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친구 한 사람? 그거 하나 있으면 인생 절반은 성공한 거 맞다.
그런데 진짜 ‘찐친’은 말로 떠드는 존재가 아니다.
화가 이중섭과 시인 구상의 이야기가 바로 그 증거다.
폐 절단 수술로 병상에 누워 있던 친구 구상을 위해, 이중섭은 과일 하나 살 돈이 없었다.
주머니는 텅 비었지만, 마음만은 재벌이었던 사나이.
그는 대신 붓을 들었다.
붉게 익은 천도복숭아 한 그루.
그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친구의 회복을 비는 간절한 기도이자,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마음이었다.
이것은 말이 아니라 상징을 통해 주고받는 정서적 상호작용(Emotional Interaction)의 극치다.
백 마디 위로의 말은 공기 중으로 흩어지지만, 마음으로 그린 그림은 평생의 기억이 된다.
구상 시인이 그 그림을 평생 서재에 걸어두었다는 사실은 그 순간의 온도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 이제 무대를 현대로 옮겨보자.
여기에 붓 대신 온몸으로 그림을 그리는 또 다른 예술가가 있다.
바로 안내견 탱고다.
연구가 막혀 답답한 날, 녀석은 조용히 다가와 무릎에 턱을 얹는다.
아무 말 없이 묵직한 체온과 고요한 숨결만으로 마음을 어루만진다.
이것이야말로 21세기형 ‘말 없는 천도복숭아 그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녀석의 예술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길 위에서 그는 매일같이 새로운 걸작을 창조한다.
복잡한 보행 환경 속 장애물을 피해 걷는 그의 움직임은 단순한 안내가 아니다.
그것은 파트너에 대한 완전한 신뢰와 훈련된 이타심으로 빚어낸, ‘안전’이라는 이름의 살아있는 설치미술(Installation Art)이다.
이중섭이 붓으로 그려낸 마음과 탱고가 몸으로 빚어낸 보행은 서로 닮아 있다.
둘 다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말 없이 꺼내어 내어주는 존재다.
사랑이란 결국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이처럼 언어를 거치지 않는 비언어적 소통(Non-verbal Communication)은 때로 말보다 더 정확하고, 더 오래 남는다.
오늘도 발밑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는 탱고의 온기를 느낀다.
그 온기는 이중섭의 복숭아 그림처럼, 가장 어두웠던 시간을 비추어준 빛으로 오래 남는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 깊숙이 걸려 있는 그림 한 점.
그 그림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지탱해주는 가장 단단한 기둥이다.
비하인드 스토리
어느 날, 연구 스트레스로 소파에 쓰러져 있는데, 탱고가 위로를 해주려는 듯 다가왔다.
녀석은 이중섭의 마음으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게 선물했다.
바로… 축축하게 침이 잔뜩 묻은 고무공이었다.
그렇다.
탱고의 비언어적 소통은 때로 ‘숭고함’보다는 ‘축축함’에 더 가깝다.
고맙긴 한데, 공은 그냥 너 혼자 갖고 놀면 안 되겠니?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