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의 아키텍처

The Architecture of the Standard

by 김경훈

우리는 인공지능이 교육의 구원자가 될 것이라 믿는다. 수십 명의 학생을 한 교실에 몰아넣고 똑같은 진도를 빼던 산업화 시대의 공장형 교육에서 벗어나, 이제 AI가 학생 개개인의 수준에 맞춘 완벽한 일대일 과외 교사가 되어줄 것이라고 환호한다. 그들은 이것을 초개인화라고 부른다.


하지만 기술이 말하는 그 맞춤형 정장은 누구의 치수를 기준으로 재단되었는가.


시스템은 평균적인 신체와 인지 능력을 가진 다수의 데이터를 학습한다. 그리고 그 평균의 범주 안에서만 난이도를 조절하며 개인화를 흉내 낸다. 화면을 볼 수 없고, 마우스를 쥘 수 없으며, 남들보다 입력 속도가 조금 느린 변수들은 그 거대한 데이터의 바다에서 조용히 누락된다.


그것은 초개인화가 아니라, 더욱 정교해진 평균의 폭력이다.


이것은 기술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화려한 AI 교육 프로그램이 어떻게 소외된 자들에게 새로운 유리천장을 만들어내는지 파헤친, 어느 서늘한 3월 초순의 기록이다.



화려한 맞춤형 정장


경북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세미나실.

김경훈은 시각장애인 정보 리터러시 교육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최근 교육계에서 주목받는 한 에듀테크 스타트업의 시연회에 참석해 있었다.


시연을 맡은 사람은 개발팀장 윤지우였다. 그녀는 30대 초반의 열정 넘치는 엔지니어로, 기술이 모든 교육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기술 낙관주의자였다.


윤 팀장의 목소리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러분, 저희가 개발한 에듀 마스터 AI는 혁명입니다. 학생의 시선 체류 시간을 분석하고, 음성 인식으로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며, 학습자의 정답률에 따라 실시간으로 다음 문제의 난이도를 조절합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개별화 교육의 실현이죠. 느린 학생은 기초부터, 빠른 학생은 심화 학습으로 알아서 이끌어줍니다.


세미나실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일반 교사들과 교육청 관계자들은 이 똑똑한 AI가 교사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학생들의 성적을 올려줄 것이라며 박수를 쳤다.


하지만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김경훈의 표정은 차가웠다. 그의 발치에 엎드려 있던 안내견 탱고마저 주인의 굳은 공기를 감지했는지, 꼬리 치기를 멈추고 얌전히 턱을 괴고 있었다.



시간 초과, 혹은 배제의 알고리즘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김경훈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일어섰다.

윤 팀장님, 설명 잘 들었습니다. 완벽한 개별화라니 솔직히 조금 기대가 되네요. 저도 한번 그 혁명적인 시스템에 접속해 봐도 되겠습니까.


윤 지우 팀장은 당황한 기색 없이 환영했다.

아, 김경훈 박사님이시군요. 네, 물론입니다. 접근성 기능도 일부 지원하고 있으니 직접 체험해 보시죠.


김경훈은 노트북을 열고 평소 사용하는 스크린리더인 센스리더를 켰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의 기계음이 세미나실에 울려 퍼졌다. 그는 키보드의 탭 키를 눌러 AI 학습 프로그램에 접속을 시도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화면의 시선 체류 시간을 분석한다고 하셨죠. 저는 화면을 볼 수 없으니 시선 데이터 자체가 없습니다. AI는 제가 지금 화면의 어느 부분을 읽고 있는지, 혹은 헤매고 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겠군요.


윤 팀장이 조금 당황하며 답했다.

아, 그 부분은 음성 명령으로 대체하시면 됩니다. 마이크 아이콘을 누르시고 답변을 말씀하시면.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스템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김경훈이 스크린리더로 문제의 지문을 끝까지 다 듣기도 전에, AI가 제한 시간을 초과했다며 다음 문제로 강제 전환해 버린 것이다.


이런. 김경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AI가 성미가 아주 급하네요. 시각장애인은 텍스트를 소리로 순차적으로 들어야 하기 때문에 비장애인이 눈으로 훑는 것보다 인지 시간이 훨씬 더 깁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비장애인의 평균적인 읽기 속도에 맞춰 타임아웃을 설정해 두었군요. 저 같은 학습자는 문제를 풀기도 전에 오답 처리가 되겠습니다.



