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제도와 예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앞에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그 문제가 어떤 말로 불리는가 하는 점이다.
이름이 붙지 않은 고통은 쉽게 개인의 불편으로 축소되고,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도 사적인 사연으로 흩어지기 쉽다.
브라질의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는 생성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단어를 칠판에 적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대화와 생활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과 갈등을 품고 있는 언어를 가려내어 읽기와 쓰기의 재료로 삼는 것이다.
학습자는 빈 그릇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서 나온 언어만이 침묵을 깨고 세계를 바꿀 수 있다.
이것은 잘 정돈된 행정 용어들로 가득한 서늘한 회의실에서, 손가락 대신 턱 끝에 닿는 헤드 마우스로 느릿느릿 자신의 진짜 언어를 길어 올린 한 시인과, 그 침묵의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준 김경훈의 기록이다.
행정의 언어와 텅 빈 회의실
대구에 위치한 한 정책 연구원 세미나실.
김경훈은 시각장애인 당사자이자 정보 리터러시 전문가 자격으로 의사소통 권리 증진을 위한 간담회에 참석 중이었다.
보보가 그의 옆에서 회의 자료를 작게 읽어주고 있었고, 탱고는 늘 그렇듯 책상 아래에 둥글게 몸을 말고 엎드려 있었다.
마이크를 잡고 회의를 주도하는 사람은 정책 연구소의 최민수 책임연구원이었다.
그의 입에서는 매끄럽고 건조한 단어들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이번 정책의 핵심은 서비스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장애 당사자들의 정보 접근성 미비를 보완하여 궁극적으로 문화 향유권을 증진하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 바우처 예산을 확충하고.
최 연구원의 말이 길어질수록 회의실의 공기는 무거워졌다.
그때 휠체어 모터 소리가 작게 윙윙거리며 정적을 깼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진희 씨였다.
그녀는 중증 뇌병변 장애를 가지고 있어 음성 언어 대신 보완대체의사소통 기기인 에이에이시를 사용하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이진희 씨가 턱에 장착한 스틱으로 태블릿 화면을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문장을 완성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십 초도 지나지 않아 최 연구원이 조급하게 말을 잘랐다.
아 이진희 선생님 의견 있으십니까.
문화 향유권 바우처 금액을 더 올려달라는 뜻이시죠.
저희가 그 부분은 이미 예산과에 건의를.
아닙니다 기다리시죠.
김경훈이 단호한 목소리로 최 연구원의 말을 끊었다.
선생님은 지금 우리에게 정답을 주려고 타이핑을 하시는 게 아닙니다.
질문을 고르고 계신 겁니다.
[감각 사진]
시각을 배제한 회의실의 공감각적 기록.
청각. 에이에이시 기기에서 기계음이 한 글자씩 조합될 때마다 울리는 둔탁한 터치 소리. 그리고 조급함을 이기지 못해 볼펜을 딸깍거리는 연구원의 손가락 소리.
촉각. 봄날의 온기를 밀어내는 세미나실 에어컨의 서늘한 바람. 그리고 바닥에 엎드린 탱고의 등에서 전해지는 규칙적인 온기.
후각. 새로 인쇄된 두꺼운 정책 보고서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잉크 냄새.
삶에서 길어 올린 생성어
잠시 후 이진희 씨의 태블릿에서 합성된 기계음이 천천히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무료 영화 티켓은 필요 없습니다.
턱으로 타자를 쳐도 목이 아프지 않은 거치대를 원합니다.
내 시를 쓰고 싶으니까요.
회의실이 일순간 숙연해졌다.
김경훈은 하네스 손잡이를 가볍게 쥐며 미소 지었다.
최 연구원님.
방금 들으셨습니까.
연구원님은 아까부터 서비스 사각지대니, 정보 접근 미비니 하는 행정의 언어를 썼습니다.
하지만 당사자인 이진희 선생님의 언어는 완전히 다릅니다.
김경훈이 설명을 이어갔다.
파울로 프레이리가 말한 생성어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전문가가 대신 해석해 붙인 이름과 당사자가 자기 경험에서 길어 올린 말 사이에는 거대한 차이가 있습니다.
행정은 정보 접근 미비라고 적지만, 당사자는 서류는 도착했는데 나는 읽을 수 없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전자는 분류의 언어이고, 후자는 생존의 언어입니다.
그가 말을 맺었다.
오늘 병원에 갈 수 있는가.
내 뜻을 남에게 온전히 전할 수 있는가.
이동권, 자립생활, 탈시설, 보조공학 같은 말들은 단순한 제도 명칭이 아닙니다.
살기 위해 토해내는 당사자의 생성어입니다.
표현의 권리와 문화의 생산자
보보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이십일 조에도 명시되어 있죠.
장애인이 자신이 선택한 모든 의사소통 방식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권리가 있다고요.
국가가 수어나 점자, 에이에이시 같은 접근 가능한 방식을 촉진해야 하는 이유는 자기 말하기 자체가 헌법적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말할 수단이 보장되지 않으면 자신을 설명할 생성어조차 생겨날 수 없으니까요.
김경훈은 이진희 씨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진희 선생님은 지금 무료 티켓을 달라고 한 게 아닙니다.
문화를 소비하는 관객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신 겁니다.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장애인은 문화의 소비자에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협약 제삼십 조가 말하듯, 새로운 문화의 생산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진희 선생님이 자신만의 에이에이시 언어로 시를 쓰고 글을 만들 때, 장애는 타인이 규정한 결핍의 이미지가 아니라 하나의 시각, 하나의 감수성, 새로운 문화적 언어가 되는 겁니다.
침묵을 말로 바꾸는 토양
최 연구원은 얼굴이 붉어진 채 펜을 내려놓았다.
제가 너무 성급했습니다.
당사자의 언어가 무엇인지 듣기도 전에 행정의 틀에 끼워 맞추려 했군요.
그렇습니다. 김경훈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장애인을 위해 대신 말을 해주는 게 아닙니다.
장애 당사자가 자기 말로 말할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쉬운 정보, 점자 자료, 수어 통역, 에이에이시 기기는 모두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생성어가 태어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인프라입니다.
당사자의 생성어를 듣지 않고 만든 정책은 절대로 실제 삶의 고통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사월의 맑은 바람이 탱고의 털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진희 씨가 휠체어를 타고 다가와 다시 태블릿을 눌렀다.
감사합니다.
내 언어를 통역해 주어서.
김경훈은 허공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통역을 한 게 아닙니다.
선생님의 시가 시작되는 첫 문장을 읽었을 뿐입니다.
조만간 선생님의 시집이 출간되면 제가 스크린리더로 가장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주석 언어의 아키텍처
제목, 언어의 아키텍처 혹은 생존의 단어들.
누가 나의 문제를 이름 짓는가.
행정의 언어는 나를 무력한 수혜자로 만들지만, 삶의 언어는 나를 세계를 바꾸는 주체로 만든다.
프레이리가 가르쳐준 것처럼, 해방은 타인이 마련한 문장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이진희 선생님의 턱 끝에서 만들어진 느릿한 문장들이 수백 장의 정책 보고서보다 무거운 이유다.
결론, 인간은 자기 삶의 말을 되찾을 때 비로소 세계를 다시 읽고 쓸 수 있다.
나는 회의실에서 가장 강력한 시인을 만났다.
그나저나 결혼식에서 내가 읽을 혼인 서약서도 누군가 베껴 쓴 아름다운 말이 아니라, 보보와 내가 부딪히며 살아갈 날 것 그대로의 생성어로 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