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아키텍처

by 김경훈

우리는 자립을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는 상태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 장애인에게 자립생활이란 물리적인 독고다이가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자유의 상태를 뜻한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자립의 첫걸음은 수용 시설이라는 닫힌 세계를 부수고 지역사회로 나오는 탈시설이다. 그러나 살아가던 도중 사고나 질병으로 갑자기 장애를 맞이한 중도장애인들의 궤적은 다르다. 그들은 시설이 아니라 병원에 갇힌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들의 지시에 순응하고, 회복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에 매달리는 환자가 된다.


문제는 의료적 재활이 끝난 다음이다. 망가진 신체가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을 때, 그들은 병원 문을 나서 지역사회라는 거친 정글로 돌아가야 한다. 환자에서 다시 시민으로 신분을 바꾸는 이 위태로운 경계선. 학자들은 이것을 전환재활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15살에 시력을 잃고 3년 동안 병상에 누워 환자라는 직업에 숨어 있었던 한 남자가 이제 막 휠체어에 앉아 세상 밖으로 나가기를 거부하는 또 다른 청년을 만나, 잔인하고도 명랑한 퇴원 통보를 날린 어느 소독약 냄새나는 봄날의 기록이다.



병원의 냄새, 혹은 유예된 삶


대구에 위치한 대형 재활병원 1층 로비.

김경훈은 병원 내 도서실의 시각장애인 정보 접근성 시스템을 점검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이곳의 공기는 바깥의 싱그러운 봄바람과는 달랐다. 알코올 냄새, 소독약 냄새, 그리고 고무 밑창이 복도 바닥을 마찰하며 내는 찌익거리는 소리. 그것은 삶과 죽음, 회복과 절망이 교차하는 특유의 무거운 공기였다.


탱고는 이 냄새를 몹시 싫어했다. 녀석은 평소보다 리드 줄을 바짝 당기며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어 했다.

알아, 탱고. 나도 여기 냄새 싫어. 15살 때 지겹게 맡았거든. 김경훈이 탱고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작게 속삭였다.


그때, 복도 한쪽의 재활 치료실에서 날카로운 금속 파열음과 함께 누군가의 고함이 들려왔다.

안 해! 이거 다 치우라고! 안 걷는다고!


무언가가 바닥에 나뒹구는 소리가 났다. 휠체어 바퀴가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물리치료사들의 당황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환자라는 이름의 피난처


김경훈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무슨 일입니까. 그가 조용히 물었다.


물리치료사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아, 민재 씨가 또 평행봉 연습을 하다가 주저앉았어요.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간다고 화를 내네요.


바닥에 주저앉아 씩씩거리고 있는 청년은 스물두 살의 이민재였다. 그는 반년 전 오토바이 사고로 척수 신경이 손상되어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누구야, 당신은. 이민재가 가시 돋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지나가던 시각장애인입니다만. 목소리가 하도 우렁차서 폐활량은 아주 정상인 것 같아 다행이네요. 김경훈이 평소의 짓궂은 톤으로 대꾸했다.


이민재가 코웃음을 쳤다.

놀리러 왔어요? 난 다리가 박살 났고, 당신은 눈이 박살 났네. 끼리끼리 위로라도 하려고요? 난 내 두 발로 걸어서 나가기 전까진 이 병원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갈 겁니다. 휠체어 타고 밖에 나가서 사람들 동정 어린 시선이나 받으라고요? 차라리 여기서 평생 환자로 사는 게 나아요.


김경훈은 그 분노의 질감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그것은 20년 전 자신의 입에서 나오던 목소리와 정확히 일치했다.

환자로 사는 거, 편하죠. 김경훈이 차가운 타일 바닥을 톡톡 치며 말했다.

병원에서는 아무도 당신한테 책임지라고 안 하니까요. 밥때 되면 밥 주고, 불쌍하게 여겨주고. 스스로 선택할 필요도 없고 세상과 부딪힐 일도 없죠. 환자라는 타이틀은 아주 훌륭한 방어막입니다. 탈원화, 그러니까 병원을 나서는 순간 당신은 장애를 가진 채로 스스로 돈도 벌어야 하고, 사람도 만나야 하고, 상처도 받아야 하니까. 그게 무서운 거 아닙니까.


이민재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당신이 내 마음을 알아? 내가 얼마나 달리고 싶은지 당신이 아냐고!


알다마다요. 김경훈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도 15살 때, 눈이 다시 보이기 전까진 절대 침대에서 안 내려간다고 3년을 버텼거든요. 기적이 일어날 줄 알았지. 근데 스포일러 하나 해줄까요. 기적은 안 일어납니다.



