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천재를 만드는가, 천재가 대학을 만드는가

by 김경훈

2026년 WBC 참패 이후 한국 야구를 향한 비난이 매섭다.

특히 투수진의 제구력 난조와 여전히 류현진 같은 노장에게 기대야 하는 현실을 두고 지도자들의 연구 부족을 탓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장의 지도자들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나, 모든 화살을 그들에게만 돌리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지도자라는 소프트웨어의 결함이 아니라, 인적 자원과 시스템이라는 하드웨어의 절벽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교수와 천재의 상관관계


서울대학교가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으로 인정받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교수들의 강의력이 다른 대학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나서일까.

답은 명확하다.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 그곳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교수가 천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천재들이 서울대를 만드는 것이다.


자기계발의 영역에서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작동한다.

지도자는 올바른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일 뿐, 그 길을 실제로 걸어가는 근육과 의지는 학생의 몫이다.

아무리 유능한 셰프라도 신선한 재료가 없다면 최고의 요리를 내놓을 수 없듯, 지도자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할 수는 없다.

우리가 지도자에게 과도한 기대를 거는 동안, 정작 그들이 요리할 재료인 기초 자원이 고갈되고 있다는 사실은 잊고 있다.



숫자가 증명하는 인프라의 잔혹함


일본 야구가 매년 160km를 던지는 강속구 투수를 쏟아내는 배경에는 지도자의 신비로운 비법이 숨겨져 있지 않다.

일본에는 약 4,000개의 고교 야구팀이 존재한다.

수만 명의 선수라는 거대한 데이터 풀(Pool) 안에서 자연스럽게 걸러진 극소수의 재능을 지도하는 환경이다.

반면 한국은 100여 개 남짓한 팀에서 자원을 쥐어짜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양적인 차이가 아니라 시스템의 성격 자체가 다른 문제다.

정보 리터러시의 관점에서 보면, 표본 집단의 크기가 작을수록 오류의 가능성은 커지고 혁신적인 결과물이 나올 확률은 낮아진다.

얇은 인적 자원 토대 위에서 프로 수준의 성과를 매번 요구하는 것은 마치 구형 컴퓨터로 고사양 게임을 돌리며 버벅거린다고 운영체제만 탓하는 꼴이다.



성적 지상주의가 파괴한 육성의 알고리즘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 프로야구의 생존 방식이다.

감독과 코치의 목숨은 당장 내일의 성적에 달려 있다.

150km 유망주에게 3년 뒤를 내다본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시키기보다, 당장 오늘 경기 승리를 위해 맞춰 잡는 변화구를 가르치는 것이 이 바닥의 생존 전략이다.


이것은 지도자의 무능이라기보다 실패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리그의 구조적 결함이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환경에서는 누구도 과감한 실험을 하지 않는다.

이는 개인의 성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에만 급급해 기본기를 소홀히 한다면,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인프라의 절벽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 역시 스스로에게 실패할 시간을 허락하고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지도자 반성론은 달콤한 위안이 될 수 있다.

지도자만 바꾸면, 혹은 해외 연수만 다녀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은 착각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적 자원의 기반이 무너지고 성적 지상주의가 구조화된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한, 어떤 처방도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나의 안내견 탱고와 함께 걷다 보면 느끼는 것이 있다.

탱고가 나의 길을 완벽히 안내해주더라도, 실제로 한 걸음을 내딛고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것은 나의 체력과 의지다.

한국 야구 역시 지도자라는 지팡이를 탓하기 전에, 선수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넓은 운동장과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두터운 인프라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인프라의 절벽 위에서 외치는 반성론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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