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와 초콜릿 공장

로알드달 시리즈 1

by 병코선생


어린이들이게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보면 약속이나 한 듯 거의 모든 아이들이 초콜릿 공장안에서 이것저것 뜯어먹는 장면을 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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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한 마디씩 덧붙이죠.


"나도 저렇게 먹어보고 싶다....."


달콤한 초콜릿 강, 끝없이 펼쳐진 사탕 나무, 그리고 신비로운 발명품들로 가득 찬 그곳. 어릴 적,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한번쯤은 초콜릿 공장에 초대받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만나볼 초콜릿 공장은 달콤함만을 보여주지는 않을 예정입니다. 인종차별, 정치적 올바름, 아동노동 등 다소 무겁고 불편한 단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죠.


윌리웡카의 초콜릿 공장은 과연 어떤 비밀을 품고 있을까요?


준비가 되었다면, 꿈과 현실, 그리고 욕망과 교훈이 뒤죽박죽 녹아 있는 윌리웡카의 공장으로 함께 떠나 보겠습니다.




줄거리 요약


주인공인 찰리는 작은 오두막집에서 엄마와 아빠 그리고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찰리는 누구보다 초콜릿을 좋아했지만,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에만 맛볼 수 있었죠.


어느 날, 세계 최대의 초콜릿 회사를 운영하는 윌리웡카는 깜짝 놀랄만한 발표를 합니다. 판매 중인 초콜릿에 5개의 황금티켓을 숨겨두었는데, 이를 찾는 사람들에게 마법의 장소로만 알려져 있던 그의 공장을 견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베일에 가려있던 제조비법과 신기한 기술 공개는 물론 평생 먹을 초콜릿을 받게 된다는 내용도 포함해서요. 이 소식은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전 세계 수많은 아이들이 초콜릿 가게로 몰려들었습니다.


가난한 찰리는 생일에 초콜릿을 한 개 선물 받았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을 뜯어 보았지만, 그곳에 티켓은 없었죠. 시간은 흘러 네 명의 어린이들이 황금 티켓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체념한 채 길을 걷던 찰리는 눈 속에 숨어있던 지폐 한 장을 발견합니다. 가게로 달려가 초콜릿 하나를 집어 들었는데, 그곳에서 마지막 황금 티켓을 거머쥐게 됩니다. 좀처럼 웃을 일 없는 찰리의 가족들은 모처럼 기뻐했고, 조 할아버지와 함께 공장을 방문하기로 합니다.


약속된 날이 되자 다섯 명의 아이들과 보호자들은 웡카의 초콜릿 공장 앞에 모였습니다. 공장에 들어선 일행은 초콜릿이 흐르는 강과 폭포,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는 동산 등 눈 앞에 펼쳐진 환상적인 모습에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웡카의 안내를 받으며 초콜릿 강을 건너 신비한 발명품들을 만나게 되는데, 음식 맛이 나는 껌과 핥아 먹는 벽지, 따끈한 아이스크림, 호두를 까는 수백 마리의 다람쥐와 초콜릿을 전달할 수 있는 TV까지 진기한 발명품들을 구경하며 환상적인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밀스럽게 일해 온 키가 작은 움파룸파 사람들도 만나게 되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찰리를 제외한 어린이들은 하나같이 말썽을 일으키며 투어에서 탈락하기 시작합니다.


황금 티켓의 첫 번째 주인공이자 식탐 많은 소년 아우구스투스는 웡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초콜릿 강에 얼굴을 처박고 마시다가 강에 빠져 불순물 처리 관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아버지의 재력으로 50만 개의 초콜릿을 구매한 끝에 황금티켓을 거머쥔 버루카.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부모에게 졸라 무조건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버루카는 호두껍데기를 까는 다람쥐를 보고 가지고 싶다며 뛰어들었다가 불량 식자재로 분류되어 쓰레기 배출구로 빠져버리고 말죠.


온종일 껌을 씹어대는 승리욕이 강한 소녀 바이올렛은 넘쳐나는 호기심을 주체못하고 개발이 덜 된 껌을 입에 넣었다가 온몸이 블루베리처럼 파래지고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착즙실로 굴러 내보내졌습니다.


텔레비전에 중독된 소년 마이크는 초콜릿이 전송되는 방송시스템을 보곤 세계 최초로 TV에 전송되는 사람이 되겠다며 카메라로 뛰어들었다가 키가 1인치로 줄어들게 됩니다.


