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에서 나온 여인, 무게를 배우다

메를로 퐁티의 신체론

by 김경훈

아크 호의 4번 화물칸 진료실에 기묘한 향기가 감돌았다. 낡은 냉각수와 쇳가루 냄새뿐이던 이곳에, 어디선가 본능을 자극하는 장미와 은매화(Myrtle)의 진한 향이 스며든 것이다.


리디아는 자신의 안드로이드 코끝 센서에 감지되는 이 이질적인 데이터에 미간을 찌푸렸다.

"시끄러운 향기군요. 환기 시스템에 또 버그가 생겼나?"


그녀는 박사가 남긴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며, 자신의 금속 관절을 매만졌다. 메를로 퐁티가 말했던가. 신체는 '도구'가 아니라 세상과 만나는 '매개'라고. 하지만 리디아에게 이 무거운 안드로이드 육체는 아직까진 적응하기 힘든 '무거운 외투' 같았다.


'딸랑-'


황동 방울이 울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의 이름은 마르다(Martha). 지난 시즌 '두 명의 솔로몬' 사건을 해결했던 '이터널 라이프'의 수석 관리사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은 그때의 정갈한 슈트 차림이 아니었다. 그녀는 몸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얇은 실크 가운을 걸치고 있었고,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크 호의 거친 바닥 위로 붉은 장미 꽃잎 같은 홀로그램 파편들이 흩어졌다.



1장: 데이터의 거품, 육체의 사슬


마르다는 소파에 앉는 대신, 진료실 한가운데 서서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박사님... 아니, 리디아 씨. 제 몸이 느껴지지 않아요."


"스캔 결과로는 정상인데요. 혈압, 맥박, 체온 모두 완벽한 유기체 수치예요."


"아니요, 그런 수치 말고!" 마르다가 자신의 가슴을 꽉 쥐었다. "엔클레이브 안에서 저는 '여신'이었어요. 크로노스의 성기가 바다에 떨어져 솟아오른 거품처럼, 저 또한 순수한 데이터의 혼합물 속에서 가장 완벽한 형상으로 태어났죠. 모든 남자가 저를 매혹했고, 저는 에로스와 히메로스를 거느리듯 사람들의 욕망을 지배했어요."


그녀의 눈에 절망이 서렸다.

"하지만 이 우주선은... 너무나 '물리적'이에요. 제 남편, 그 절름발이 기술자 헤파이스토스 같은 녀석은 매일 저에게 무거운 금속 벨트를 채우려 하죠.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그 강인한 군인, 아레스와 은밀한 시간을 보낼 때조차... 저는 감각의 희열보다 이 '중력의 무게'를 먼저 느껴요. 우리가 침대 위에서 사랑을 나눌 때, 마치 청동 그물에 걸린 것처럼 온몸이 짓눌리고 속박당하는 기분이에요. 저는 지금 살아있는 건가요, 아니면 그저 고기 덩어리 속에 갇힌 유령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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