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은총의 채굴장

뇌파 묵주와 자본주의 신부

by 김경훈

낡은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변두리 공소의 주임, 베드로 신부는 제대 앞에 엎드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의실에서 풍기는 퀴퀴한 곰팡내와 싸구려 향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낡은 나무 바닥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비명을 질렀고, 성당 통장 잔고는 이미 마이너스를 기록한 지 오래였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주님,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당장 다음 달 낡은 보일러 교체 비용이라도 좀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응답 없는 허공을 향해 투덜거리던 베드로의 눈에 낡은 묵주 하나가 들어왔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은 신학교 시절 동기였던 IT 전문가 바오로 신부의 기괴한 발명품이었다.


"베드로, 기도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천만에.

깊은 묵상, 그러니까 가톨릭의 전통적인 관상 기도에 빠져들면 인간의 뇌에서는 특정한 주파수의 세타파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와.

내가 이 뇌파를 인식해서 암호화폐 연산으로 변환하는 '뇌파 묵주'를 개발했어.

그래픽 카드가 무의미한 숫자를 계산해서 비트코인을 채굴한다면, 이 묵주는 신을 향한 순수한 지향과 깊은 묵상을 해시레이트로 변환해서 '크레도(Credo) 코인'을 채굴하는 거지."


당시에는 이단 심문소에 끌려갈 소리라며 코웃음을 쳤지만, 파산 직전의 가난한 신부에게 자본주의의 유혹은 달콤했다.

베드로는 당장 바오로에게 연락해 뇌파 인식 센서가 달린 헤드셋 묵주 열 개와 채굴용 서버 컴퓨터를 외상으로 들여왔다.

성당 지하의 서늘한 교리실은 순식간에 비밀스러운 암호화폐 채굴장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베드로에게는 그래픽 카드 대신 묵주를 돌려줄 강력한 연산 장치, 즉 채굴자들이 필요했다.

그는 공소에서 가장 신앙심이 깊고 엉덩이가 무거운 일흔 살 이상의 할머니 아홉 명을 지하로 은밀히 소집했다.


"자매님들, 교구에서 내려온 특별한 영적 훈련입니다.

이 헤드셋을 쓰시고 평소처럼 묵주기도를 바치시면 됩니다.

잡념 없이 오직 주님의 수난에만 집중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이고, 신부님.

이거 머리에 쓰니까 파마 눌리는데 꼭 써야 혀? 그나저나 기도를 하면 성당에 돈이 들어온다니 참말로 신기한 세상이네."


귀가 어두운 마리아 할머니가 투덜거리며 뇌파 헤드셋을 뒤집어썼다.

베드로 신부가 메인 서버의 전원을 올렸다.

위잉.

묵직한 냉각팬 돌아가는 소리가 지하실의 적막을 깼다.


[감각 사진]

곰팡내가 밴 서늘한 지하 성당 바닥에 무릎을 꿇은 노인들의 거친 숨소리, 낡은 나무 묵주알이 규칙적으로 부딪히며 내는 달그락거리는 마찰음 뒤로 가상화폐를 채굴하는 거대한 서버의 냉각팬이 웅웅 돌아가는 묵직한 기계음이 기괴하고도 성스럽게 뒤엉킨 풍경.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심을 묵상합시다."


할머니들의 주름진 입술이 달싹거리며 일제히 기도가 시작되었다.

달그락, 달그락.

나무 묵주알이 거친 손가락 사이를 굴러가는 소리가 지하실을 채웠다.

베드로 신부는 침을 꿀꺽 삼키며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잠시 후, 기적이 일어났다.

할머니들의 호흡이 잦아들고 기도 소리가 하나의 낮고 장엄한 화음처럼 웅얼거림으로 변하자, 모니터의 해시레이트 그래프가 미친 듯이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


삑, 삐빅.


모니터에 붉은색 글씨로 '블록 채굴 성공'이라는 알림이 떴다.

크레도 코인 10개가 지갑으로 들어왔다.

현재 시세로 무려 백만 원이었다.

베드로의 입이 떡 벌어졌다.

평생 밭일로 굳은살이 박인 안나 할머니의 고통의 신비 3단 묵상은 최고급 그래픽 카드 백 대를 연결한 것보다 더 빠르고 순수한 연산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순수한 신앙심이 자본으로 치환되는 무시무시한 연금술이었다.


"자매님들! 아주 좋습니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십시오! 조금만 더 슬퍼하십시오!"


베드로 신부는 마치 혹독한 작업반장처럼 할머니들을 독려했다.

달그락거리는 묵주 소리는 멈출 줄 몰랐고, 모니터의 코인 숫자는 미친 듯이 올라갔다.

보일러 수리비는 단 하루 만에 벌었고, 일주일 뒤에는 성당 지붕을 뜯어고칠 돈이 모였다.