난이도 조절과 진정한 개별화


세미나실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윤 지우 팀장은 황급히 해명했다.

박사님, 그것은 설정에서 제한 시간을 늘리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저희 시스템의 핵심은 난이도를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맞춤형 알고리즘에 있습니다. 장애 학생들도 수준에 맞는 문제를 제공받을 수 있으니 교육적 효과는 확실할 겁니다.


김경훈은 고개를 저었다.

팀장님, 장애 학생에게 필요한 개별화 교육은 단순한 문제 난이도 조절이 아닙니다.


그는 평소 정보 리터러시를 연구하며 쌓아온 논리를 단호하게 펼쳤다.

수학 문제가 어렵다고 해서 구구단만 반복해서 풀게 하는 것이 개별화가 아닙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마우스를 대체할 보조공학 기기와의 연동이 필요하고, 어떤 아이에게는 복잡한 시각 인터페이스 대신 직관적인 텍스트 구조가 필요하며, 또 어떤 아이에게는 기계의 닦달이 아닌 교사의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팀장님의 AI는 평균적인 비장애인 학생의 모델을 뼈대로 삼고, 그 위에 약간의 난이도 필터만 씌운 겁니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소외된 자들의 신체적, 인지적 특성은 배제되어 있죠. 이건 학습 지원 도구가 아닙니다. 장애 학생들에게는 넘을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장벽일 뿐입니다.



평균이라는 환상


세미나를 마치고 나오는 길, 윤 지우 팀장이 김경훈을 쫓아 나왔다. 그녀의 표정에는 아까의 자신감 대신 깊은 고민이 서려 있었다.


박사님, 솔직히 충격받았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모두를 위한 기술을 만들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제 머릿속의 모두는 결국 평균적인 대다수일 뿐이었네요.


함께 걷고 있던 보보가 부드럽게 거들었다.

윤 팀장님, 너무 자책하지는 마세요. 원래 시스템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자기 몸을 기본값으로 놓고 세상을 설계하니까요. 철학에서도 그걸 정상성의 이데올로기라고 부릅니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 설계의 기준점을 어디로 옮길 것인가 하는 문제죠.


김경훈은 탱고의 리드 줄을 고쳐 쥐며 말했다.

팀장님, 다 만들어진 건물에 나중에 휠체어 경사로를 덧대려고 하면 미관도 망치고 돈도 두 배로 듭니다. 애초에 설계도면을 그릴 때부터 단차를 없애고 평평하게 지어야죠. 보편적 설계라는 건 특별한 누군가를 위한 배려가 아닙니다. 가장 취약한 사람을 기준으로 시스템을 짤 때, 역설적으로 그 시스템이 가장 튼튼하고 완벽해진다는 공학적 진리입니다.


윤 팀장은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열심히 적기 시작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박사님, 염치없지만 저희 AI 시스템 재설계 과정에 접근성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까다로운 변수들을 어떻게 품어야 할지, 박사님의 그 매서운 검토가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김경훈이 피식 웃었다.

저 엄청 깐깐합니다. 아마 개발팀 전체가 야근 좀 하셔야 할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주석: 표준의 아키텍처


제목: 표준의 아키텍처, 혹은 배제하지 않는 기술.

기술은 결코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을 설계하는 자의 무의식과 편견이 그대로 코드로 짜이기 때문이다.

AI는 무한한 포용력을 가진 듯 보이지만, 기준점에서 벗어난 이들을 가차 없이 비정상 데이터로 걸러낸다.

진정한 개별화는 알고리즘이 점수를 매기고 진도를 빼주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고유한 결핍과 속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에 맞는 새로운 경로를 함께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결론: 세상에 평균적인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불완전한 변수들이다. AI가 진정으로 인간을 이롭게 하려면, 그 똑똑한 연산 능력을 다수를 위한 효율이 아니라, 소외된 단 한 명을 기다려주는 인내심에 사용해야 한다.

그나저나, 결혼식이 코앞인데 윤 팀장 제안을 덥석 물어버렸다. 신혼여행 가서도 노트북으로 AI 코드를 뜯어봐야 할 판이다. 보보에게 잔소리 듣기 전에, 내일은 알아서 청소기라도 돌려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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