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테토스가 와이파이를 끊었을 때

스토아학파의 정보 다이어트

by 김경훈

알 권리라는 이름의 디지털 강박증


고대 로마의 노예 출신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이십일 세기에 환생했다면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마도 스마트폰의 데이터를 차단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소셜 미디어의 실시간 트렌드나 연예인의 스캔들을 모르면 마치 원시 부족에서 추방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불안해한다.

문헌정보학에서는 이를 정보 과부하 혹은 포모 증후군이라고 부르지만 철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타인의 시선에 목을 매는 자발적 노예 상태이다.

우리는 알고리즘이 정성스럽게 떠먹여 주는 쓸데없는 속보들을 꾸역꾸역 소화하느라 정작 내 삶을 돌아볼 뇌의 램 용량을 모조리 낭비하고 있다.

세상만사를 다 알아야 한다는 강박은 권력이 지워준 의무일 뿐 내 삶의 질을 단 일 밀리미터도 높여주지 않는다.



감각사진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의 전원을 완전히 끄고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손목을 쉴 새 없이 때리던 얕고 신경질적인 진동 소리가 멈추자 공간에는 묵직한 정적이 내려앉는다.

기계가 뿜어내던 뜨뜻미지근한 열기가 손바닥에서 서서히 식어갈 때 허공을 맴돌던 들뜬 공기의 밀도는 이내 차분하고 빽빽하게 가라앉아 어깨를 묵직하게 누른다.

정보의 소음이 사라진 자리는 텅 빈 것이 아니라 밀도 높은 침묵의 무게로 꽉 채워진다.



바보가 될 용기와 진정한 리터러시


에픽테토스는 발전하고자 한다면 외적인 문제에 무감각해지고 기꺼이 어리석은 사람이 되라고 권한다.

누가 어제 터진 땡땡땡 스캔들 봤어 라고 물을 때 몰라 내 알 바 아니야 라고 답할 수 있는 뻔뻔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정보학의 관점에서 진정한 정보 리터러시는 무엇을 찾을 것인가를 넘어 무엇을 보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이른바 자발적 정보 회피 기술이다.

쏟아지는 쓰레기 데이터 속에서 옥석을 가리는 것을 넘어 아예 쓰레기장 근처에는 가지 않는 고도의 지적 게으름이야말로 이 과잉 연결 사회를 살아가는 가장 우아한 생존 전략이다.



로그아웃의 철학


누군가 나를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비웃는다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 된다.

에픽테토스의 말처럼 남들이 나를 중요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기대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되기 때문이다.

일어나지도 않을 잠재적 위협에 분노하느라 피를 말리는 대신 그 에너지를 아껴 저녁밥을 맛있게 씹어 삼키는 편이 훨씬 이득이다.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

세상의 속보에 무감각해지는 순간 비로소 내 내면의 속보가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똑똑한 바보가 되기 위해 지금 당장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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