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눈 감은 얼굴은 가끔 꼭 죽은 모습 같다. 무장해제된 채 오래 감은 눈을 보여주는 건 대게 더없이 가까운 사이들이라서, 내 어떤 시절에 이렇게 코앞에 생생하던 숨결이 언젠가 영영 사라지겠구나. 나는 어느 미래에 이 사람의 이 표정 앞에서 펑펑 울고 있겠구나 혼자서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그 미래가 꼭 상대와 나 둘 중 하나라도 늙어빠지게 되는 먼 훗날이 아닐 수 있다는 깨달음이 새삼스러운 요즘이다. 누구라도 갈 수 있는 장소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형태로 맞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기에는 너무 젊고 안일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죽음이 가진 고약한 얼굴 중 일부라는 걸 안다.
매일 주어지는 아침 냄새와 엄마의 저녁 8시면 오는 밥 먹었냐는 문자도 내일이면 평생 동안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살면 나 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이제 그런 아찔한 골목은 먼 미래 소독약 냄새가 풍기는 퍼런색 1인용 병실이 아니라 너무 자주 가는 장소의 시끄러운 음악이 흐르는 가게 맞은편에도 도사리고 있겠다 싶다. 그날 아침에도 왠지 나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일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을 못할 것 같은데. 우리 모두가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을 살고 있다.
그날 점심부터 일산 모교 축제까지 갈 여유가 없도록 근무가 있었다면, 혹은 축제를 다녀와 친구들과 한참을 떠들고 참살이길을 누비고도 체력이라도 남았다면 나는 그 누구보다도 그 시간대에 주위 사람을 꼬드겨 그 골목을 가자고 했을 인간이다. 그랬다면 숨 멎기 전엔 나 많이 놀랐겠지. 우리 엄마 너무 슬플까 봐 그게 제일 걱정된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주위 사람들도 나 자신도 언젠가 죽는단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매 순간마다 이를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겠지. 언제 닳아버릴지 모를 삶이라서 좀 더 자꾸 내가 원하는 삶을 외면하지 않고 귀 기울이고 그곳으로 나를 데려다주고 싶다. 잠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듯한, 모퉁이를 돌면 죽음의 그림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듯한 소름 끼치는 이 감각이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또, 도끼눈 뜨고 지적하기 바쁜 세상에서 내 곁에 눈감고 잠들어주는 사람들을 아침마다 방금 태어난 것처럼 사랑해줘야지. 매일 그리 낯간지럽게 살진 못하더라도 종종 죽음에 대해 곱씹으면서 나는 조금 더 다정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사랑받고 싶은 방식으로 사랑받고 있는 내가 갚아주고 싶은 마음들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얼마 전 고모한테 생일 카톡이 왔다.
"시국이 수상하니 네가 고생이 많겠다. 요즘은 자고 있는 아이들 얼굴도 한 번 더 들여다본다. 건강하게 잘 살아주는 게 효도라는 생각이 든다. 생일 축하한다~^^"
고모도 비슷한 생각을 했나 보다
생일 케이크 초를 후- 불고 나서는 눈감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소원으로 재빨리 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건강부터 읊었다.
제한 시간 내에 다 말하지 않으면 잘려서 혹시나 들어주지 못하기라도 할 것처럼, 신이 있다면 못 들으시면 안 되는 것부터 먼저 두괄식으로 긴히 부탁드렸다.
Memento mo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