재활의 진짜 의미


마침 김경훈을 데리러 온 보보가 재활 치료실 문가에 섰다. 그녀는 상황을 대략 파악하고는 조용히 김경훈의 곁으로 다가왔다.


김경훈이 말을 이었다.

재활이라는 게 고장 난 몸을 예전으로 되돌리는 거라고 생각하죠? 틀렸습니다. 진짜 재활은 영원히 고장 난 이 몸뚱어리를 이끌고 어떻게 다시 세상이라는 정글로 돌아갈 것인가 그 삶의 방향을 다시 설계하는 겁니다. 그걸 전환재활이라고 부르죠. 병원에서 지역사회로, 환자에서 시민으로 환승하는 겁니다.


이민재가 중얼거렸다.

시민 같은 소리 하네. 휠체어 타면 갈 수 있는 식당도 반으로 줄어들고, 사람들은 날 불쌍한 짐덩어리로 볼 텐데.


그때 보보가 특유의 시크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맞아요. 세상은 턱 투성이고, 무례한 사람도 널렸죠. 근데 민재 씨, 병원 침대에 누워 있으면 오늘 점심 메뉴 고를 수 있어요? 영양사가 짜준 무미건조한 밥만 먹어야 하잖아요. 휠체어 타고 밖으로 나오면, 적어도 짬뽕을 먹을지 짜장면을 먹을지 내 맘대로 결정할 수 있어요.


보보는 이민재의 휠체어 손잡이를 툭 쳤다.

자립생활은 남의 도움 안 받고 혼자 사는 게 아니에요. 내 삶의 통제권을 내가 갖는 거죠. 이 남자 좀 보세요. 앞 안 보여서 나한테 손잡아 달라고 매달리고, 안내견한테 길 찾아달라고 조르지만, 자기 인생의 모든 중요한 결정은 다 자기가 해요. 꽤나 골치 아픈 시민이죠.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어요.



시민의 첫 선택


김경훈은 탱고의 리드 줄을 살짝 당겼다. 탱고가 이민재의 곁으로 다가가 녀석 특유의 젖은 코로 이민재의 늘어진 손등을 툭 쳤다. 위로의 표시였다.


오늘 날씨가 아주 좋습니다. 김경훈이 말했다.

병원 정원에 벚꽃이 피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나는 냄새로만 알지만. 우리 지금 거기서 커피 한잔할 건데, 같이 갈래요.


이민재는 자신의 다리와, 옆에 놓인 휠체어를 번갈아 보았다. 그에게 휠체어에 앉아 병원 밖 정원으로 나간다는 것은 걷기를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걷지 못하는 자신을 인정하고 세상과 마주하겠다는 첫 번째 선언이었다.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이민재가 바닥을 짚고 상체를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물리치료사가 황급히 다가가려 했지만, 이민재는 손을 저어 막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힘으로 휠체어 위로 몸을 옮겼다.


커피는 달달한 걸로 사주시는 겁니까. 이민재의 목소리는 아직 떨리고 있었지만, 아까의 분노는 사라져 있었다.


그럼요. 백수한테는 눈먼 연구원이 한턱냅니다. 대신 휠체어 밀어달라고는 하지 마세요. 나도 앞이 안 보여서 남 밀어줄 처지는 못 되니까. 알아서 굴리고 따라오십시오.


세 사람은 병원 로비를 지나 자동문 밖으로 나섰다. 소독약 냄새가 희미해지고, 봄날의 흙냄새와 꽃내음이 밀려왔다. 이민재의 휠체어 바퀴가 병원 문턱을 넘어 아스팔트 위로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한 명의 환자가 다시 지역사회의 시민으로 귀환하는 가장 위대하고도 평범한 소리였다.



제목, 전환의 아키텍처, 혹은 병원 문을 나서는 용기.

후천적 장애인에게 가장 무서운 감옥은 시설이 아니라 병원이다. 치료라는 명분 아래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유예받기 때문이다.

자립은 망가진 몸이 복구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망가진 채로 어떻게 다시 나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민재는 오늘 병원 문을 나섰다. 탈원화. 그것은 기능의 회복이 아니라 주체성의 회복이다. 그가 앞으로 굴려야 할 휠체어 바퀴는 험난하겠지만, 적어도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이제 의사가 아니라 그 자신이다.

결론, 인간은 보호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태어났다. 때로는 안전한 인큐베이터를 스스로 찢고 나오는 통증이 필요하다.

그나저나 결혼이 한 달 남았다. 턱시도를 입어도 배가 안 나오려면 야식을 끊어야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러운 내 삶의 전환재활이다. 보보가 닭발을 만들었다. 오늘은 그냥 실패한 시민으로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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