가 잦아든 틈을 타 온 가족은 휴양림 근처에 있는 세미원으로 향했다.

팔당호가 삼면으로 둘러싸인 물과 꽃의 정원으로 조성된 이곳을 비가 오는 날 방문하자니 마음에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더 멀리 이동했다가는 다른 가족들의 원성을 고스란히 혼자 감내해야 했던 인문이가 내린 고육지책이었다.

날씨 탓인지 방문객은 별로 없었다. 덕분에 한적한 산책을 즐길 수 있었던 까닭에 인문이는 와이프에게 자기 선택이 탁월했음을 내비치며,

“거봐, 나오니까 비도 그치고 사람도 없고 얼마나 좋아?”

“뭐 그렇네…”

그렇게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인문이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연신 찍어댔다. 주로 세미원의 풍경을 담았지만 인문이 와이프는 자기 모습이 블로그에 올려질까 봐 염려되었는지 인문이가 스마트폰만 들면 그 방향은 피하려는 눈치였다.

조금씩 빗방울이 오락가락했다. 그저 가랑비라고 생각하고 무시하려 했지만 하늘을 보니 왠지 심상치 않았다. 날씨 예보 역시 잔뜩 흐림으로 안내했다. 혹시 몰라 차에서 우산 3개를 들고 온 인문이 머리 위로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더니 금세 굵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세미원 정문에서부터 점점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빗방울은 더욱 굵어지고 바람까지 몰아쳤다.

고속도로인지 철로인지 모를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 아래 잠시 몸을 피한 와이프가 말했다.

“그냥 있자고 했잖아!”

불과 30분 사이에 판도가 바뀌었다. 인문이의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날씨가 입증해 주었는데, 그 사이 변덕을 부려 이제 주도권은 와이프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좀 이따 그칠 거야. 날씨예보에도 비소식은 없어…”

“날씨예보가 다 맞아?”

“그렇지는 않은데 내가 볼 땐 그냥 세찬 소나기 같아…”

인문이네 가족들에게 몰아치는 비바람만큼이나 인문이를 향한 와이프의 몰아치는 기세 또한 거셌다.

비가 그치기를 바라는 인문이에게 하늘은 반전의 기회조차도 주지 않았다. 정문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 주위엔 사람도 없었다. 마치 홍수로 고립된 마을에 갇혀 온 가족이 사는 집 지붕 위에 얹힌 느낌이 들기까지 한 인문이는 비가 멎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장대비로 변한 원망스러운 빗줄기를 탓하며 인문이 가족은 정문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앞서가는 와이프가 뭐라 뭐라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세찬 비바람이 먹어버렸다. 들어봐야 좋은 얘기가 아닐 것 같아 몰아치는 비가 고맙기도 했다.

그렇게 약 10분 남짓 이동했을까? 저 멀리 카페처럼 보이는 건물에서 환한 불빛을 내보이며 마치 인문이네 가족들에게 어서 와서 쉬라고 등을 깜빡깜빡 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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