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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사공 Mar 17. 2024

결핍에서 온 어머니 봉사활동

"엄마~~!!!"

"준아, 엄마 보려고 여기로 내려온 거야?"

"응. 엄마 보고 학교 가려고!"

"아이고 고맙네 우리 준이~ 근데 너 손이 너무 차갑다. 엄마 장갑 끼고 가."

"그럼 엄마손은 더 시렵잖아. 난 괜찮아. 엄마 나 간다."


겨울방학과 봄방학 사이 1~2주일 정도 노인복지관 어르신들이 교통봉사를 잠시 쉬는 기간이 있다. 이 기간에는 학교에서 반별로 엄마들에게 봉사활동을 요청하시고 신청한 엄마들이 정해진 날짜와 장소에 가서 등교시간 교통봉사활동을 한다. 큰 아이가 5학년, 작은아이가 2학년인 나는 지금까지 매년 이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1년에 한두 번 아이들 등교시간보다 일찍 나가서 미리 횡단보도에 서있는 것이다. 녹색어머니회 조끼와 깃발을 들고 말이다. 사실 나는 학부모임원도 아니고 어머니회 관련 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 직장 다니는 엄마라 자유롭지 못한 시간 탓도 있고, 애살없는 딸램 덕분에 학급임원의 엄마도 아닌 내가 그런 자리에서 가서 뭐 하겠나 싶은 생각도 있어서였다. 그래도 교통봉사활동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아침 등굣길에 우리 엄마가 봉사활동을 한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꽤 좋은 인상을 주는 것 같아서 매년 참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적극적인 부모님들이 많지 않은 지 이런 요청이 담임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단톡에 올라올 때면 마감이 빠르지 못한 편이다. 선생님도 한편으로 직장인인데 이런 거 빨리 마감이 안되면 괜스레 신경 쓰일 거 같단 생각이 들어 나는 대체로 이른 신청을 하는 편이다.


올해도 그런 마음으로 이른 신청을 하였고, 사실 달라진 내 생활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회사에 복귀를 하였고, 남편은 타 지역으로 매일 새벽 출근을 하고 있는 현재의 생활말이다. 아이들이 알아서 등교를 할 수 있게끔 모든 준비를 마쳐야지 나는 이른 아침 교통봉사 활동을 하러 갈 수 있는 것이다. 봉사활동을 위해 우리 아이 케어를 소홀히 해야 하는 하루가 되어야 함을 아니 괜히 신청했나 하는 후회가 살짝 들었다. 때마침 1월 말인 그날은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자랑하는 날이기도 했다. 내가 가진 옷 중에 가장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장갑에 마스크까지 쓰고 서 있는데도 발끝이 시려왔다. 그러던 중 나에게 찾아온 우리 아이는 손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내 장갑을 벗겨주려 하자 아이는 깃발 든 엄마 손이 더 차갑다며 나의 제안을 거절하고 신난 발걸음으로 학교로 올라갔다. 사실 그 장갑을 주었으면 후회할 뻔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얼마나 추운지, 장갑을 끼고 있어도 손에 감각이 무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 50분가량 횡단보도에서 교통봉사를 하고 조끼와 깃발을 다시 학교 보관함에 가져다준 뒤, 나는 출근길에 올랐다. 이걸 위해 20분 지각을 미리 신청해 놓았었다. 그렇게 출근을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을 걷는 내내 머리에 이런 생각이 맴돌았다.




나는 도대체 누가 시키지도 않는 이런 일을 왜 하고 있는 것일까? 좋아하는 둘째와 달리 첫째는 엄마가 이런 거 하는 걸 별로 내키지 않아 한다. 어릴 땐 좋아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저 엄마가 아침에 자기만 신경 써주길 원하지 굳이 이런 활동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난 학급임원 엄마도 아니고 게다가 직장도 다니고 있고 독박육아인 내가 이걸 신청 안 한다고 해서 아무도 머라할 사람이 없다. 사실 교통봉사는 한 번이 아니었다. 아이가 두 명이니 각각 반에서 요청이 있었고 나는 그걸 다 신청하였다. 다행히 노인복지관 어르신들의 활동이 계획보다 빨리 재개되어 나머지 한 번은 안 해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마침 급식검수 봉사활동을 다시 요청하셔서 난 그걸 받아들였다. 왜 난 이런 게 있을 때 신청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한 것인가... 출근길 이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더니 나는 이내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나는 참 욕심도, 결핍도 많은 아이로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은 어린 시절 엄마가 해줬으면 하는 활동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우리 엄마는 이렇게 해주지 못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우리 엄마는 치맛바람이 극성을 이루던 1990년대 이런 활동에 거의 참여하지 않으셨다. 공부를 곧잘 하던 나는 반장은 아니어도 항상 학급임원을 하고 있었고, 자연스레 임원 엄마들은 해야 할 일들이 정해져 있었다. 우리 엄마는 피할 수 없는 최소한만 해주셨고 나는 항상 그런 임무와 엄마 사이에서 눈치를 보았다. 무언가를 사가야 하면 가장 싸고 부담 없는 것을 고르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운동회날 담임선생님 점심을 준비한 엄마들 사이에서 평소 나는 먹어보지도 못한 화려한 음식이 가득한 다른 엄마들 찬합 사이에서 참으로 정직하고 깔끔하게 싼 엄마의 김밥만 한가득 들은 찬합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중학생 때인가 한 번은 담임선생님이 성적순으로 반장선거 후보를 정하셨고, 이제 절대 뭐 맡아오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 교무실로 찾아가 반장선거에 기권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교무실 사이에 세워진 나는 선생님의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아직도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반장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엄마가 못하게 해서 포기한 것뿐... 그래서 지금 마음이 그런 것이다. 우리 아이는 학교에서 당당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말이다. 그런데 내가 가진 그런 욕심이 우리 큰 애는 없다. 큰 애는 엄마가 그런 활동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4년 넘게 이 활동을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진짜... 나의 결핍 때문인가 보다. 스스로 깨닫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이제 이런 활동에 꾸역꾸역 참여하지 않아도 되겠다. 이건 아이를 위한 게 아니라 그저 나를 위한 것이었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둘째는 나랑 성격이 비슷하다. 욕심도 많고 애살도 많다. 부끄럼과 낯가림이 있지만 뭐든 다 해보아야 하는 성격이다. 아마 그 아이가 내년에 3학년이 되어 반장선거에 나가겠다고 하면 나의 이 마음이 다시 동할지 모른다. 사실 나도 반장엄마 한번 되어보고 싶다. 이게 내 진심인가 보다. 아이를 통해 내 결핍을 채우면 안 되는 걸 알지만, 나는 여전히 그 결핍을 채우고 싶은 욕구를 가진 엄마가 아닐까... 과연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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