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후각

잔고를 맡는 경비원

by 김경훈

서울 강남구 한복판에 자리 잡은 대한은행 브이아이피 전용 지점의 회전문은 무겁고 육중했다. 투명한 통유리 너머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이 대리석 바닥에 반사되어 눈을 찔렀다. 경비원 구는 빳빳하게 풀을 먹인 남색 제복의 깃을 매만지며 정자세로 섰다. 구두약으로 광을 낸 그의 낡은 구두코 위로 형광등 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은행 안의 공기는 언제나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며 서늘했다. 하지만 구의 코끝을 맴도는 공기는 결코 무균 상태가 아니었다. 그의 콧방울이 미세하게 벌름거렸다. 구의 초능력은 이 하향 평준화된 세계에서도 가장 기괴하고 비참한 축에 속했다. 그는 사람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통장 잔고의 냄새를 맡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냄새였다. 구의 후각 신경은 숫자의 크기를 냄새의 분자로 변환하여 뇌에 꽂아 넣었다. 잔고가 영원에 수렴할수록 냄새는 습하고 무거워졌다. 곰팡이가 잔뜩 핀 지하 단칸방의 벽지 냄새나 비 오는 날 젖은 박스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넘어가 빚이 쌓이기 시작하면 냄새는 폭력적으로 변했다. 녹슨 철근에서 나는 비릿한 쇳내와 썩은 생선 내장이 뒤섞인 악취가 진동했다. 반대로 통장에 동그라미가 늘어날수록 냄새는 우아해졌다. 수천만 원 단위에서는 빳빳한 새 지폐의 잉크 냄새와 갓 세탁한 린넨 셔츠의 향기가 났다. 수십억 단위의 자산가에게서는 코끝을 마비시킬 정도로 농밀하고 묵직한 난초 향이나 값비싼 사향노루의 머스크 향이 뿜어져 나왔다. 구는 매일같이 그 극단적인 냄새의 틈바구니에 서서 문을 열고 닫았다.


오전 열 시 은행 문이 열리자마자 평범한 차림의 노인이 들어왔다. 노인의 굽은 등과 낡은 등산복 바지 위로 짙은 회색빛의 냄새가 피어올랐다. 오래된 동전의 녹슨 냄새와 젖은 신문지 냄새였다. 노인은 창구에 앉아 대출 연장 서류를 작성하며 연신 마른기침을 했다. 구는 묵묵히 생수통에서 물을 한 잔 떠서 노인의 옆에 놓아주었다. 노인이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그의 깊게 파인 주름 사이로 피곤한 가난의 냄새가 훅 끼쳐왔다. 구는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자신의 제복 안쪽에서도 그와 다를 바 없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잔고를 맡는 능력을 가졌지만 정작 자신의 통장에는 다음 달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 처지였다.


오후 한 시 최고급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은행 앞 도로에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운전기사가 재빠르게 내려 뒷좌석 문을 열었다. 맞춤 정장을 입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 단정하게 넘긴 오십 대 남자가 내렸다. 그의 손목에서는 햇빛을 받은 금장 시계가 번쩍거렸다. 지점장이 직접 회전문 앞까지 뛰어나와 허리를 구십 도로 굽히며 남자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점장의 얼굴에는 비굴할 정도로 환한 미소가 번져 있었고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구도 매뉴얼에 따라 각 잡힌 거수경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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