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배사를 읊는 풍류시인

어서 와, 회식 시간에 삼행시는 처음이지?

by 조훈희

"오랜만에 하는 회식인데 누가 건배사 한번 해봐"


오늘 회식은 시끄러운 삼겹살집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유난히 우리 테이블은 조용했고, 지글지글 익는 고기의 소리만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회식은 분명 지난주에도 한 것 같은데 팀장님의 오랜만이라는 표현은 모두의 마음을 힘들게 했다. 우리 모두의 앞에 놓인 소주잔에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공감대와 불만 그리고 소주가 가득 차 있었다.


회식 시간에 시간을 빨리 보내기 위해서는 '회식 싫어' 혹은 ‘집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만 하기보다는 평소에 하지 않았던 아예 쓸데없는 생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워야 한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는 시간이 잘 안 가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다른 상황을 만들어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먼저 오늘 회식자리에서 나에게 먼저 건배사를 권할 것 같은 상사의 이름 석자를 계속 곱씹으며 그분을 바라본다. 다른 직원들이 한 손에 술잔을 들고 땅바닥을 보거나 테이블 가운데의 안주 혹은 벽에 걸린 메뉴를 볼 때 난 그분의 이름 석자만 생각하고, 그 분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시상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 석자로 조용히 삼행시를 읊어보자


삼행시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첫 글자의 부담을 더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름이 ‘조 오너’라고 하면, 첫 글자는 먼저 아무 단오나 뱉어놓고, 그에 맞춰서 배경 문장을 완성시킨다. 특히 첫 단어는 그분의 성이기 때문에 첫 문장은 그분의 이름을 포함해서 최대한 추켜 세워주면서 시작한다. 삼행시를 할 수 있게 해 주신 그분께 감사한 마음을 한껏 담아서 표현해야 한다.


조! 조 대표님께서 마련해주신 회식자리에서 이렇게 삼행시를 읊을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이름으로 삼행시를 완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두 번째 글자다. 이름의 두 번째 글자는 특히나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어려운 글자가 특히나 많다. 이럴 때는 그에 맞는 단어 자체가 아예 생각이 안 나는 경우가 많으니 나만의 비장의 카드를 공개한다.

두 번째 글자에 잘 맞는 두 번째 구절이 없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 다음 구절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신박하다는 표현을 들을 수 있으며, 나아가 세 번째 구절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벌 수 있다.


오! 오로 시작하는 단어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제 마음속에서 생각나는 이것 하나만은 꼭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삼행시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마지막 구절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구절에서 벌어놓은 시간과 기대감을 활용해서 멋지게 마무리한다. 마지막 구절의 목표는 경애하는 최고 영도자 동지를 열렬히 친애하며, 우리 모두가 단합이 될 수 있는 구절이어야 한다.

말도 안 돼서 손발이 오그라들고, 얼굴이 화끈거릴 때에는 두 눈을 꼭 감고, 어린 시절 웅변학원에서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치듯이 양팔을 하늘 높이 벌리고 크게 소리치면 더욱 극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용기가 없으면 눈을 아예 감아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야 마지막 문장에서 한 마리의 용이 구름을 뚫고 하늘 높이 승천하듯 상사의 광대와 입꼬리가 불을 뿜으며 승천할 것이다.


너! 너와 나 그리고 평생을 함께 할 사랑하는 대표님과 우리 팀이여! 영원 하라!


이렇게 가장 높은 분의 삼행시를 먼저 뿜어주고, 그 이하의 직급부터 한 명 한 명의 시상을 떠올리면 생각보다 시간이 무척 빨리 간다. 그리고 ‘여기 있는 너희들 다 싫어’가 아닌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큰 거부감 없이 평소에 미워했던 상사와 눈을 마주치고, 하염없이 지긋이 바라볼 수 있다.

술자리의 시간도 빨리 지나가고, 상사의 마음까지 얻으니 이것이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기, 일석이조, 일거양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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