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는 아빠와 별일 없는 우리 집

아버지가 항상 별일 없이 사셨던 이유

by 조훈희

"아빠는 요즘 별 일 없죠? 괜찮아요?"


곧 마흔이 되는 나는 아직도 철 없이 아빠라고 부르면서 퇴근길에 전화를 드렸다.

"아빠가 뭐가 걱정이냐. 난 별일 없다. 애들은 잘 있지?"

일흔이 넘으신 아버지는 철 없는 아들의 물음에 매일 별일 없다는 똑같은 대답을 하셨다.


1998년 IMF 시절 아버지 회사의 부도 소식이 뉴스에서 나오던 그 날도 아버지는 오늘과 똑같은 대답을 하셨다. 그러시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빠는 별일 없어 걱정하지 마. 여기 아니더라도 아빠 오라고 하는 데 많어"

뉴스에서는 매일 노숙자에 대해 다뤘고, 나는 혹시 우리 집도 갑자기 길에 나앉을까 두려웠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곧 일자리를 구하셨고, 그렇게 우리 집은 별일 없이 어려운 시절을 잘 이겨냈다.


요즘 퇴근을 하면 유치원생인 아들과 대화를 하는데 하루는 이런 대화를 했다.

"아빠는 오늘 회사에서 너무 힘들었어. 혼나기도 했고, 말도 안 되는 일도 했어"

"아빠 회사에서 매일 힘들면 어떡해? 그러면 안돼. 안되는거야"

“그래도 돈을 벌려면 어쩔 수 없는 거야.”


어느 날은 또 이런 대화를 했다.

"아빠가 힘들고 늦게 들어와도, 회사에서 돈을 벌어야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사지"

"난 장난감이 많은 것보다 아빠랑 쉬면서 노는 것이 더 좋은데?"

“그래도 돈을 벌어야 우리 가족이 먹고 살지”


그러던 어느 날은 퇴근을 하자 아들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아빠 난 오늘 유치원에서 힘들었어. 활동놀이도 피곤했고, 블럭놀이도 힘들었어"

"우리 아들이 많이 힘들었구나"

"그런데 유치원은 힘들어도 돈을 안줘. 그래도 아빠는 회사에서 힘들면 돈을 주는데"


그렇게 말하고 속상해하는 아들에게 무슨 대답을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가 무언가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뿐 이었다. 유치원생인 아들이 철없는 아빠에게 알려준 건 아빠가 알려주는 삶과 세상이 아들의 삶과 세상에 그대로 반영 된다는 것이었다.


‘돈 버느라 힘들어’

‘돈 때문에 힘들어’

라고 내가 스스로 불평하는 순간 내 아이들도 ‘돈이 없어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내 아버지는 항상 아무렇지 않게 매일 별일 없이 괜찮으셨나 보다. 아버지는 정말 힘든 일 없이 항상 별일 없이 괜찮으신 줄 알았다.


아버지가 항상 별일 없이 괜찮길 바라셨던 것은 철없는 아들과 우리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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