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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재 Dec 04. 2021

내 생애 첫 소개팅

그 지우고 싶은 흑역사



너 인만추라고 알아?




그때가 처음이었다. 정체불명의 단어를 알게 된 것은


조금 일찍 취업에 성공해 직장 생활을 시작한 대학 동기는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소개팅은 너무 어려운  같아라며 울분을 토해냈다.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면서도 다소 이해하기 힘든 주제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졸업한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 소개팅이란 경험해   없는 진짜 어른들의 세계였다. 여태 학교 수업이나 동아리에서 생긴 미묘한 긴장관계가 이성 간의 만남으로 이어지기엔 충분했으니 말이다(친구는 그걸 보고 자만추 불렀다).


그 번뇌에 동참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행동반경은 좁아져 갔다. 퇴근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로 향하다 보면 어느새 일주일이 훅하고 지나갔다. 조금이라도 체력이 남은 날에는 마치 수련이라도 하듯 헬스장에서 고독한 쇠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성은커녕,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성격상 아무나 붙잡고 번호를 물어볼 수도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반복되는 일상도 제법 편해질 무렵, 처음으로 '인만추'의 기회가 찾아왔다. "형, 소개팅할래?" 회사 동기였다. 평소 외롭다며 흘려둔 말들이 빛을 본 순간이었다. 기다렸다. 그 소개팅이란 거, 나도 좀 해보자.


곧 사진 몇 장과 나이, 키 등의 신체 스펙(?)을 주고받았고, 서로의 동의를 얻고 나서야 매칭이 이루어졌다. 지극히 J 성향이었기에 첫 소개팅 또한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었다. ‘소개팅 맛집', '소개팅 패션', '소개팅 공략법'을 검색하고, 대화 주제까지 생각하며 미지의 세계를 탐구했다. 옷을 고르고, 머리를 잘랐다. 마지막으로 식당 예약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남은 것은 실전이었다.


결전의 날은 곧 찾아왔다. 조금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해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미 전날부터 심장이 멋대로 뛰기 시작한 터였다. 오랜만에 느끼는 이 토할 것 같은 기분, 면접장에서 느꼈던 익숙한 긴장감이었다. 문이 열리고, 사진 속 상대가 현실로 다가왔다. 긴장, 떨림, 당황 복잡한 감정들이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몰려왔다. 완벽했던 나의 계획도 꼬여만 갔다.


"안녕하세요?", "네엑 안녕하세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목이 매이기 시작한 것이다.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누가 봐도 '얘 엄청 긴장했네'라고, 물이라도 마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수습해야 했다. 인터넷에서 본 '소개팅 팁 첫 번째, 매너 있는 모습을 보여라!'라는 글을 떠올렸다. '나는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다' 자기 주문을 걸고, 물통을 그녀의 잔에 가져갔다.


오히려 상황은 악화됐다. 달그락달그락. 물통을 쥔 손마저 사시나무 떨듯 떨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치겠네 진짜' 당장이라도 테이블을 엎고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상적인 대화가 이루어졌을리 만무하다. 호구조사를 하듯 신상을 캐묻고, 누구도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의미 없는 말들이 힘겹게 둘 사이의 침묵을 채워갔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상대와 함께하는 2시간 동안 그녀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데이트는 끝이 났고, 결과는 참혹했다. 돌아오지 않는 상대방의 답장을 기다리며 속은 한없이 타들어 갔다. 나중에 가서야 그것이 거절의 의미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너무 늦은 뒤였다. 수치심과 후회가 빚쟁이들처럼 찾아왔다. 털어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흔히 첫사랑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소개팅도 마찬가지다. 다만 첫사랑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도 하지만, 소개팅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게 내 중론이다. 오히려 잊고 싶다는 말이 맞을지 모르겠다. 그 부끄러운 기억들을 브런치를 통해 조심히 꺼내보려 한다. 누군가 또 다른 흑역사를 만들지 않길 바라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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