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게 비지떡’ 프레임에서 벗어난 현명한 소비
부모님 집에 있는 건 다 좋아 보인다. 그 집에 있는 거의 모든 물건이 해당 품목에서 가장 비싼 제품은 아니지만 써보면 참 좋다. 믹서기, 부엌칼, 이불, 도마, 의자, 물걸레 등 종류와 브랜드도 참 각양각색이다. 어떻게 이런 물건들을 잘 사는지 궁금해하며, 그 집에 잠시 머무는 동안 해당 물건들을 잘 사용한다.
하지만 나의 집에 돌아왔을 때, 그 물건들을 떠올리지만 선뜻 그것과 같은 물건을 사지 못한다. 실용적이고 편리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막상 같은 것을 구매하는 것은 어렵다. 선택이 어렵다. 선택장애가 온다.
선택장애가 오는 이유는, 비싸고 좋아 보이는 제품을 선택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의 제품을 구매했다가 그 품질에 후회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과 함께, 다소 불편하더라도 같은 용도의 물건이 이미 있는데 새 상품을 사는 것이 꺼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어제 부모님 댁에 있는 것과 비슷한 믹서기를 샀다. 6년 전 결혼할 때 사은품으로 받은 믹서기가 더는 쓰기 어려워져서 믹서기를 사러 상점에 갔다. 좋은 믹서기는 10만 원대 후반이었지만, 많은 고민 끝에 우리에게 딱 필요한 용도의 6만 원짜리 믹서기를 사 왔다. 집에 와서 개봉하여 사용해 보니 잘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합리적 소비구나. 잘 샀다. 별것 아닌 일이지만 왠지 뿌듯했다.
그리고 엄마 아빠와 함께 살며 실용적인 믹서기로 데친 토마토의 껍질을 벗겨 토마토 주스를 만들어 나눠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던 그 시절의 아침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