한 명씩 탈락할 때마다 움파룸파들은 훈계를 곁들인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의 탐욕과 무지, 그리고 버릇없는 행동에 대해 조롱해 댔습니다. 그러나 찰리는 달랐습니다. 순수하고 겸손하며,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찰리만이 무사히 투어를 마치게 되죠. 이를 눈여겨보았던 웡카는 찰리의 성품을 높이 평가하며,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선택합니다. 웡카는 찰리와 그의 가족이 공장에서 함께 살며 행복한 삶을 살기를 권유합니다. 그리곤 웡카는 찰리와 조 할아버지를 하늘을 나는 거대한 유리 엘리베이터에 태워 찰리 집으로 향합니다.






로알드달과 진짜 초콜릿 공장


로알드 달이 렙톤 학교에 다니던 10대 후반, 이따금씩 초콜릿 상자를 선물 받았다고 합니다. 인근에 있는 대형 초콜릿 공장에서 품평을 부탁하며 보내준 것인데요, 초콜릿 상자 안에는 개발 중인 각각 맛이 다른 12개의 초콜릿과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용지가 함께 들어 있었죠. 학생들이 할 일은 그저 맛있게 먹고 느낌을 적는 것뿐이었다고 합니다. 초콜릿 회사에게도 맛에 민감한 십 대 소년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그야말로 기발한 발상이었죠.


로알드 달은 자신의 자서전 '보이'를 통해 이 품평이벤트가 그를 얼마나 흥분시켰으며, 즐거운 일이었는지를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나는 초콜릿과 퍼지를 비롯하여 여러 달콤한 원료들이 가마솥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실험실 같은 기다란 흰색 방을 상상해 보곤 했다. 그런 곳에서는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마솥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이런저런 재료를 혼합한 끝에 개발된 신제품의 그 기막힌 맛을 볼 것이었다. 나는 그런 실험실 같은 곳에서 일하는 내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그야말로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엄청나게 맛있는 초콜릿을 개발한다. (중략) 회사의 높은 사람이 내가 개발한 새로운 초콜릿을 천천히 집어 들고 한 입 베어 문다. 그는 입안에서 혀끝으로 초콜릿을 굴린다. 그가 별안간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친다. "드디어 자네가 내가 원하는 걸 만들었어! 자네가 해냈다고! 이건 기적이야!" 그는 내 등까지 두드리며 계속 외친다.

"단박에 백만 개도 팔 수 있을 거야! 이걸로 전 세계를 휩쓰는 건 시간 문제라고! 자네가 어떻게 이런 걸 개발해 냈지? 자네 봉급을 두 배로 올려주겠네!“

그런 꿈은 자꾸 꿔도 질리지 않는다. 마냥 좋기만 하다.


35년 뒤, 이러한 기억은 어린이를 위한 두 번째 책을 구상하던 중 그의 머리를 강하게 강타했고 작품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밑거름이 됩니다.






찰리와 영화 공장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그린 두 편의 영화가 있습니다. 진 와일더 주연의 1971년 작 ‘윌리웡카와 초콜릿 공장’과 조니 뎁 주연의 2005년 작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그것이죠. 원작이 워낙 출중하다 보니 두 편 다 별다른 스토리 왜곡 없이 원작 그대로의 흐름을 선택합니다. 제목이 같은 두 편의 영화가 수십 년 이상 시차를 두고 개봉한다면 보통의 경우 나중 작이 리메이크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정반대입니다. 2005년 팀 버튼 작품이 원작에 가깝고, 먼저 개봉한 1971년 작품이 오히려 소설과 비교해 다른 점이 많습니다.


비교적 최근작인 2005년 개봉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부터 살펴보겠습니다.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찰리와 초콜릿 공장),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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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 감독 특유의 환상적인 연출력과 조니 뎁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더해지면서 원작 그대로의 느낌을 스크린에 투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이 작품은 1971년 영화에서 기술력과 자본의 한계로 실현하지 못했던 원작의 장면을 멋들어지게 보여줍니다. 배우들의 실감 나는 연기를 끌어내기 위해 실제 파티시에들을 고용해 초콜릿 동산의 모든 소품을 먹을 수 있게 만든다던가, 한두 장면을 위해 수십 마리의 청설모를 수개월 동안 훈련시킨다던가 하는 등 팀 버튼 감독 특유의 완성도를 향한 뚝심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앞서 개봉한 영화를 참고하기보다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원작처럼 마무리가 조금은 싱거워졌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삽입한 듯한 웡카의 아버지 이야기는 뭔가 동떨어진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흥행에 성공하여 전 세계적으로 4억 7,50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지금도 OTT 서비스를 통해 꾸준히 부름을 받는 스테디셀러가 되었습니다.



