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카와 아담 스미스가 알려주는 양심 지킴이 모시기
혼자 있을 때 우리는 짐승이 된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주워 먹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삼 초 안에 주우면 세균도 모른다는 기적의 논리를 펼치면서 말이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날 밤 몰래 뜯은 컵라면 앞에서도 우리는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이런 우리의 얄팍한 민낯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그는 도덕에 관한 서한에서, 우리가 죄를 짓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순간에 그저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잘못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세네카는 당대 로마 최고의 도덕적 롤모델이었던 카토를 마음속에 품으라고 조언한다.
깐깐하고 엄격한 카토가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감히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주워 먹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감각사진]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소파에 편안하게 늘어져 있던 순간, 등 뒤에서 불쑥 인기척이 느껴질 때의 서늘한 감각을 떠올려 본다.
척추를 타고 오싹하게 흘러내리는 식은땀 한 방울과 함께 느슨하게 풀려 있던 뒷목의 근육이 일순간 빳빳하게 굳어진다.
황급히 자세를 고쳐 앉으며 허리를 꼿꼿하게 세울 때, 굳어버린 표정 위로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부끄러움의 온도가 선명하다.
내밀한 민낯을 들켜버린 순간의 이 짜릿하고 서늘한 긴장감은 마치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아담 스미스의 무심한 관찰자.
세네카의 카토가 고대의 버전이라면,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는 이를 무심한 관찰자라는 근대적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아담 스미스는 우리 마음속에 나를 평가하는 제삼자의 시선이 있다고 보았다.
이 관찰자는 내 편을 들어주는 따뜻한 친구가 아니다.
내가 유튜브 쇼츠를 세 시간째 넘기며 이것도 사회 탐구의 일환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할 때, 그는 아무 표정 없이 묵묵히 나를 쳐다보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만든다.
정보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무심한 관찰자는 내 삶의 모든 로그 데이터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평가하는 완벽한 내면의 감시 알고리즘인 셈이다.
골목길의 감시 카메라에는 사각지대가 존재하지만, 내 마음속 서재에 앉아있는 이 관찰자의 눈은 절대 피할 수 없다.
나도 누군가의 알고리즘이 되기를.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그럴듯한 평판을 유지하려 애쓴다.
하지만 정작 내 영혼의 가장 조용한 방에 앉아있는 무심한 관찰자의 시선 앞에서는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
정보의 바다에서 상업적 알고리즘이 끊임없이 우리의 게으른 욕망을 부추길 때, 마음속에 깐깐한 철학자 한 명쯤은 스승으로 모셔두는 것이 좋다.
당장 오늘 밤 야식을 시키려 할 때 카토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배달 앱을 조용히 끄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면의 관찰자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간다면, 언젠가 우리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든든한 카토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