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알람소리 없이 자연스럽게 잠에서 깼다. 휴대폰은 알람이 설정되어 있지 않고, 오늘도 역시 잠들어 있는 사이에 아무런 연락이나 메일이 없다. 어제 밤에 틀어놓은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와 어둡게 쳐진 커튼 사이로 가늘게 햇빛이 들어온다.
'많이 지친 너를 위해서 내가 밤새 어둠을 이기고 오늘의 아침을 밝혀 두었어'
속삭임이 들려와 창문을 드르륵 열어본다. 약간 차가운 공기가 방안에 퍼지고, 다시 이불속에 들어가서 누운 채 얼굴만 내놓는다. 이불 속의 따스함과 밖에서 들어온 신선한 바람의 향기가 만나서 까페라떼의 거품처럼 부드러운 촉감을 준다.
잠옷 위에 부드러운 겉옷만 걸친 채 슬리퍼를 끌고 밖으로 나간다. 금색의 잔디가 깔린 마당 끝에는 나무로 만든 벤치가 있다. 벤치는 햇빛으로 적당히 따스하게 데워졌고, 그 위에 앉아서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듣는다. 밀려오는 파도는 처음에는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오래 보고 있노라니 소리도 크기도 조금씩 달라 보인다.
파도소리 사이사이로 부지런한 동네 꼬마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도너츠 위의 알록달록한 토핑처럼 뿌려진다. 가끔씩 찾아오는 하얀 색의 갈매기와 내 시야의 좌우를 가르는 먼 바다 위 작은 통통배의 움직임이 내 눈을 심심하지 않게 해준다.
텀블러에 담아온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가방에서 누런색 종이봉투에 담아온 빵을 꺼낸다. 빵은 아직 따뜻했고, 그 빵은 내 손에 집혀서 주욱 찢어질 때마다 부끄러운 듯 하다가는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커피 향과 수수한 듯 기교가 없는 빵의 부드러운 촉감은 햇빛과 파도 그리고 작은 구름 몇 조각과 잘 어울린다.
노트를 폈다. 종이는 약간 두껍고 단단하다. 그리고 연필을 꺼낸다. 연필 끝은 뭉뚝하지만 연필심이 두꺼워서 종이를 세게 누르지 않아도 쉽게 그림자를 그릴 수 있다.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린다. 만약 갈매기가 더 보고 싶으면 더 그려 넣어도 된다. 아무에게도 보여줄 필요가 없이 내 마음대로, 잘 그리지 않아도 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그려지는 동안 연필과 종이가 만나서 서로 속삭이는 사각사각 소리를 듣기 위해서 그리는, 오직 나를 위한 나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답답할 땐 마음속으로 이런 상상을 한다. 이렇게 글을 쓰거나 읽는 것만으로도 잠시 바다 위 언덕에 있는 작은 집에 앉아서 그림을 한편 그리고 온 기분이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보면 모든 사물들의 본질을 느낄 수 없게 된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일어나고
돈을 벌기 위해서 밥먹고
돈을 벌기 위해서 만나고
돈을 벌기 위해서 휴식한다.
모든 목적과 방법이 돈을 위해서 합치되는 순간 소리는 소음이 되고, 향기는 냄새가 되어 버린다. 여러 가지를 보고, 듣고, 맛볼 수 있는 내 오감은 오직 불편함이라는 단편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불행히 회사에 모인 우리들 모두 돈을 벌기 위해서 만났고, 그래서 우리 모두는 각자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불편하다. 당신 뿐 아니라 당신 주위의 모두가 비슷하게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
지금 글을 쓰고 읽고 있는 나와 우리 모두는 사실 불편하고 힘들다. 새삼스럽게 알고 있었던 불편함이 다가올 때 내가 느끼고 싶은 감정이나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상상하면서 마치 눈 앞에 보고 있는 것처럼 글로 쓰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 나아진다. 시인 ‘박준’이 표현했듯이 이렇게 글을 쓴다고 달라질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느낄 수 있다면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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