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빈털터리 기사
대륙의 중심 상업 도시 엘도리아는 겉보기에는 황금으로 칠해진 눈부신 낙원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썩은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는 탐욕의 소굴이다. 이곳에서 기사도란 그저 귀족들이 평민들의 돈을 뜯어내기 위해 둘러대는 그럴듯한 포장지에 불과했다. 엘도리아의 하급 기사 루시안은 이 도시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청년이었다. 그의 갑옷은 매일 기름칠을 하여 은빛으로 번쩍거렸지만 그의 지갑 속에는 먼지와 빚쟁이 드워프들에게 쫓기는 빚 문서만이 가득했다. 다음 달 엘도리아 대운동장에서 열리는 대륙 최고의 무술 토너먼트는 그에게 명예를 증명할 장소가 아니라 자신의 몸값을 부풀려 돈 많은 귀족 미망인이나 멍청한 대지주에게 스폰서를 따내기 위한 철저한 쇼 비즈니스 무대였다.
루시안이 이 사기극 같은 토너먼트에서 귀족들의 눈먼 돈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다른 경쟁자들의 기죽일 만큼 화려하고 압도적인 탈것이 필요했다. 평범한 똥말을 타고 나가면 아무도 그에게 돈을 걸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가 노리는 것은 전설 속의 성스러운 마수 유니콘이었다. 진짜 유니콘은 순결한 처녀만 탈 수 있다느니 고결한 영혼을 가진 자만 허락한다느니 하는 헛소리가 돌았지만 루시안은 돈만 많이 주면 마수 시장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에게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루시안은 며칠 동안 도시 뒷골목의 어둠의 장터를 배회하며 수상한 정보들을 수집했다. 그러다 후미진 술집 화장실 벽에 조잡하게 붙어 있는 전단지 하나를 발견했다. 장물 처리 및 급전 필요 최고급 순백의 유니콘 시세의 삼 분의 일 가격에 급처분 장소는 안개 숲 외곽 바르바스 마구간. 정상적인 기사라면 훔친 장물이라는 사실에 분노하며 치안대에 신고했겠지만 루시안은 오히려 장물이기에 가격이 싸다며 쾌재를 불렀다. 그는 도박장 주인을 협박하여 뜯어낸 쌈짓돈을 품에 안고 당장 안개 숲으로 달려갔다.
사기꾼과 사기꾼의 은밀한 거래
안개 숲은 이름 그대로 음산하고 퀴퀴한 습기로 가득 찬 곳이었다. 루시안이 도착한 마구간 앞에는 돼지처럼 살이 찌고 몸에 맞지도 않는 비단옷을 억지로 껴입은 상인 바르바스가 교활한 미소를 흘리며 서 있었다. 바르바스는 루시안의 번쩍이는 갑옷을 보고는 돈 많은 호구 귀족이 왔다고 착각하여 허리를 굽실거렸다. 루시안 역시 자신이 엄청난 영지를 물려받은 대귀족의 자제인 척 거드름을 피우며 속으로 상인을 비웃었다.
바르바스는 마구간 가장 깊은 곳의 자물쇠를 열고 루시안을 안내했다. 그곳에는 참으로 눈부시게 하얀 생명체가 묶여 있었다. 이마에는 영롱하게 반짝이는 반투명한 뿔이 솟아 있었고 주변에는 묘하게 달콤한 향기가 감돌았다. 바르바스는 이 유니콘이 북부 대공의 마구간에서 은밀히 빼돌린 물건이라며 성품이 온순하고 기사의 품격을 올려줄 최고의 마수라고 이빨을 깠다. 루시안은 말의 엉덩이 쪽에 묻은 진흙 자국과 야생 마수 특유의 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을 눈치챘지만 시세의 삼 분의 일이라는 가격표 앞에서는 그 어떤 의심도 무의미했다. 루시안은 대충 훔친 백마에 마법을 좀 걸어놓았겠거니 생각하며 품속의 돈주머니를 바르바스에게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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