Willy Wonka & The Chocolate Factory(윌리웡카와 초콜릿 공장),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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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원작자가 직접 작품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대본을 작성하던 로알드는 자신의 소설이 극 연출로 쓰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대본을 수정하기 시작하는데요, 내친김에 원작 줄거리까지 손을 데 버리고 맙니다. 이렇게 대본이 원작을 추월하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종이책보다 먼저 영화를 통해 ‘움파룸파’가 소개되었고요, 주인공이 황금티켓을 손에 넣는 과정을 보완한다던가 엔딩에 새로운 장치를 추가하여 스토리를 탄탄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관람객들의 평가는 어땠을까요? 의외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원작자가 직접 손을 데서 그런지 추가된 스토리가 영화에 매끄럽게 잘 녹았음은 물론 원작보다 스토리가 낫다는 평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원작자의 힘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덕분에 71년 영화가 원작인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추가된 내용 중 마무리 부분만 살짝 들춰보고 가겠습니다. 황금티켓의 주인공이 정해질 때마다 한 남자가 나타나 웡카 공장의 녹지 않는 알사탕을 가져와 주면 거액의 돈을 주겠다며 유혹합니다. 다른 탈락한 아이들처럼 찰리도 규칙을 어기고 하늘을 나는 물약을 웡카 몰래 먹었다가 투어 마지막에 걸리고 마는데요,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선물로 받은 녹지 않는 알사탕을 웡카의 책상에 두고 뒤돌아섭니다. 가지고 나가면 큰돈을 벌 수 있음에도 말이죠. 알고 보니 스파이는 웡카의 시험이었고, 이런 착한 심성에 반해 웡카는 찰리를 후계자로 택하게 됩니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후계자가 됐다는 원작보다는 개연성이 높은 마무리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로알드 달은 괴팍한 성격처럼 대본에서부터 캐스팅에 이르기까지 참견해가며 제작자들과 충돌했다고 했다고 하는데요 어두운 분위기와 풍자를 유지하려고 고집을 부렸지만, 의도와는 반대로 영화는 점점 더 밝아지고 명랑해져 갔습니다. 로알드는 분을 참지 못하고 시사회 때 버럭 화를 냈다고 합니다. 뮤지컬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소설 속 움파룸파도 노래를 부릅니다. 한 명씩 탈락할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몰려와 아이들의 잘못을 책망하는 노래를 하는데 노랫말도 꽤 긴 편입니다. 자신이 직접 노래 가사까지 써줘 놓고, 뮤지컬이라 싫다니…. 노래 대신 독백이라도 해야 했던 것이었을까요? 로알드답습니다. 이후 로알드는 자신의 작품이 영화화되는 것에 꾀나 부정적이었다 합니다. 덕분에 ‘찰리와 초콜릿 공장’ 속편은 영화로 나오지 못했고, 영화 ‘위치스(마녀를 잡아라)’,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 ‘마틸다’와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들 역시 작가 사후에 영화화됩니다.

원작과 달리 버루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판별기에서 떨어져 탈락하는 것으로 변경됩니다. 일사불란한 청설모들의 움직임을 연출해내기 불가능했기 때문이죠. 이처럼 영화는 장면 곳곳에서 기술과 예산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작가 특유의 감성은 오히려 1971년 작이 더 잘 표현했다는 평가는 받고 있습니다. 덕후들의 감성을 더 잘 살렸다고 해야 할까요? 원작의 프리퀄 작품이라 할 수 있는 2023년 작 영화 ‘웡카’역시 콘셉트 대부분을 71년 작에서 가져왔고, ‘톰과 제리(Tom and Jerry: Willy Wonka and the Chocolate Factory)’ 버전에도 제목부터 71년 작품을 오마주하고 있습니다.

‘오즈의 마법사’ 이후 최고의 어린이 뮤지컬영화로 칭송받는 ‘윌리웡카의 초콜릿 공장’은 생각과 달리 흥행에는 처참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배급사인 ‘파라마운트’사는 일찌감치 실패를 인정하고 퀘이커오츠(퀘이커교도들이 운영하는 식품회사)에 판권을 넘겨버립니다. 그러나 이번엔 판권을 쥔 회사의 식품에 문제가 생기면서 영화의 이미지마저 동반 추락해 버리고 말죠. 그렇게 캐비넷 안에 있던 필름은 퀘이커오츠가 영화산업을 포기하면서 워너브라더스에 품에 안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기적이 일어납니다. 80년대 컬러TV와 비디오테이프의 보급과 함께 역주행이 시작되더니 워너브라더스에게 큰 이득을 안겨주었습니다. 지금도 2005년,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2023년 ‘웡카’로 맥을 이어가며 메인 아이피로 자리매김하는 중입니다.





