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에서 레고가 세계 앞에 내놓은 것은 단순한 신제품이 아니었다.
그들은 센서와 가속도계, 광 감지, 소형 스피커 등을 담은 스마트 브릭을 중심으로 스마트 미니피겨가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새로운 놀이 체계, 레고 스마트 플레이를 공개했다.
레고는 이를 1978년 미니피겨 도입 이후 가장 중요한 진화로 설명했다.
겉으로 보면 이는 그저 기술과 장난감의 결합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것은 훨씬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기술이 결합된 미래의 놀이 세계는 과연 누구를 위한 세계인가.
바로 이 질문 때문에 레고는 단순한 완구회사가 아니라 사회철학의 분석 대상이 된다.
이것은 휠체어 탄 미니피겨를 공원 한가운데에 자연스럽게 세워두는 일곱 살 아이의 손끝에서 그 어떤 첨단 기술보다 위대한 포용의 철학을 발견한 어느 시각장애인 연구원의 따뜻하고도 날카로운 오후의 기록이다.
일곱 살의 건축가
대구 신세계백화점의 레고 스토어.
김경훈은 보보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와 있었다.
이번 주말에 있을 보보의 일곱 살 조카 하준이의 생일 선물을 미리 고르기 위해서였다.
매장 한가운데 마련된 체험존에서는 아이들이 블록을 조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중에는 미리 매장에 와 있던 조카 하준이도 있었다.
이모부 이것 좀 만져보세요 제가 만든 공원이에요.
하준이가 김경훈의 손을 이끌며 자랑스레 말했다.
김경훈은 조심스럽게 하준이가 조립한 블록 위를 더듬었다.
매끄러운 브릭의 촉감 사이로 나무 형태의 블록과 벤치 그리고 작은 피겨들이 만져졌다.
그런데 그중 하나의 피겨는 다리 대신 커다란 바퀴 두 개가 달려 있었다.
휠체어였다.
게다가 그 옆에는 안내견으로 보이는 작은 강아지 피겨도 있었다.
하준아 이 친구는 왜 휠체어를 타고 있어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김경훈이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하준이가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닌데요 그냥 강아지랑 같이 공원에 산책하러 온 건데요.
다리가 아프면 바퀴로 굴러가면 되잖아요.
친구들도 다 같이 놀고 있고요.
예외가 아닌 일상
김경훈은 피식 웃었다.
하준이에게 휠체어는 치료되거나 설명되어야 할 예외가 아니었다.
그저 친구들과 함께 공존하는 일상의 한 장면일 뿐이었다.
그는 최근 연구 자료로 읽었던 레고의 발자취를 떠올렸다.
레고의 의미는 단지 센서와 효과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2016년 출시된 시티 피플 팩은 휠체어와 함께 등장하는 미니피겨를 포함했는데, 주목할 것은 그 배치 방식이었다.
이 인물은 재활시설이 아니라 공원이라는 일상 공간에 놓였다.
레고는 이후에도 이 흐름을 확장했다.
2022년 레고 프렌즈 세계관에서는 사지 차이 다운증후군, 불안 장애, 백반증, 휠체어를 사용하는 강아지 등이 포함됐다.
2024년에는 비가시적 장애를 상징하는 공식 해바라기 목걸이를 제품 세계에 도입하기도 했다.
포용이 일회성 상징에 그치지 않고 가시적 장애에서 비가시적 장애와 신경다양성으로까지 넓어지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이모부 이 강아지는 탱고랑 똑같이 생겼어요.
하준이가 김경훈의 발치에 엎드린 탱고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정상성이라는 이름의 환상
보보가 다가와 하준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김경훈에게 말했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보다 훨씬 넓은 것 같아.
미셸 푸코가 무덤에서 하준이를 본다면 아주 흐뭇해하겠어.
보보의 철학적 농담에 김경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푸코가 보여준 근대 권력의 핵심은 단순한 억압이 아니라 규범의 생산이다.
사회는 측정하고 분류하고 비교하면서 정상과 비정상을 만들고 그 기준에 맞는 몸과 삶을 사실상의 표준으로 삼는다.
장애 문제는 바로 이 규범의 정치학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세상은 흔히 장애인을 도움받아야 하는 존재로만 그리지만, 더 근본적으로 장애인은 우리 사회가 누구의 몸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왔는지를 폭로하는 존재다.
계단을 기본값으로 삼는 건축, 빠른 속도를 표준으로 삼는 노동시장, 감각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정보환경이 바로 그 증거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를 손상 자체로만 정의하지 않는다.
그 손상이 다양한 장벽과 상호작용할 때 동등한 사회참여를 가로막는다고 본다.
세계보건기구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장애를 만드는 것은 손상이 아니라 장벽이다.
그렇다면 복지의 과제는 개인을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교통 그리고 문화의 구조를 바꾸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세상을 이해하는 첫 번째 교과서
장난감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장난감은 세상을 이해하는 첫 번째 교과서다.
장애 아동에게는 자신과 닮은 존재가 놀이 세계에 등장하는 경험이 나도 이 사회의 당연한 구성원이라는 감각을 길러 준다.
비장애 아동인 하준이에게는 차이를 낯설고 특별한 것으로 배우는 대신 처음부터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한다.
장애를 비극 서사로 소비하는 대신 공원에서 놀고 학교에 가는 일상의 한 형식으로 제시하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포용의 철학은 가장 설득력 있게 구현된다.
사회복지의 관점에서 보면 이 문제는 결국 시민권의 문제다.
이름이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시민권은 완성되지 않는다.
이동하고 교육받고 일하며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장애인이 반복적으로 배제된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허가증일 뿐이다.
포용은 복지의 옵션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준이다.
김경훈은 하준이가 조립한 그 작고 단단한 블록 도시를 다시 한번 쓰다듬었다.
이 아이가 손에 쥔 블록의 세계는 이미 다양한 몸과 삶을 공동의 일상으로 배치하고 있는데 우리의 현실은 과연 이 블록만큼 포용적으로 설계되어 있는가.
제목, 블록의 아키텍처 혹은 장난감이 알려주는 민주주의.
미래의 수준은 기술이 얼마나 화려하게 반응하느냐가 아니다.
더 많은 사람이 동등한 시민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를 설계했는가로 판단되어야 한다.
포용사회란 장애인을 기존 질서에 편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질서 자체가 비장애인의 몸과 감각을 중심으로 짜여 왔음을 인정하고 그 기준을 다시 쓰는 사회다.
결론, 하준이가 만든 레고 공원에는 턱이 없었다.
휠체어와 안내견이 가장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그 작은 세상이야말로 어른들이 설계해야 할 진짜 미래다.
그나저나 레고 스마트 플레이 가격이 꽤 비싸다. 이번 달은 외식을 줄여야겠다.
그래도 그 녀석이 블록으로 더 넓은 세상을 지을 수만 있다면 아깝지 않은 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