베드로의 눈에 광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낡은 소형차를 외제차로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보름 뒤, 크레도 코인의 가격이 폭등장을 맞이했다.

베드로는 더 이상 할머니들의 채굴 속도에 만족할 수 없었다.


'저 노인네들이 잡념이 섞여서 속도가 안 나는 거야.

저녁 메뉴 고민이나 하고 있으니까 끊기지.

명색이 로마에서 신학을 공부한 주임 신부인 내가 직접 관상 기도의 끝을 보여주마.

오늘 밤 제네시스 블록은 내 거다.'


모두가 잠든 새벽, 베드로 신부는 홀로 지하실에 내려가 가장 성능이 좋은 헤드셋을 머리에 썼다.

그는 눈을 감고 제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을 모으고 가장 경건한 표정을 지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이 불쌍한 어린양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소서..."


베드로는 심호흡을 하며 뇌파를 가라앉히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이미 탐욕으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빨간색 상승 곡선의 양봉 차트가 아른거렸고, 귀에는 코인이 쏟아지는 경쾌한 환청이 들렸다.

'이것만 채굴하면 내일 당장 한우 꽃등심을 사 먹으리라.

아니, 성당 옆에 으리으리한 교육관을 짓고 내가 센터장이 되는 거야.'


십 분, 이십 분이 지났다.

무릎이 저려왔지만 베드로는 억지로 기도를 쥐어짰다.

그리고 슬며시 실눈을 떠서 모니터를 확인했다.


해시레이트 0. 채굴량 0.


"이런 썩을, 기계가 고장 났나?"


베드로는 헤드셋을 탁 치며 모니터를 확인했다.

화면에는 바오로 신부가 심어놓은 AI의 냉혹한 에러 메시지가 깜박거리고 있었다.


[경고.

불순한 의도의 베타파 과다 검출.

탐욕, 식욕, 자만심 수치 초과.

신성 연산 알고리즘에 위배됩니다.

기도의 진정성이 0퍼센트입니다.]


베드로는 망연자실하여 바닥에 주저앉았다.

최신 신학 이론으로 무장한 엘리트 신부의 기도는 단 1원의 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의 기도는 그저 주식 차트 분석과 다를 바 없는 탐욕의 뇌파였기 때문이다.

신의 알고리즘은 인간의 얄팍한 속임수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지하실 문이 열리며 안나 할머니가 허리가 굽은 채 들어왔다.

밤잠이 없는 노인은 습관처럼 새벽 기도를 하러 온 것이었다.

할머니는 멍하니 주저앉은 베드로 신부를 보며 혀를 끌짯다.


"아이고, 우리 신부님.

성당 빚 갚는다고 밤낮으로 잠도 못 자고 얼마나 고생이 많을꼬.

얼굴이 반쪽이네, 반쪽이야."


안나 할머니는 베드로가 벗어던진 헤드셋을 주워 자신의 머리에 푹 눌러썼다.

그리고 낡은 묵주를 꺼내 들고 바닥에 꿇어앉았다.


"주님, 저는 무식해서 성경 말씀도 잘 모릅니다요.

그저 우리 젊은 신부님, 끼니 거르지 않게 해 주시고, 마음고생 안 하게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아멘."


달그락.

달그락.

투박한 나무 묵주알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안나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코인도, 블록체인도, 성당의 화려한 증축도 없었다.

오직 피곤에 지친 젊은 사제를 향한 순수하고 맹목적인 연민과 사랑뿐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위이이잉! 지하실의 거대한 서버가 굉음을 내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모니터의 그래프가 화면을 뚫고 나갈 기세로 수직 상승했다.

신을 향한 가장 낮고 순수한 주파수, 완벽한 세타파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 것이다.


삐비비비빅! [전설적인 블록 채굴 성공.

크레도 코인 10,000개 획득.]


베드로 신부는 모니터의 숫자를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코끝에 시큰한 알코올 냄새 대신 따뜻하고 구수한 노인의 체취가 훅 끼쳐왔다.

자본주의에 찌든 신학자의 화려한 언변은 0원을 기록했지만, 코인이 뭔지도 모르는 무지렁이 할머니의 순수한 염려는 수억 원의 가치를 지닌 기적을 연성해 낸 것이다.

베드로는 모니터의 화려한 숫자를 끄고, 묵주를 쥔 안나 할머니의 거친 손을 조용히 맞잡았다.

진짜 신성한 기도의 채굴장은 서늘한 서버실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대가 없이 무릎을 꿇는 노인의 낡은 관절 속에 있었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김경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안내견 탱고의 눈으로 길을 보고, 시각장애인 연구자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1,16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16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5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매거진의 이전글불타는 혓바닥