찰리와 정치적 올바름 공장


피그미족 논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출판과 동시에 인종차별 논란을 겪게 됩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작은 사람들을 아프리카 피그미족이라고 표현한 것 때문입니다. 그것도 카카오 열매를 마음껏 먹게 해주겠다는 말에 넘어가 웡카를 따라온 이들이라고 서술해놓았으니 흑인들이나 반인종주의자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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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ACP(흑인 인권단체)는 물론 출판되는 나라마다 언론과 칼럼에서 이러한 인종차별적 소재를 지적하였고, 작가 본인도 표현이 부적절했음을 인정하기에 이릅니다. '피그미족'은 삭제되었고 대신 가상의 나라에서 온 가상의 부족민들로 설정을 변경합니다. 그 이름이 우리에게 익숙한 '움파룸파'입니다.


참고로 피그미족은 중앙아프리카를 거점으로 현재에도 살고있는 원주민입니다. 19세기 말, 탐험가들의 입을 통해 서구에 알려지게 되었죠. 무리를 지어 사냥감을 찾아 이동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은둔하는 생활방식과 150cm 미만의 작은 체구 때문에 전설 속 존재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유인원의 한 종류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다행히 인근 부족과의 교류를 통해 오해는 하나둘 사라졌고, 영상 다큐멘터리 덕분에 그들의 진짜 삶이 세상에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EBS 채널을 통해서도 소개되기도 했는데요, 키가 조금 작을 뿐 사냥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용맹한 원주민이었으며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멋진 사람들이었습니다.


“I created a group of little fantasy creatures…. I saw them as charming creatures, whereas the white kids in the books were… most unpleasant. It didn’t occur to me that my depiction of the Oompa-Loompas was racist, but it did occur to the NAACP and others…. After listening to the criticisms, I found myself sympathizing with them, which is why I revised the book”

(Dahl in West, 1988)


"나는 작고 환상적인 사람들을 만들었습니다…. 내 눈엔 그들이 매력적인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오히려 책에 나오는 백인 아이들이 대부분 불쾌하게 그려졌죠. 내가 묘사한 움파룸파들이 인종차별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NAACP(전미 유색인종 지위 향상협회)와 다른 이들은 그렇게 보았습니다…. 비판을 듣고 나서, 나는 그들의 주장에 공감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책을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로알드 달, 1988)




멋대로 개정판 논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출판된 지 육십여 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작가의 장례식을 치른 지도 어느덧 30여 년 훌쩍 지나버렸죠. 그러나 윌리웡카의 초콜릿 공장은 여전히 정치적 올바름(PC)논쟁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2022년엔 출판사가 나서 작품에 메스를 들어 논란이 되었습니다. 신체적 특징, 정신건강, 젠더, 인종 등에 관한 것들을 문제 삼았는데요, 예를 들면 초콜릿 강에 빠졌던 아우구스투스는 '뚱뚱한(fat)' 대신 '거대한(enormous)'이라는 표현으로 바꾸고, 움파룸파는 '남자들(men)'대신 중성적 표현인 '작은 사람(small people)'으로 수정되었습니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에서도 ‘이 중턱’ ‘미친’ ‘못생긴’과 같은 인신공격으로 보일 수 있는 표현들 역시 삭제를 감행하겠노라고 발표했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엄청난 비판이 일었습니다. 작가의 출신국인 영국의 왕비와 총리, 유명 작가가 대열에 동참했고, 표현의 자유 침해이자 상상력을 제약하는 검열에 대항하는 성명이 지구촌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출판사는 현대 독자들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일축했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만 갔습니다. 상황을 주시하던 출판사는 방침을 바꿔 개정판과 함께 원본도 계속 출간하기로 공표합니다. 계산기를 두드려본 후 슬쩍 양시론에 올라탄 거죠.


원작 유지와 시대의 흐름에 맞춘 개정, 어떤 게 독자들에게 유익할까요? 저에게 묻는다면 아동용 개정판이나 월트디즈니 스타일의 스토리 왜곡에 ‘그럴 수 있다’라고 답하겠습니다. 개정판이 덕분에 잘린 발에 조롱하는 당하는 불편한 장면 없이도 어린이들이 빨간 구두를 즐길 수 있고, 원작비틀기 덕분에 엘사와 안나가 펼치는 환상적인 작품을 만날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죠.


