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형의 아키텍처

by 김경훈

우리 사회는 아주 오랫동안 같음을 기준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평가해 왔다.

학교의 표준화된 교육과정은 정해진 규격의 틀을 만들어 놓고, 그 틀을 통과하는 자만을 정상으로 규정했다.

그 좁은 통과 의례 속에서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나 결핍이나 부족함이었다.


하지만 교육사회학의 렌즈를 끼고 세상을 보면, 인간의 차이는 결핍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속에서 의미가 구성되는 다양성의 한 형태다.

어떤 이는 세모, 어떤 이는 네모, 또 어떤 이는 동그라미의 모양으로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어느 모양이 더 우수한가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이 세상을 얼마나 다채롭게 채우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다름을 부족함으로 여기며 매일 밤 눈물짓던 어느 젊은 어머니를 만나, 세모는 세모의 방식대로 세상을 굴러갈 수 있음을 알려준 어느 따뜻한 삼월 하순의 기록이다.



둥근 틀과 세모난 아이


화성시의 한 한적한 베이커리 카페.

김경훈은 발달장애 아동 부모 자조 모임의 초청을 받아 작은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따뜻한 커피 향이 감도는 테이블 맞은편에는 여덟 살 자폐 스펙트럼 아동 민우를 키우는 어머니, 최연서 씨가 앉아 있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민우 때문에 연서 씨의 얼굴에는 깊은 그늘이 져 있었다.

박사님, 저는 매일 밤이 불안해요.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너무 다르니까요. 학교에서는 다 같이 앞을 보고 앉아야 하는데 민우 혼자 창밖만 봐요. 다른 애들처럼 평범하게, 동글동글하게 적응해주면 좋겠는데, 우리 애만 자꾸 모난 돌처럼 튕겨 나가요. 제가 뭘 잘못 키운 걸까요.


연서 씨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발치에 엎드려 있던 탱고가 그녀의 불안한 숨소리를 감지했는지, 슬그머니 다가가 그녀의 무릎에 턱을 올렸다.



결핍이 아니라 다양성


김경훈은 하네스를 옆에 기대어 놓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연서 씨, 연서 씨의 잘못이 아닙니다. 민우의 잘못도 아니고요.

세상이 동그라미만 정상이라고 우기는 게 문제입니다.


그는 평소 정보 리터러시 교육에서 강조하던 교육사회학적 관점을 꺼냈다.

장애는 개인의 결함이 아닙니다. 사회적 환경과 관계 속에서 경험되는 삶의 조건이죠. 민우가 겪는 어려움은 민우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학교와 사회가 특정한 방식만을 정상으로 규정해 온 구조 때문입니다.


김경훈은 손을 들어 허공에 모양을 그렸다.

어떤 아이는 세모고, 어떤 아이는 네모고, 어떤 아이는 동그라미입니다.

모양이 다르다는 건 살아가는 방식과 속도, 관심과 가능성이 다르다는 뜻이죠.

그런데 학교는 거대한 동그라미 틀을 가져와서 아이들을 억지로 밀어 넣습니다.

세모난 민우가 그 틀에 들어가려니 모서리가 부딪혀서 아플 수밖에요.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보보가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맞아요.

장애학생을 이해한다는 건, 그 학생의 모서리를 깎아내서 동그랗게 변화시키는 게 아니에요.

세모도 네모도 다치지 않고 들어갈 수 있도록 학교와 사회의 틀 자체를 유연하게 바꾸는 과정이어야죠.



부모의 시선이 아이의 우주를 만든다


연서 씨가 냅킨으로 눈가를 훔쳤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막상 뒤처지는 아이를 보면 조바심이 나요. 나중에 혼자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까 싶고요.


김경훈의 목소리에 한층 진심이 담겼다.

부모의 시선은 아이의 자기 이해에 아주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연서 씨가 민우를 끊임없이 걱정과 결핍의 대상으로 바라보면, 민우 역시 자신의 삶을 불안과 부족함 속에서 이해하게 됩니다.

반대로 어머니가 아이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신뢰할 때, 아이는 비로소 자신이 사회 속에서 의미 있는 존재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는 덧붙였다.

누가 정상이고 누가 다른가요. 학습 속도가 빠른 사람, 관계 맺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 예술적 감수성이 있는 사람. 모든 사람은 다 다릅니다. 장애는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삶입니다. 교육의 본질은 민우를 남들과 똑같은 동그라미로 만드는 게 아니라, 세모난 민우가 자신의 고유한 모서리로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자리를 찾을지 돕는 겁니다.



세모는 세모의 방식으로


창밖으로 벚꽃잎이 하나둘 날리기 시작했다.

연서 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김경훈이 부드럽게 말했다.


아이는 이미 자신만의 모양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모가 네모가 될 필요는 없고, 네모가 동그라미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민우는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며,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자신만의 속도로 배워갈 겁니다.


연서 씨의 입가에 마침내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무릎에 턱을 괴고 있던 탱고의 꼬리가 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비교나 경쟁이 아닙니다.

그저 그 아이가 세상과 만나는 방식을 신뢰하고 묵묵히 지지해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민우는 서로 다른 모양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훌륭한 한 명의 시민으로 자라날 겁니다.



제목, 도형의 아키텍처 혹은 있는 그대로의 눈맞춤.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모양의 블록들이다.


사회는 자꾸만 우리를 표준화된 상자 안에 욱여넣으려 하지만, 진정한 건축은 모양이 다른 블록들을 깎아내지 않고 그 자체로 맞물리게 하여 더 튼튼한 집을 짓는 것이다.


장애학생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부족함이 아니라 고유함으로, 극복이 아니라 다름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진정한 교육이 시작된다.


결론, 아이들은 부모의 믿음을 먹고 자란다. 세모는 세모의 방식으로 가장 완벽하다.


그나저나 보보는 나라는 뾰족한 세모를 만나 둥글게 둥글게 잘도 굴려주고 있다. 한 달 뒤면 이 세모와 동그라미가 정식으로 조립되는 날이다. 부디 예식장 입장할 때 넘어지지만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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