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의 아키텍처

by 김경훈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영토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주하는 유목민과 같다. 피씨 통신의 파란 화면에서 다음 카페로, 이글루스에서 페이스북으로, 그리고 인스타그램과 브런치로. 사람들은 더 재미있는 곳, 더 돈이 되는 곳, 혹은 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을 찾아 짐을 싼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에게 플랫폼의 이주란 취향이나 자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다. 아무리 화려하고 핫한 건축물이라도, 휠체어가 들어갈 경사로가 없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블록이 없다면 그곳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것은 언젠가 망할지도 모르는 플랫폼이라는 버스 안에서, 내리지 못하고 버티고 있는 어느 장르소설 작가의 글을 읽으며, 환승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씁쓸한 현실을 깨달은 한 시각장애인 연구원의 덤덤한 기록이다.



마봉 드 포레의 급행버스


거실 의자에 앉아 아이폰의 보이스오버 기능을 켠 채 브런치 앱을 탐색하던 김경훈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번졌다.


오랜만에 마봉 드 포레 작가의 새 글이 올라와 있었다. 피씨 통신 시절부터 이글루스를 거쳐 브런치에 정착한 그 냉소적이고 유쾌한 작가는 지금 자신이 에세이 플랫폼에서 장르소설을 쓰며 버티고 있는 현실을 한탄하고 있었다.


아저씨 저 내려요! 아 안돼 이거 급행이야 종점까지 가야 돼. 인생은 내리고 싶을 때 내리는 것이 아니다.


김경훈은 소리 내어 웃었다.

보보, 이리 와서 이것 좀 들어봐. 마봉 작가님 글인데 진짜 명문이야. 자기가 잘못 탄 버스에서 곤조 부리느라 못 내리고 있대.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던 보보가 다가왔다.

그 작가님 또 우울 모드야? 근데 맞는 말이긴 해. 브런치도 영원하진 않겠지. 유행은 변하니까. 자기야, 마봉 작가님 짐 싸서 딴 데로 이사 가면 어떡할 거야? 당신 그 작가님 글 읽는 게 유일한 낙이잖아.


당연히 따라가야지. 짐 싸서 쫄래쫄래 쫓아갈 거야. 김경훈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 끝은 미세하게 흐려졌다. 과연 내가 마음대로 쫓아갈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유혹과 에디터의 장벽


최근 김경훈에게도 환승의 유혹이 있었다.

구글 블로거나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해 보라는 주변의 권유 때문이었다. 글을 쓰면서 애드센스 같은 광고를 붙이면 쏠쏠하게 용돈벌이를 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보보 역시 탱고 간식값이라도 벌어보라며 은근히 부추겼다.


하지만 그 달콤한 유혹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 처참하게 박살 났다.


김경훈의 글쓰기 방식은 확고하다. 먼저 윈도우 기본 프로그램인 메모장을 연다. 시각적 군더더기 없이 오직 텍스트와 보이스오버 소리에만 집중하여 초고를 쓴다. 그리고 그 글을 복사해서 플랫폼의 글쓰기 에디터에 붙여넣기 한 뒤, 줄 바꿈과 문단 띄어쓰기를 정리한다. 독자들의 시각적인 가독성도 중요하지만, 스크린리더가 문단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읽어주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그에게는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이버와 구글의 에디터는 시각장애인에게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었다.

메모장에 공들여 쓴 글을 복사해 붙여넣는 순간, 스크린리더는 길을 잃었다. 모든 문단이 하나로 뭉개져 버렸다. 엔터키를 수십 번 눌러도, HTML 모드로 들어가 비알 태그를 욱여넣어 봐도 에디터는 꿈쩍하지 않았다. 눈으로 볼 때는 화려하고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스마트 에디터였지만, 시각장애인의 보조기기 앞에서는 철저하게 폐쇄적인 불통의 시스템이었다.



군더더기 없음의 미학


결국 김경훈은 수익 창출의 꿈을 고이 접고 다시 브런치로 돌아왔다.

마봉 작가는 브런치의 유아이 유엑스가 군더더기가 없어서 글쓰기는 편하지만, 가끔 너무 지나치게 없다고 툴툴거렸다.


하지만 김경훈에게 그 군더더기 없음은 구원이었다.

이미지나 복잡한 위젯, 팝업창 없이 오직 텍스트에만 집중할 수 있게 설계된 브런치의 미니멀리즘은 스크린리더가 텍스트를 논리적인 순서대로 읽어 내려가는 데 완벽한 환경을 제공했다. 메모장에서 복사한 글을 붙여넣고 엔터를 치면, 스크린리더는 정확하게 문단을 나누어 읽어주었다.


세상이 말하는 혁신적이고 시각적인 에디터들은 나를 뱉어냈지만, 이 고요하고 심심한 에디터만이 나를 품어주었다. 김경훈이 중얼거렸다.


발치에서 낮잠을 자던 탱고가 기지개를 켜며 김경훈의 다리에 턱을 올렸다. 마치 돈 못 벌어도 괜찮으니 간식은 책임지라는 듯한 제스처였다.



고속도로 위의 두 사람


마봉 작가님, 저도 버스 잘못 탄 것 같습니다.

김경훈은 머릿속으로 마봉 드 포레에게 보낼 답장을 적어 내려갔다.


작가님은 장르소설 쓰느라 번지수를 잘못 찾으셨고, 저는 돈 좀 벌어보려다가 장애물에 막혀서 도로 이 버스로 기어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밖은 고속도로고, 달리는 버스에서 뛰어내릴 용기도 없고, 무엇보다 다른 버스들은 제 휠체어, 아니 제 스크린리더를 태워줄 승차 슬라이드가 없는걸요.


김경훈은 빈 화면을 응시했다.

언젠가 이 플랫폼이 텅 비어버리고 작가님이 다른 곳으로 떠나신다면, 부디 스크린리더가 잘 읽히는 곳으로 가주시길 빕니다. 그래야 제가 눈치 없이 쫓아가서 작가님 글에 하트라도 누를 수 있으니까요. 그때까지는 저도 이 급행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곤조 한번 부려보겠습니다.



접근성의 아키텍처


제목, 접근성의 아키텍처, 혹은 내릴 수 없는 버스.

누군가에게 플랫폼의 선택은 취향이나 수익의 문제지만, 소수자에게는 진입 가능 여부의 문제다.

화려한 기능과 시각적 요소로 무장한 에디터들은 비장애인에게는 혁신이지만, 나에게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다. 브런치의 심심한 유아이는 의도치 않게 나에게 완벽한 유니버설 디자인이 되었다.

결론, 마봉 작가는 종점까지 가야 하는 급행버스에 갇혔다며 절규했지만, 나는 이 버스에 승차 거부를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안도한다. 불편하더라도, 목적지가 다르더라도, 나를 태워주는 버스가 있다는 사실. 그것이 때로는 슬프고도 다행스러운 현실이다.

내일은 수익 창출 못 한 기념으로 탱고에게 무염 황태라도 끓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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