하지만, 출판사가 먼저 나서 단어 하나하나에 자기 검열을 해대는 이런 얄궂은 행태에 대해선 반대입니다. 뚱뚱한 아이를 거대한 아이라고 바꾸고, 성별을 중성화시켜 사람들이라고 바꾸면 독자들이 계몽되고 또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됩니까? 무엇보다 저작권자들이 나서서 독자들의 독서 기회를 박탈하는 게 옳은 일일까요? 이렇게 수술 당한 작품을 원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런 세련된 논쟁이야 어른들 사정이라 그렇다 치고, 외부의 압력에 맞서 작품을 지켜야 할 출판사가 자기 검열에 앞장서는 행태라니…. 독자의 읽을 권리와 비판할 권리는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는 겁니까? 주석처리 등으로 독자에게 사고와 선택의 기회를 주는 방법은 없었는지, 바람보다 먼저 눕는 출판사의 처사가 못내 아쉽게 느껴집니다.







퀘이커교도와 초콜릿 공장


영국의 초콜릿 산업

영국인들은 스페인이나 프랑스와 같은 주변국들에 비해 카카오를 상대적으로 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17세기 말이 되어서야 영국에 소개되었는데, 저렴한 가격 덕분에 커피와 차가 먼저 선택받았고 초콜릿은 상류층과 부유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일찌감치 초콜릿의 잠재적인 수입원으로 인식한 영국 정부는 자국 내로 수입하는 카카오 콩과 영국에서 제조되고 판매되는 모든 초콜릿에 세금을 징수하였습니다. 시장팽창을 예견한 이러한 규제는 오히려 초콜릿 시장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원자재의 밀수가 증가하였고 카카오 콩에 이물질을 섞는 것이 만연하게 되는 등 품질 저하를 불러왔습니다.


낮은 품질과 높은 과세로 몸살을 앓던 초콜릿 산업은 1850년경에 이르러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됩니다. 바로 퀘이커 기업들이 등장 때문인데요, 캐드버리(Cadbury), 프라이(Fry), 그리고 론트리(Rowntree) 등 퀘이커교들이 운영하던 식품회사들이 전면에 나서 영국 정부를 상대로 초콜릿의 영양학적 미덕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관세는 대폭 낮아졌고, 품질 향상에 투자함으로써 영국의 초콜릿 산업은 눈에 띄게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퀘이커가 누군데요?

Friends(또는 퀘이커교)라고 불리는 이들은 17세기 중반 영국에서 일어난 기독교 단체로서, 성직자, 또는 복음적인 형태를 취하지 않고 내적인 깨달음에 따라 삶을 전적으로 헌신한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평화, 평등, 소박함, 진실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린피스와 앰네스티 같은 NGO 활동에 영감을 주기도 하였고, 교육사업, 양성평등, 양심적 병역거부 등 다양한 사회 운동과 경제적인 협력과 원조를 중시하며, 서로 돕고 지원하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종교 단체로는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로알드 달이 학창 시절 초콜릿 품평에 참여했다는 캐드버리 역시 퀘이커교도의 기업인데, 노동자들의 복지를 위해 끊임없이 투자하는 기업으로 유명합니다. 19세기 말 이미 4,000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이 된 캐드버리는 노동자평의회를 구성하고 노동자들을 위한 주택과 복지시설을 제공하는 모델 마을인 '보를 빌(Bournville)'을 설립하기에 이릅니다. 공장 안에는 직원들을 도서관이 세워졌고,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등 당시에는 생소하기만 했던 복지체계를 잘 갖추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2000년 초반 실시된 주5일제 근무를 200년이나 앞선 1800년대 말에 이미 실시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기업복지 차원을 넘어 온정적 자본주의의 교본이라는 말이 허투루 만들어진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딱 거기까지.

