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테토스가 유튜브 알고리즘을 만났을 때

뇌의 무단 침입을 허락한 현대인들

by 김경훈

지하철의 어깨빵과 뇌 속의 무단 침입


출근길 지옥철에서 낯선 사람이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면 우리는 불쾌감을 감추지 못한다.

누군가 내 지갑을 허락 없이 열어본다면 당장 경찰에 신고할 것이다.

우리는 육체와 물리적 재산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보안 요원처럼 군다.

그런데 우리의 뇌와 마음은 어떠한가

우리는 문을 활짝 열어두고 어서 오십시오 하며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를 맞이한다.

고대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누군가 당신의 몸을 길가는 사람에게 넘긴다면 분노하면서 어째서 마음은 그렇게 쉽게 넘겨주느냐고 일갈했다.

현대 정보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뇌의 관리자 권한을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에게 무료로 양도한 셈이다



도둑맞은 집중력과 텅 빈 지갑


우리의 신체는 감옥에 갇힐 수도 있고 궂은 날씨에 발이 묶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온전히 내 소유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처참하다.

새벽 두 시 내일 출근을 위해 자야 한다는 육체의 절규를 가볍게 무시하고 우리는 굳이 알 필요 없는 이름 모를 유튜버의 라면 먹방과 남의 집 강아지가 꼬리 치는 영상을 보며 소중한 인지 에너지를 낭비한다.

타인의 말 한마디나 악플 하나에 내 하루의 기분을 몽땅 외주 주기도 한다.

내 집 안방에 모르는 사람을 들이지 않으면서 내 머릿속 서재에는 온갖 잡념과 쓰레기 정보가 춤을 추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정보 보안을 외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인지적 보안은 뻥 뚫려 있다.

참으로 뼈 때리는 비효율의 극치이다.



내 마음의 방화벽 설치하기


에픽테토스가 이십일 세기에 살았다면 가장 먼저 소셜 미디어 앱부터 삭제하고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해지했을 것이다.

무수한 정보와 타인의 시선이 내 마음의 평정을 교란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내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것보다 수치스러운 일이다.

정보학의 관점에서 제안하건대 이제는 데이터 다이어트를 넘어 마음의 방화벽을 세워야 할 때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자극적인 분노와 스캔들 대신 내 마음의 서재에 진짜 필요한 철학 한 권을 꽂아두자.

내 마음의 주인이 틱톡이나 엑스가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이 되도록 말이다.



내 뇌의 와이파이 비밀번호 변경하기


우리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타인의 시선에 조종당하며 살아가는지 깨닫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진다.

오늘부터라도 내 마음의 서재 출입증을 아무에게나 발급하지 말자.

낯선 이가 내 몸을 만지는 것을 거부하듯, 낯선 정보가 내 마음을 함부로 주무르지 못하게 차단하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그것이 이 과잉 연결의 시대에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아남는 가장 지적이고 위트 있는 반항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에픽테토스가 와이파이를 끊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