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의 녹슨 탄환과 검은돈

by 김경훈

정의라는 단어는 배부른 자들이 만들어낸 나약한 위선일 뿐이다. 햇빛이 닿지 않는 지하의 가장 깊은 곳에는 오직 썩은 탐욕과 생존을 위한 악취만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빛을 잃은 나를 동정하며 무력한 존재로 여기지만, 완벽한 어둠 속에서 진실의 이면을 찢어 발기고 가장 값진 살점을 뜯어내는 것은 눈먼 사냥개인 나 엘리야뿐이다. 나의 세계는 시각이 차단된 대신 극한으로 벼려진 후각과 청각, 그리고 촉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감각의 제국이다. 내 발치에는 이 위험한 사냥의 완벽한 공범이자 충직한 길잡이인 래브라도 리트리버 탱고가 축축한 콘크리트 바닥의 진동을 느끼며 엎드려 있다. 우리는 부패한 악당들이 숨겨둔 가장 거대한 돈다발을 가로채어 사랑하는 보보와의 평화로운 미래를 지키기 위해 이 끔찍한 무덤으로 걸어 들어왔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수십 년 전 노선이 변경되며 영원히 버려진 지하철 폐역의 승강장이다. 붉게 녹슨 에스컬레이터는 거대한 짐승의 뼈대처럼 멈춰 있고, 타일이 떨어져 나간 벽면에서는 썩은 지하수가 뚝뚝 떨어지며 서늘한 파동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의 청각은 그 물방울이 부딪히는 미세한 메아리를 해독하여 이 거대한 폐역의 구조와 숨겨진 환풍구의 위치까지 머릿속에 완벽한 입체 지도로 그려내고 있었다. 오래된 쇳가루의 비릿한 냄새와 곰팡이 핀 쥐들의 배설물 악취가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머나먼 지상에서 현역 지하철이 지나갈 때마다 두꺼운 기둥을 타고 내려오는 묵직한 진동이 나의 구두 밑창을 간지럽혔다.


나를 이 축축한 지하로 끌어들인 자는 도심의 뒷골목을 지배하는 폭력 조직의 우두머리 황 보스였다. 그는 오늘 밤 이 폐역에서 해외 밀매 조직과 대규모 불법 무기 거래를 앞두고 있었다. 추적 불가능한 최신형 자동소총과 군용 폭약들을 수백억 원어치의 무기명 채권과 맞바꾸는 위험한 거래였다. 황 보스는 거래 현장에 경찰의 잠복이나 상대 조직의 함정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감각을 가진 눈먼 사설탐정을 인간 탐지기로 고용한 것이다. 그는 나에게 주변의 미세한 소리나 냄새를 감시하라고 지시하며 거액의 수고비를 약속했지만, 나는 그 얄팍한 푼돈 따위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나의 유일한 목표는 황 보스의 수하가 들고 있는 저 무거운 알루미늄 가방 속의 무기명 채권 다발뿐이다.


멀리 어둠 속에서 녹슨 선로의 자갈을 밟는 불규칙한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무기를 팔러 온 해외 마피아 조직의 브로커들이었다. 발소리의 무게와 보폭으로 보아 앞장선 자는 아주 거구의 남자였고, 그 뒤로 짐을 든 세 명의 수하가 따르고 있었다. 그들이 승강장 중앙으로 다가오자 나의 예민한 후각은 그들이 뿜어내는 짙은 체취를 낱낱이 해부하기 시작했다. 브이오디오케이카 독주의 알코올 냄새와 값싼 가죽 재킷의 냄새,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총기 손질용 특수 윤활유의 매캐한 화약 냄새가 공간을 채웠다.


황 보스는 거친 목소리로 물건을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무거운 나무 상자가 승강장 바닥에 둔탁하게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고, 쇠지렛대로 상자의 뚜껑을 여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폐역을 울렸다. 상자 안에는 차가운 금속성의 무기들이 기름을 머금은 채 가지런히 누워 있을 것이다. 황 보스가 만족스러운 듯 숨을 내쉬며 자신의 수하에게 돈 가방을 열어 보여주라고 지시했다. 알루미늄 가방의 잠금장치가 찰칵 열리고, 빳빳한 종이 다발이 내뿜는 짙은 잉크 냄새와 화학적인 지폐 냄새가 곰팡내 나는 지하의 공기를 황홀하게 갈랐다. 거래는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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