“웡카 씨는 머리에 검은 모자를 쓰고 있었고 아름다운 자줏빛 벨벳의 연미복을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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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윌리웡카의 외모를 연상케 하는 보라색과 흰색의 이미지로 디자인된 캐드버리 초콜릿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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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버리사가 운영하는 ‘캐드버리 월드’입니다. 로알드 달은 학창 시절 캐드버리의 초콜릿 품평회에서 영감을 받아 윌리웡카의 초콜릿 공장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캐드버리는 웡카의 초콜릿 공장을 본떠 캐드버리 월드를 만들어내죠. 자본의 아름다운 순환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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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웡카의 초콜릿 공장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이곳은 캐드버리 복지시설 안에 있는 초콜릿 테마파크입니다. 공연, 전시, 그리고 갖가지 체험을 통해 초콜릿의 달콤함에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환상적인 프로그램을 선사한다고 하는데요, 몇 파운드만 있으면 누구나 황금 티켓의 주인공이 되어 종일 초콜릿이 선사하는 달콤함에 취해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초콜릿에 관해서는 없는 것이 없다는 이곳에 딱 한 가지 없는 것이 있습니다. 눈치채셨나요?


사라진(혹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움파룸파를 찾아 아프리카로 가보겠습니다.


오늘날 세계 1, 2위 카카오 생산국가는 가나와 코트디부아르입니다. 두 나라를 포함한 세계 최빈국이 속해있는 아프리카 중서부 지역을 가리켜 카카오 벨트라고 부릅니다. 전 세계로 카카오 원재료의 90%를 보급하는 주요 생산지면서 노동착취와 인신매매, 아동 노예 등 인권 문제가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죠.


"이런 맛은 처음이에요. 이런 건 도대체 어떤 걸로 만들죠?"

인권 실태 조사 중 관리자가 건넨 초콜릿을 처음 맛본 노동자가 했던 말 이라고 합니다. 연간 1,200억 달러 가치의 카카오를 생산해내고 있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어린이들은 자신들이 키워낸 카카오로 무엇을 만드는지조차 모른 채 살기 위해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하고 있습니다. 이 백 년 전부터 복지와 인류애를 신조로 초콜릿 사업을 일구어냈다는 퀘이커 사업가들 역시 이곳에서 자행되는 어두운 현실에 대해선 애써 눈을 감고 있는 것이죠. 뿔쌩쌩이, 쿵쿵왕왕이, 왕알알이와 같은 맹수를 피해 카카오 열매를 실컷 먹게 해주겠다는 말에 웡카를 따라 초콜릿 공장에 왔다는 피그미족. 그들이 부르던 이름다운 노래가 자못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단어

‘황금티켓'

Youth struggle to end up on the winning side of social divides Faced with productivity gaps, labour market dualism and weaknesses in the education young people compete fiercely to enter good universes and land secure and attractive careers in large firms and the public sector. This Korean “golden ticket syndrome” leads to low youth employment and family formation, reduces life satisfaction, and potentially has a long-term scarring effect.

OECD ECONOMIC SURVEYS: KOREA 2022 © OECD 2022


생산성 격차, 노동 시장의 이중성, 불충분한 교육 시스템에 직면한 젊은이들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대기업 또는 공공 부문에서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직업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이러한 한국의 "골든 티켓 증후군"은 청년 실업을 증가시키고, 가족 형성을 줄이며, 삶의 만족도를 저하하고, 장기적으로는 흉터 효과를 남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OECD 경제조사: 2022년 대한민국 © OECD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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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유래한 '황금티켓(Golden ticket)'이라는 말은 영미권에서 낯선 표현이 아닙니다. 거액의 투자금을 유치하거나 하루아침에 일확천금을 얻었다거나 고액자산가들의 자선활동을 전하는 기사에서 종종 볼 수 있죠. '오즈의 마법사'의 '노란 벽돌길(Yellow brick road)'과 비슷한 식의 쓰임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황금티켓'이라는 말에 '증후군'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면 느낌이 백 팔십도 달라집니다. '황금티켓 증후군'은 2022년 OECD에서 발행한 한국경제보고서에서 처음 나온 말입니다. 성공을 위해 소수의 사람만 통과할 수 있는 좁은 문을 향해 역량을 집중하는 한국 사회의 과잉 경쟁 행태를 꼬집는 표현한 것인데요, 보고서는 일류대학이나 공무원, 대기업 그리고 특정 자격증 등 낮은 확률을 뚫어야 성취할 수 있는 치열한 경쟁 행태와 이 때문에 초래되는 시간적·물질적·사회적 비용 소모가 미래에 한국 사회의 큰 흉터로 남을 거란 전망을 내 놓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노력과 경쟁 활동이 OECD가 나서 우려할 정도인가 싶은 생각과 다른 한 편으로 이를 반박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아 뻘쭘해집니다. 취업준비자 60만의 시대, '황금티켓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조금은 따갑고 조금은 서글프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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