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항구는 거대한 짐승의 썩어가는 아가리처럼 짙은 안개와 악취를 토해낸다. 바닷물의 짠내와 부식된 철에서 나는 붉은 녹 냄새 낡은 어선들이 흘린 디젤 기름의 매캐한 냄새가 끈적하게 엉켜 나의 코끝을 찌른다. 정의를 수호하는 고결한 영웅들은 이런 시궁창 같은 곳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 오직 탐욕에 눈이 먼 악당들과 그들의 썩은 살점을 뜯어먹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굶주린 사냥개만이 이 어둠 속을 배회할 뿐이다. 나는 시각을 잃은 사설탐정 엘리야다. 빛을 빼앗긴 대신 극한으로 발달한 후각과 청각 그리고 촉각으로 세상의 가장 더러운 이면을 파헤치는 자다. 내 곁에는 언제나 완벽한 공범이자 충직한 길잡이인 래브라도 리트리버 탱고가 일정한 숨소리를 내며 나의 발걸음을 안내하고 있다. 나는 이 부패한 도시의 범죄자들을 심판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들이 서로를 물어뜯고 죽일 때 흘러나오는 가장 값비싼 전리품을 챙겨 나의 사랑하는 보보와 함께 평화롭고 안전한 성을 쌓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목적이다.
오늘 나의 사냥터는 인적이 끊긴 부두의 가장 깊은 곳에 정박해 있는 거대하고 낡은 밀수선이다. 이 배는 겉으로는 평범한 원양어선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동남아시아에서 밀반입되는 마약과 무기명 채권 그리고 가공되지 않은 다이아몬드가 거래되는 불법적인 해상 창고다. 나를 이 위험한 배로 부른 자는 이 항구를 지배하는 폭력 조직의 우두머리인 칠성파의 장 보스였다. 그는 어젯밤 이 배 안에서 자신의 조직원들과 신흥 라이벌 조직인 흑조회 사이에 대규모 거래가 있었는데 흑조회 놈들이 갑자기 배신을 하고 총격전을 벌여 자신의 부하들을 모두 몰살시켰다고 주장했다. 장 보스는 흑조회가 훔쳐 가지 못한 밀수선의 비밀 금고 어딘가에 숨겨진 수백억 원어치의 미가공 다이아몬드 원석을 찾아달라고 의뢰했다. 배 안에는 여전히 흑조회의 잔당들이 숨어 있을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경찰을 부를 수 없는 처지였기에 거액의 수고비를 약속하며 눈먼 탐정을 장기 말로 선택한 것이다.
나는 장 보스와 그의 곁을 지키는 덩치 큰 호위무사 두 명과 함께 삐걱거리는 철제 갑판 위로 올라섰다. 파도가 배의 밑창을 때릴 때마다 육중한 쇳덩어리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기괴한 마찰음이 고막을 울렸다. 배의 내부로 들어가는 해치를 열자마자 숨을 턱 막히게 하는 지독한 피비린내가 밀려왔다. 사람의 혈액이 대량으로 쏟아져 차가운 철판 위에서 응고될 때 나는 역겨운 쇠붙이 냄새였다. 나는 탱고의 하네스를 단단히 틀어쥐고 아주 느리고 조심스럽게 어둠이 깔린 선창의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탄피가 굴러다니며 지팡이 끝에 부딪혀 맑고 섬뜩한 금속음을 냈다.
사건 현장인 배의 가장 깊은 화물칸에 도착했다. 나의 청각은 공간의 메아리를 통해 이 화물칸이 수십 개의 거대한 컨테이너 박스로 이루어진 미로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바닥에는 적어도 열 구 이상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장 보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충직한 부하들이 흑조회의 비열한 기습에 당했다고 분노를 토해냈다. 하지만 나의 예민한 후각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거짓말을 아주 선명하게 해체하고 있었다. 나는 장갑을 낀 손으로 바닥에 쓰러진 시신 한 구의 주변을 더듬었다.
죽은 자의 몸에서는 칠성파 조직원들 특유의 싸구려 스킨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의 몸에 박힌 총상의 궤적과 주변의 냄새는 장 보스의 주장과 완전히 모순되고 있었다. 만약 흑조회가 정면에서 기습을 했다면 치열한 총격전의 흔적인 화약 냄새가 공간 전체에 무작위로 퍼져 있어야 했다. 하지만 시신의 교살 흔적과 총상이 발생한 부위에서 나는 화약의 잔향은 아주 가까운 영거리 사격의 흔적이었다. 그것은 서로 총을 겨누고 싸운 것이 아니라 완전히 방심하고 있는 상태에서 등 뒤나 옆에 있던 동료에게 아주 가까이서 처형당했다는 뜻이다.
나는 시신의 옷깃에 묻어 있는 미세한 화약 연기와 총기 윤활유의 냄새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그것은 러시아제 암살용 소음 권총에서 주로 쓰이는 특수 윤활유의 냄새였다. 그리고 화물칸의 차가운 공기 속에는 아주 비싸고 독특한 체리 향이 섞인 쿠바산 시가의 잔향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다. 그 시가 냄새의 진원지는 바로 내 뒤에 서 있는 장 보스의 주머니였다. 모든 퍼즐 조각이 완벽한 하나의 그림을 완성했다. 어젯밤 이 배에는 흑조회 조직원들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장 보스는 수백억 원의 다이아몬드를 부하들과 나누기 싫어 자신의 가장 은밀한 직속 암살조를 동원해 충성을 맹세하던 부하들을 밀수선 안에서 모조리 도살한 것이다. 그리고 흑조회의 짓으로 위장한 뒤 시각장애인 탐정을 데려와 자신이 다이아몬드를 찾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꾸며 조직 내의 의심을 피하려 한 치밀하고 악랄한 자작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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