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chitecture of Safety
“고객님의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이 문장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세련된 ‘거절’의 동의어다.
그 말은 매끄럽고, 정중하며, 반박할 수 없는 도덕적 우위를 점한다. 안전을 위한다는데, 감히 누가 토를 달겠는가? 하지만 장애인의 입장에서 이 문장은 ‘보호’가 아니라 ‘배제’의 신호탄이다.
그 안전의 기준은 누구의 몸인가? 비장애인 성인 남녀다. 그 표준 규격에서 벗어난 몸은 시스템 안에서 ‘변수’이자 ‘리스크’로 분류된다. 강사는 두려워한다. ‘다치면 내 책임이잖아.’ 그 두려움은 곧바로 방어기제를 작동시키고, 가장 손쉬운 문장을 뱉어내게 한다. “안전하지 않아서 안 됩니다.”
이것은 ‘안전’이라는 이름의 가장 견고한 벽 앞에서, 문을 걸어 잠그는 사람이 아닌, 그 문을 뜯어고쳐 새로운 길을 만드는 ‘설계자’를 만난 한 남자의, 어느 땀 냄새와 탄산마그네슘 가루가 날리는 저녁의 기록이다.
김경훈은 보보의 손에 이끌려 대구 수성구의 한 클라이밍 센터 입구에 서 있었다.
하지만 입장은 5분 만에 저지당했다.
“죄송합니다. 시각장애인 분은 이용이 어렵습니다.”
카운터 직원의 목소리는 친절했지만 단호했다.
“저희 암장은 홀드(손잡이)가 복잡해서요. 낙상 위험도 있고… 무엇보다 회원님의 안전을 위해서 규정상 안 됩니다.”
김경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또 나왔다. 그놈의 안전.
“제 안전을 위한다면, 제가 안 다치게 가르쳐 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저는 운동 신경이 꽤 좋은 편인데요.”
“아, 그게…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저희가 책임을 질 수가 없어서요.”
직원의 말은 번역하자면 이랬다.
‘당신은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입니다. 나는 폭탄 해체법을 모르고, 배우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나가주세요.’
보보가 화를 내며 따지려 했지만, 김경훈은 그녀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가자, 보보. 여기는 ‘위험한’ 곳이라네. 내가 숨만 쉬어도 건물이 무너질 것 같나 봐.”
그들이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루트(Route) 클라이밍’이라는 작은 센터였다.
지하로 내려가자 습한 공기와 함께 텁텁한 냄새가 났다. 초크(탄산마그네슘) 가루 냄새. 그리고 바닥에 무언가 쿵, 하고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
“어서 오세요.”
카운터 뒤에서 나온 사람은 서지안(Seo Ji-an) 센터장이었다. 그녀는 전직 국가대표 클라이머 출신으로, 손바닥 전체에 굳은살이 박인, 작지만 단단한 체구의 여성이었다.
“체험 강습하러 오셨나요?” 서지안이 물었다.
김경훈은 지팡이를 들어 보였다.
“네. 그런데 보시다시피 앞이 안 보입니다. 방금 다른 곳에서 ‘안전을 위해’ 쫓겨나고 오는 길입니다만.”
그는 방어적으로 쏘아붙였다. 또 거절당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하지만 서지안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그녀는 거절 대신, 김경훈의 손을 쳐다보았다.
“악력은요?”
“네?”
“철봉 매달리기 얼마나 버티시냐고요. 그리고 유연성은요? 다리 찢기 됩니까?”
서지안은 김경훈을 벽 앞으로 데려갔다.
“보세요. 회원님. 여기 비장애인 초보들도 오면 다칩니다. 까지고, 멍들고, 떨어져요. 클라이밍은 원래 중력을 거스르는 거라 100% 안전 같은 건 없습니다.”
그녀는 김경훈의 손을 잡아 가장 큰 홀드 위에 올려주었다.
