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걱정할 때가 아니라 나는 어쩌면 좋지?
플랫폼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
나는 처음에 PC 통신부터 시작했거든.
거기는 그때 아주 PC 통신 한참 피크 칠 때였어.
매일 밤마다 대화방이 열리고 난리가 났었지. 모르는 사람들하고 수다만 떠는 게 뭐 그리 재밌었나 몰라.
그땐 이상한 사람들도 별로 없었어 뭔가 개인정보를 취해서 사람 후려먹으려는 그런 인간들 보다는
주로 대학생, 직장인, 가끔은 '우리 엄마 아이딘데요...' 하면서 들어오는 중고딩도 섞여 있었어.
거기에서 나는 처음에 창작 게시판에서 글을 올리기 시작했어. 그때만 해도 제2의 이영도 꿈나무들이 무럭무럭 먼치킨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 올리고 그랬어. 그때만 해도 창작게시판은 다 판타지였다.
PC 통신 시절 끝나가니 다음 카페라는 게 있다고 우르르 다 거기로 가더라.
통신은 접속자 자체가 줄어들고 다 인터넷 브라우저 켜지 PC 통신 앱 실행 안 하더라고.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게 보이더니 결국 몇 년 못 가고 다 망하더라.
전화선 하나 물고 PC 통신 밤새 하느라 부모님한테 등짝 맞던 시절도 다 갔지. 이제는 통신이 전화가 아니었거든.
다음 카페도 금방 사람 빠지더니 이젠 다 같이 블로그를 한다네?
이글루스에 사람 한참 많을 때는 와글와글했어. 약간 브런치보다 더 젊고 활기 있고 문화예술 얘기, 인문과학 얘기도 많았고 주로 자기 덕질 얘기로 정신이 없었어 따라서 읽을 건 진짜 많았지. 솔직히 지금 브런치보다 주제 더 다양했던 것 같음.
그러다가 티스토리나 네이버 블로그(자격증 정보 보고 가세요~ 타령)는 아직 살아있는데 이글루스는 폐쇄적인 환경이었던 게 문제였는지 회사가 여러 번 넘어가더니 망하더라고.
10년 넘게 이글루스에 쓴 글 백업받아갖고 갈 곳 없어 헤매다가
페이스북도 해보고 인스타도 해보고
유목민 생활 하다가 브런치에 들어왔네.
페이스북도 처음에는 진짜 열심히 글 올렸어. 인스타는 꼭 사진이 필요한 게 좀 불만이긴 한데 그래도 아는 사람들이 다 거기 있다 보니 남의 사진 보는 재미도 있고 해서 페북이랑 같이 굴리면서 꽤 오래 했고
지금은 페북은 파리 날리고, 인스타는 뭐 아직은 건재하긴 한데 어찌 될지 모르지 뭐 거기도.
페북은 옛날 글 찾으려면 진짜 인내심 시험이고 그래서 이젠 과거 글 뒤지기도 싫어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브런치도 언젠가 망해.
브런치는 글쓰기 플랫폼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망할 때 백업툴이나 오픈 API 정도는 제공해 주겠지.
데이터센터 관리 잘해서 데이터 날려먹을 일은 없을 거라 믿고
나 초고 없이 바로 여기다 쓴 글 많아서, 백업툴 제공 안 해주면 나 망한다?
오래 남는 플랫폼은... 진짜 카카오나 인스타같이 사용자가 전국민일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아서 거기서 사진만 올리는 게 아니라 디엠도 주고받고 가게 물건도 거기서 구경하고 용도가 다양하고 끝없이 새로운 게 생겨야 하는 것 같아. 외부 유입도 끊이지 않아야 하고.
그래서 난 브런치가 걱정돼. 얘두 언젠가 사람이 요새 왜 뜸하지? 하다가 새로 생긴 곳에 가 보면 거기 다 있을 거야. 가면 다 만날걸?
물론 장르소설 작가인 나한테는 불친절한 플랫폼이긴 하지만
글쓰기는 편하고(군더더기가 없는 UI UX - 가끔 너무 지나치게 없...) 이상한 사람들은 어디나 있지만 여긴 글 쓰는 사람들 모인 곳이라 지식도 많고 책도 많이 읽고 예의 바르고 서로 친절해. 다 같은 작가니까.
물론 고통서사 전시장 같은 기분도 가끔 들지만
난 전시할 것도 없는 사람이라 공감한다고 하기에도 너무 거짓말 같고 그래서 그냥 읽고 마음 아프고 그런 다음 지나가.
아무튼 지금 나는 여기에 서식해.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브런치가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그 어느 플랫폼도 언젠가는 망해. 여기처럼 고인물에 투자 안하는 데는 어느 순간 순식간에 썰렁해지다가 텅 빈다. 사람 많을 땐 설마 그럴 일이 있을까 싶은데 진짜 그래.
결론은...
난 브런치에 제대로 와 있는 걸까?
에세이 쓰는 곳에 와서 장르소설 쓰잖아. 것두 디게 오래.
여기 아닌데 내가 너무 오래 와서 앉아있나?
꼭 버스 잘못 탄 거 알면서도 혹시 아는 데 지나가면 거기서 내려야지 하면서 끝까지 앉아있는 것 같아.
사실은 내릴 때가 이미 지났는데 내가 곤조 부리느라 그냥 버티고 있는지도 몰라.
근데 다른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몰라서 일단은 앉아 있어.
챗지피티한테 물어보면 다른 버스 타는 곳 알려줄 텐데. 이럴 때는 못 물어보겠어.
그래서 말인데... 나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할까?
일일이 백업 뜨기에는 글이 너무 많아졌어...
내가 맞는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진작 자리 접고 일어나서 환승해야 하는데 곤조 부리는 거 아닐까?
아저씨 저 내려요!
아 안돼 이거 급행이야 종점까지 가야 돼
아 아저씨! 저 잘못 탔다니까요!
아저씨 돌아본다.
"여기 고속도로야."
ㅅㅂ...
인생은 내리고 싶을 때 내리는 것이 아니다.(비장한 척)
김탱고 작가님도 버스 잘못 타심
https://brunch.co.kr/@hoonius/1014
아저씨 여기도 내린대요!
놉 안세워줘 못세워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