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돌이를 향한 乙순이의 짝사랑

작은 연못에 살고 있는 갑돌이와 을순이의 이야기

by 조훈희

"갑질이 너무 심해요. 내가 왜 회사를 다니는지 자존감도 없고, 화는 나는데 울고 싶어요."


오늘 한 후배 직원이 울먹이며 말했다. 심한 모욕감에 힘들어하던 그 후배는 마치 주인도 잃어버린 채, 밥도 굶었는데 비까지 맞은 강아지 마냥 떨고 있었다.


사람이 두 명 모이면 갑이 있고, 그리고 을이 있다.

사람이 세 명 이상 모이면 갑이 있고, 을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갑의 편을 드는 또 다른 을이 있다.


예로부터 머슴 잡는 건 마름이라고 했다. 갑질 문제도 대부분 진짜 갑 보다 갑인 척하는 을에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주로 거래처, 고객님, 클라이언트, 관리자, 임원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아랫사람들을 멍석으로 말아서 두들겨 패는 놀이인 멍석말이를 즐긴다. 이런 충실한 마름 덕분에 양반은 온화하고 착한이가 되고, 머슴은 마름을 미워하는 반면 가끔 호의를 던져주는 양반을 칭찬하기까지 한다.


우리는 회사에서 부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을 향해 ‘갑질한다.’ 고 말한다. 그런데 따져보면 갑질을 하는 그 사람도 진짜 오너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클레임을 거는 고객님들도 반려가 주특기인 관리자들도 갑인 줄 착각을 하고 있지만 모두가 을이다. 더 상세히 표현하자면 갑인 척 하는 을이다. 그들이 사실 갑이 아니라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가?


가끔 직접 생산수단을 소유하거나 노동법을 적당히 무시하더라도, 나를 직접 해고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진짜 ‘갑’님들도 계신다. 오너회사의 회장님이나 주식회사의 대주주 등이 그런 분들이시다. 다행히 그러한 분들의 특징은 자주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나 역시 그분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조용히 숨어 지내는 방법으로 내 삶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들 역시 평생의 모든 순간을 갑으로 살 순 없다. 쉬운 예로 배가 아픈데 화장실이 없거나, 외딴 시골마을에서 겨우 화장실을 찾아서 운 좋게 들어갔다가도 휴지가 없으면 그 누구도 을이 될 수 밖에 없다. 갑질을 하는 사람도 속으로는 본인도 언젠가는 ‘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현재의 갑인 시기에 맞춰 갑인 척 갑질을 하나보다.


결국 직장이든 사회든 영원한 갑도 을도 없는 갑갑한 작은 연못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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