“문제는 ‘눈이 안 보인다’는 게 아니에요. 그건 그냥 회원님의 ‘신체 스펙(상수)’이죠. 진짜 문제는 우리가 그 스펙에 맞는 ‘루트’를 아직 안 만들었다는 거고요.”
그녀는 ‘안전’을 핑계로 대화를 종료하지 않았다. 대신 ‘조정’을 위한 질문을 시작했다.
“제가 소리로 방향을 알려드리면 반응할 수 있습니까? 12시 방향, 3시 방향.”
“가능합니다. 제 청각은 레이더급이니까요.”
“좋아요. 그리고 홀드 표면을 좀 다르게 처리할게요. 테이프를 붙여서 촉감을 구분하게 하죠. 낙법은 배우셨나요?”
“유도 유단자입니다. 떨어지는 건 자신 있죠.”
서지안이 피식 웃었다.
“그럼 됐네요. 떨어지는 법을 알면, 올라가는 건 문제입니다. ‘안전’은 안 하는 게 아니라, 잘 떨어지게 준비하는 거니까요.”
그녀의 태도에는 ‘배려’라는 이름의 오만함이 없었다. 그저 해결해야 할 과제와, 그걸 수행할 선수만이 존재했다. 김경훈은 그녀에게서, 자신의 몸이 ‘위험 요소’가 아니라 ‘도전자’로 격상되는 느낌을 받았다.
강습이 시작되었다. 서지안은 김경훈의 허리에 로프를 매지 않았다(볼더링은 로프 없이 하는 등반이다). 대신 그녀는 바로 등 뒤에 섰다.
“오른손 2시 방향, 30cm. 크게 뻗으세요!”
서지안의 목소리가 김경훈의 귀에 꽂혔다.
김경훈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에 거친 돌멩이의 감촉이 잡혔다.
“잡았다!”
“발은 그대로, 왼발만 무릎 높이로 올리세요. 턱이 있어요.”
김경훈은 보이지 않는 벽 위에서, 오직 서지안의 목소리와 자신의 손끝 감각에 의지해 중력과 싸웠다.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다. 발을 헛디디면 떨어진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배제된 자의 굴욕’이 아니라, ‘등반가의 건전한 긴장감’이었다.
“마지막 탑(Top) 홀드, 양손으로 합손!”
김경훈은 젖 먹던 힘을 다해 몸을 끌어올렸다. 마침내 두 손이 가장 높은 곳의 홀드를 꽉 쥐었다.
“나이스! 완등!”
아래에서 보보의 환호성과, 탱고의 ‘멍!’ 소리가 들렸다.
김경훈은 벽에 매달려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안전하지 않았다. 팔 근육이 터질 것 같았고, 손바닥은 쓰라렸다. 하지만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느꼈다.
“자, 이제 떨어지세요. 뒤로 툭.” 서지안이 말했다.
김경훈은 망설임 없이 손을 놓았다. 푹신한 매트 위로 몸이 떨어졌다. 완벽한 낙법이었다.
‘제목: 안전(安全)의 아키텍처, 혹은 거절하지 않는 용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안전’은 문을 닫는 자물쇠다. “위험하니까 하지 마세요.”
하지만 서지안 센터장에게 안전은 문을 여는 열쇠였다. “위험하니까 준비합시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녀는 내 장애를 제거해야 할 리스크가 아니라, 함께 풀어나가야 할 ‘루트(Route)’로 보았다.
결론: 안전은 정지 상태가 아니다. 안전은 예측 가능한 위험 속에서, 서로를 믿고 기꺼이 몸을 던지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나는 오늘 벽에서 떨어졌지만, 바닥에 닿는 순간 가장 안전하다고 느꼈다. 나를 받을 준비가 된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내일 숟가락은 들 수 있을까. 전완근이 너덜너덜하다. 탱고야, 내일은 네가 밥 좀 떠먹여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