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철학에서 정보문화철학으로

프렌드십의 무게를 데이터로 달아본다면

by 김경훈

최근 정보문화연구 강의를 들으며 브리글과 미첨이 발표한 이천구년 논문을 접하게 되었다. 논문의 제목은 정보철학에서 정보문화철학으로이다. 이 논문은 현대 세계가 겪고 있는 거대한 문화적 변화의 중심에 정보와 정보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고 선언하며 상당히 흥미로운 학술적 도발을 감행한다.


우리는 흔히 스마트폰 배터리가 십 퍼센트 아래로 떨어질 때 극심한 불안을 느낀다. 브리글과 미첨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것은 단순한 전력 부족에 대한 걱정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정보망에서 로그아웃되는 것 즉 현대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에서 추방당할지도 모른다는 존재론적 공포에 가깝다. 저자들은 이처럼 정보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우리가 가치를 창출하고 삶의 방식을 형성하는 문화 그 자체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문화로서의 정보라는 개념이다.


이 논문에서 가장 학술적이면서도 미소를 자아내는 대목은 정보문화를 탐구하기 위한 철학적 실험실로 프렌드십이라는 개념을 제안한 부분이다. 철학자들이 딱딱한 컴퓨터 알고리즘 대신 사람 사이의 프렌드십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 매우 위트 있게 다가온다.


과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프렌드십이 얼굴을 마주하고 덕을 교류하는 것이었다면 현대의 정보문화 속 프렌드십은 사뭇 다른 양상을 띤다. 메신저에서 숫자 일이 사라지는 속도 내 소셜미디어 게시물에 눌린 좋아요의 개수 그리고 나를 팔로우하는 사람과 내가 팔로우하는 사람의 비율 같은 것들이 프렌드십의 깊이를 증명하는 새로운 지표가 되었다. 브리글과 미첨의 제안을 빌려보자면 온라인에서 친구를 차단하는 행위는 단순한 버튼 클릭이 아니라 철학적 의미에서 한 인간과의 문화적 단절을 선고하는 무거운 실존적 결단인 셈이다.


결국 정보문화연구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분석하는 공학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정보라는 새로운 공기 속에서 호흡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관계와 일상을 해부하는 철학이자 인류학이다. 이 논문은 정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주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남긴다. 과연 우리의 현대적 프렌드십은 몇 메가바이트의 무게를 지니고 있을까.



참고문헌

Briggle, A., & Mitcham, C. (2009). From the philosophy of information to the philosophy of information culture. The Information Society, 25(3), 169-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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