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의 아키텍처

The Architecture of Direction

by 김경훈

“이리 오세요.”

이 짧은 문장은 비장애인에게는 친절한 초대(Invitation)다. 시각과 청각이 통합된 그들에게 ‘이리’는 명확한 좌표값이다. 소리가 나는 곳을 보고, 그 사이의 장애물을 피해 직선으로 이동하면 된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에게, 특히 혼잡한 지하철역에서의 “이리 오세요”는 공포의 명령어다.

그것은 “눈을 감고 지뢰밭을 건너오라”는 말과 같다. 소리는 공기 중에 흩어지고, 방향은 군중의 소음에 묻힌다. 내가 한 발짝 뗄 때, 그 사이에 유모차가 있는지, 캐리어가 있는지, 혹은 스크린도어의 틈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진정한 안내(Guide)는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다가가는 것’이다. 이것은 좌표를 잃은 위성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모선이 직접 다가가 도킹(Docking)을 시도하는 물리학의 문제다.


이것은 풋내기 활동지원사의 열정적인 외침 앞에서 얼음처럼 굳어버린 한 남자가 그에게 ‘방향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대신 ‘정지(Stop)’의 미학을 가르쳐 준, 어느 출근길 지옥철의 기록이다.



1. 반월당역의 카오스


대구 지하철 2호선 반월당역.

이곳은 대구의 모든 에너지가 충돌하고 폭발하는 거대한 ‘단전(丹田)’과도 같은 곳이다.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며 쏟아내는 수만 명의 인파.


오늘은 탱고가 정기 검진을 위해 동물병원에 간 날이었다. 대신 김경훈의 곁에는 새로운 활동지원사 최동민(24세) 군이 있었다. 그는 사회복지학과 휴학생으로, 의욕이 넘치고 목소리가 우렁찬 청년이었다.


“형님! 사람 진짜 많네요! 꽉 잡으세요!”

동민은 김경훈을 ‘형님’이라 불렀다. 친근해서 좋았지만, 가끔은 너무 친구처럼 대해서 탈이었다.


‘치익-’

열차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고, 또 물밀듯이 밀려 들어갔다. 김경훈은 그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어, 어, 동민아!”

잡고 있던 동민의 팔꿈치가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손끝에 닿는 것은 낯선 사람들의 패딩 점퍼와 가방 끈뿐이었다.



2. 허공의 외침, “이리 오세요!”


“내리셔야 돼요! 밀립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김경훈은 떠밀리듯 승강장으로 배출되었다.

발이 땅에 닿았지만, 방향 감각은 제로(0)였다. 왼쪽이 계단인지, 오른쪽이 선로인지 알 수 없는 완벽한 고립.


그때, 저만치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 여기요! 이리 오세요!”


동민이었다. 그는 인파를 뚫고 먼저 나간 모양이었다.

“형님! 얼른 오세요! 사람들 지나가요!”


김경훈은 지팡이를 꽉 쥐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섰다.

동민의 목소리는 2시 방향, 약 5미터 거리에서 들렸다. 하지만 그 5미터 사이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발자국 소리, 이어폰에서 새어 나오는 음악 소리, 안내 방송 소리.

그는 한 발짝도 뗄 수 없었다.

‘이리로 오라고? 거기가 어딘데? 이 사이에 기둥이 있는지, 쓰레기통이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형님! 안 오고 뭐 하세요?”

동민의 목소리에 답답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김경훈은 입을 다물고, 시위하듯 제자리에 멈춰 섰다. 이것은 고집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방어 기제’였다.



3. 위성과 행성의 도킹 프로토콜


결국 동민이 인파를 헤치고 다시 돌아왔다.

“아유, 형님. 왜 거기 가만히 계세요? 제가 불렀잖아요.”

동민이 숨을 헐떡이며 김경훈의 팔을 잡았다.


김경훈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동민의 팔을 더듬어 정확한 위치(팔꿈치 위쪽)를 잡았다.

“동민아.” 그가 차분하게 불렀다.

“네?”


“우주 영화 좋아해?”

“네? 갑자기요? 좋아하죠. 인터스텔라 같은 거.”


“지금부터 내가 ‘행성’이고, 네가 ‘위성’이야.” 김경훈이 설명했다.

“행성은 움직이지 않아. 궤도를 잃으면 그 자리에 멈춰서 신호를 보낼 뿐이지. 움직여야 하는 건 위성인 너야.”


그는 동민의 손을 자신의 어깨에 올렸다.

“네가 ‘이리 오세요’라고 부르면, 나는 암흑 속으로 뛰어들어야 해. 그건 도킹 실패야. 추락이라고.”

“아….”


“사람이 많을수록, 복잡할수록, 너는 나를 부르지 말고 나에게 와야 해. 내가 움직이다가 남의 발을 밟거나, 유모차를 걷어차거나, 선로로 떨어질 수도 있잖아.”

김경훈은 빙긋 웃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형님, 오세요’ 금지. 대신 ‘제가 갑니다’라고 해. 알겠지?”


동민은 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해요, 형님. 저는 그냥… 형님이 운동 신경 좋으시니까 소리 듣고 금방 오실 줄 알았어요.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4. 교육(Education), 혹은 튜닝의 시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동민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는 더 이상 앞만 보고 걷지 않았다.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김경훈과의 거리를 확인했고, 좁은 틈을 지날 때는 팔을 등 뒤로 돌려 김경훈이 자신의 등 뒤로 설 수 있게 유도했다.


“형님, 지금 1시 방향에 기둥 있어요. 제가 살짝 왼쪽으로 붙을게요.”

“그래, 좋아. 아주 훌륭한 내비게이션이야.”


김경훈은 생각했다. 활동지원사는 전문 교육을 받지만, 현장의 모든 변수를 교과서에서 배울 수는 없다. ‘이리 오세요’가 왜 위험한지, 시각장애인이 왜 멈춰 서는지, 그 ‘이유(Why)’를 설명하고 조율하는 것은 당사자인 자신의 몫이었다.


불편은 참으면 ‘병’이 되지만, 말하면 ‘매뉴얼’이 된다.

그는 동민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법을 택했다. 그것은 비난이 아니라, 두 사람의 합(合)을 맞추는 튜닝(Tuning)의 시간이었다.


“동민아.”

“네, 형님.”

“아까 멈춰 있어서 미안했다. 근데 너, 달리기 좀 하더라? 나 버리고 갈 때 엄청 빠르던데?”

“아, 아니에요! 버린 거 절대 아닙니다!”



5. 주석: 방향의 아키텍처


그날 저녁, 김경훈은 병원에서 돌아온 탱고를 껴안으며(녀석에게서 소독약 냄새가 났다), 아이폰을 들어 오늘의 기록을 남겼다.


‘제목: 방향(方向)의 아키텍처, 혹은 호출 금지.

‘이리 오세요’는 시각장애인에게 가장 무책임한 친절이다.

혼돈의 공간에서 안전을 담보하는 유일한 방법은 눈을 가진 자가 눈을 감은 자에게로 ‘회귀’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 동민이에게 ‘정지의 미학’을 가르쳤다. 내가 멈춰 있는 것은 무능해서가 아니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행동임을.

결론: 서비스는 일방적인 수혜가 아니다. 이용자와 지원사는 끊임없이 대화하고, 서로의 프로토콜을 맞춰가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우리가 침묵하면, 그들은 우리가 괜찮은 줄 알고 계속 “이리 오세요”라고 외칠 것이다.

…탱고야, 그래도 역시 네가 최고다. 너는 나한테 오라고 안 하고, 그냥 내 다리에 머리를 박아버리니까. 확실한 도킹, 아주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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